내가 만난 유니콘들—4.0
(이전 글에서 이어짐)
그렇게 나는 매주 K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가득 가져갔고, 선생님은 그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K 선생님은 살아 있는 답지 이상이었다. 어느 날은 평균값 정리의 증명에서 등장하는 복잡한 형태의 함수 g(x)가 어떻게 이렇게 나온 거냐고 질문했더니, K 선생님은 g(x)가 f(x)를 회전시키는 방식을 보여주고 끝내는 대신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이 함수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야. 만들고 안 되면 고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증명에 쓰일 수 있는 함수가 완성된 거야. 한 번에 알아낸 게 아니고 많은 고민이 들어간 거지.”
그러자 증명을 하기 위해서 기괴하게 끼워맞춘 것처럼 보였던 g(x)가 조금 덜 기괴해 보이기 시작했다. g(x)에 인간성이 부여된 것은, K 선생님이 그 함수 뒤의 지우개 자국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똑똑한 수학자들도 틀린다. 그리고 그 틀린 답을 고친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고 고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K 선생님의 말을 듣자,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수학자들이 갑자기 옆집 아줌마 아저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선생님의 대답을 통해 수학과 그 이상의 뭔가—그게 뭔지는 잘 몰랐지만—를 배우던 중, 어느 날은 선생님이 먼저 나를 불렀다. 교탁 앞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다짜고짜 여러 방향으로 난도질되어 있는 평행사변형 그림을 내밀었다. “이 문제 풀 수 있어?” 다른 반 친구가 선생님한테 물어본 문제인 듯했다. 평행사변형의 전체 넓이를 알려준 뒤, 평행사변형을 여러 방향의 직선들로 자른다. 그리고 그 조각들 중 하나의 넓이를 물어본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수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익숙한 형태의 문제였다. 하지만 K 선생님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나한테 그 문제를 내밀었다는 건, 이 문제가 잘 안 풀린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K 선생님이 나한테 그 문제를 내밀었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그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선생님이 대답해준 내 질문이 몇 개인데, 그런 문제 하나를 못 풀어줄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그 문제를 손바닥 절반만 한 메모지에 베꼈다. 그리고 그 다음 교시였던 체육 시간에 그 메모지와 샤프 한 자루를 가지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체육 선생님은 늘 그렇듯이 재미없는 걸 시켰고, 나는 선생님 눈치를 봤다가 메모지를 봤다가 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 답을 알아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체육 시간에 뛴 것보다 더 열심히 뛰어서 K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에 도착했다. 아마 갈아입지 않은 체육복에서 땀냄새가 폴폴 났을 것이다. 하지만 K 선생님은 개의치 않았고, 나는 항상 내 청결도에 개의치 않았으므로 곧장 선생님의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풀이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기하 문제지만, 대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포인트다. 이 영역을 a, 저 영역을 b로 치환하고 전체 넓이에 대한 방정식을 세우면 식이 하나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절반 영역에 대한 방정식도 세울 수 있다. 이제 두 방정식을 연립하면 a와 b, 즉 우리가 구하려고 한 조각의 넓이가 나온다. 끝.
숨가쁘게 이어진 내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은 전방에 함성을 1.5초간 발사했다. “우와아!” 그리고 양 손 엄지로 따봉을 만들더니, 나에게 말했다. “야, 진짜 고마워.” 그리고는 교무실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따로 줄 건 없는데, 이거라도 먹을래?” 선생님이 내민 사탕을 내가 가져왔는지, 안 가져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고맙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일어서다가 교무실 책상 칸막이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싸구려 칸막이의 특성상 머리가 아주 아프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움이 치사량을 넘어 버렸다. 부끄러워하느라 정신없었던 그 기억이 다른 모든 기억을 덮어 버렸다.
왜 그렇게 작은 실수에 부끄러워했는지, 왜 그렇게 열심히 미적분 질문들을 정리해 갔는지, 왜 그렇게 K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었는지는 내게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 학교가 여중이고 K 선생님이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어서? 그렇게 뻔한 결론을 내리고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게 틀린 결론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K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결코 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수업에서 교과서 예제를 풀 때, 그는 딱 떨어지는 숫자뿐만 아니라 딱 떨어지지 않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가 나의 미적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때, 그는 미적분 이상의 뭔가를 알려줬다. 내가 문제를 풀어갔을 때, 내 풀이에 K 선생님이 보인 반응은 문제를 풀었다는 만족감을 넘어서는 희열이었다. 그가 알려준 것들은 뻔하지 않았기에 한 줄의 교훈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지만, 그것들이 강렬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강렬한 경험을 단순한 클리셰로 환원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그렇게 강렬한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이 세상에 유니콘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K 선생님에 대한 오랜 의문에 답을 얻었다. K 선생님은 유니콘이었다. 그에게는 뿔이 있었고, 그가 뿔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혹은 숨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뭔가 다르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에 나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왜냐하면 나도 유니콘이었으므로. 그의 너무나도 유니콘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내게도 뿔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내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걸 후회하냐고?
유니콘들은 종종 자신의 뿔을 숨기지만, 뿔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