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의 기억

<림버스 컴퍼니 4장 변하지 않는> 4-48까지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1, 2, 3, 3.5장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우리는 야심가도, 탐욕가도 아니며 그저 기술을 사랑했던 아해에 불과했지”

“처음으로 우리가 숨을 쉰다고 느꼈던 그날을 기억하오?”

“그때는 말일세, 그 숨만으로도 충분했었소.”

“아님 유독… 그날만 공기가 맑았거나.”


4장의 시작은 이상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이상은 다크서클이 짙은 어두침침한 수감자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학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는 수감자죠. 하지만, 그는 버스팀이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못합니다. 눈을 빗겨 쳐다보아 늘 허공을 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과거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여전히 버스팀은 K사에 있습니다. 물론 싱클레어의 마을에서 벗어나 K사의 중심부로 들어왔습니다. 중심부는 마냥 안전하고 좋을 줄 알았지만,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 비명의 중심부에는 환상체가 있었죠. 환상체를 버스팀이 제압하는 동안 둥지 안인데도 제대로된 지원병력은 오지도 않고, 드론만 나타나 영상을 찍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대체 왜 일어나는지 의문만 가진 채 의뢰인이 있는 커다랗고 높은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건물 안에는 헬스 치킨의 의뢰자였던 양복 입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삼조. 그리고 삼조 뒤로 동랑이라는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동랑은 희곡 작가인 동랑 유치진을 삼조는 유치진의 <토막>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삼조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을 눈치채신 분도 있을 겁니다. 동랑은 시계 째깍소리밖에 낼 수 없는 관리자를 따로 불러 수감자들 중에 자신의 친구가 있음을 밝힙니다. 12수감자 중에 동랑의 친구는 당연히 이상일 겁니다. 물론 관리자인 단테가 알 방법은 없겠지만요.


동랑은 K사 소속 연구원으로 구 L사 지부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으나 신원 미상의 테러 단체의 습격으로 인해 각종 물품과 기밀 연구자료를 놓고 온 상태였죠. 연구소를 되찾고 연구자료를 가져오기 위해 버스팀에게 의뢰를 한 것 이었습니다. 헬스 치킨의 의뢰는 버스팀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사전 의뢰였던 셈이죠. 물론 버스팀이 이 의뢰를 해결하여 얻는 것은 당연히 구 L사 지부에 남아있던 황금가지입니다.


의뢰 관련 계약이 체결되고 기념이라며 동랑은 연구실의 안쪽까지 버스팀을 초대합니다. 연구실에서 K사의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K사의 특이점으로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것은 HP탄으로 사람이 완전한 죽음이나 뇌사가 이뤄지지만 않으면 어떠한 부상이라도 빠른 속도로 완치시키는 제품입니다. 근간은 나노 로봇 치료 기술이라고 합니다. K사의 특이점은 ‘치료’에 특화된 것으로 보이죠. 이 HP탄을 가지고 동랑은 가축 개량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절단’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개념이라면… 그저 순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면…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질 좋은 고기들을 무한하게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말이 어렵지만, 예시를 들면 무척 단순합니다. 닭의 다리살이나 날개살을 얻기 위해서는 닭의 일부를 절단해야 합니다. 이 절단은 닭의 전체에서 일부가 영원히 떨어짐을 의미하죠. 하지만, 닭의 일부가 K사의 기술로 계속 재생된다면 절단은 영원이 아닌 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절단을 절단이라고 말하기조차 애매해지는 것이죠. 즉, 동랑은 계속 재생하는 가축을 통해 무한한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해 수감자들은 이런저런 말들을 내뱉습니다. 로쟈는 굶주리고 핍박받던 뒷골목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기술이 있었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고기를 마음껏 먹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싱클레어는 무언가 부자연스럽다며 거부감을 나타내죠. 이스마엘은 이에 더 효율적인 기술이 있었을 거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를 듣고 조용히 있던 이상이 말을 덧붙입니다. “기술… 아니오 이것은 한낱 사육이오. 저 치들은 날 수 있다는 것도 평생 모를 것이오.” 말이 모호합니다. 그래도 이상이 생각하는 기술이 이런 공장을 만들어내는 것쯤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기술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 그리고 두 번째, ‘사물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이나 능력.’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술, 그러니까 이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기술의 정의는 첫 번째 정의일 것입니다. 과학 이론으로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 하지만, 이상이 생각한 정의는 두 번째에 가까운 듯합니다. 사물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닭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사육되어 고기와 계란을 생산하는 동물? 이상은 닭의 본질을 이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상은 닭의 본질을 생명으로 보았습니다.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생명의 본질을 단순하게 보자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겠죠. 적어도 닭의 삶이 다리와 날개가 무한하게 잘려나가는 데 있을 리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상은 동랑의 연구를 보고 기술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테러범들이 옮긴 연구소까지 습격해옵니다. 자신들을 ‘기술해방연합’이라고 소개한 테러 단체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K사의 특이점에 이상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HP탄이라고 부르는 치료 앰플말고도 사람의 몸을 녹아내리게하는 붕괴 앰플이 있었던 것이죠. 분명 K사의 특이점은 나노 로봇 ‘치료’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치료를 조금만 바꾸면 사람을 다치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특이점을 치료 기술로 가지고 있는 회사가 이렇게 쉽게 붕괴 앰플과 같은 파괴적인 제품을 다수 가지고 있는 것이 뭔가 미심쩍습니다.


기술에 대한 고민은 뒤로 하고, 이제는 테러범을 잡으러 갈 시간입니다. 버스팀, 동랑, 삼조, 동료 연구자 슈렌느와 슈렌느가 고용한 해결사들까지. 구 L사의 지부로 향합니다. 구 L사에 도착하자 시간을 끌려는 함정만 몇 개 남아있고, 테러 집단은 전부 퇴각한 후였습니다. 란이라는 사람이 시간을 끌려 마지막까지 남아 강력한 폭탄을 터트리고 도망갔으나 단테의 시계만 돌리면 되살아나는 수감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죠. 슈렌느는 이러한 장면을 처음보고 자신이 가져온 재생 앰플을 모두 바닥에 떨궈버립니다. 빠르게 구 L사를 공격했으나 모두 도망가 있는 일련의 이상한 상황들을 모두 보고 슈렌느와 해결사들이 배신자임을 알게 됩니다. 배신자를 물리치고, 슈렌느에게 왜 배신을 했냐 물어보지만, 슈렌느는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암살 전문 해결사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리고나서 떨어트린 앰플을 주운 이상이 이전에 보았던 붕괴 앰플과 재생 앰플의 시리얼 넘버가 거의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동랑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재생 앰플은 원액이라고, 대중적인 재생 앰플과는 다르다고.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K사의 특이점이 나노 로봇 치료 기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이점의 근본이 되는 정제되지 않은 원액이 붕괴 앰플과 비슷하다는 것은 적어도 치료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K사의 특이점은 어떤 것이고, 그 특이점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까요?


몇몇 대화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과거의 친구였음을 밝힌 이상과 동랑에게 한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은 이상의 가슴팍에 황금가지를 꽂습니다. 그리고 동랑이 소중히 하고 있던 한 흑백사진을 건네주고 사라지죠. 그녀의 이름은 동백. 흑백사진에는 동랑과 이상, 동백을 포함한 9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상의 과거로 잠시 넘어가 이상이 발명한 ‘거울’을 가지고 동백과 동랑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여줍니다. 그곳에서 교활한 동랑, 우울한 이상, 상처입은 동백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웃는 모습만이 가득하죠. 분명 즐거웠을 그 순간을 이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명확히 할 수 없기에 그날을 후회하는지 감개하는지조차도 분명히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시계가 되돌아가고 이상은 되살아납니다. 흉터와 자국도 남치 않은채 완벽히 돌아온 이상은 누가 보기에도 멀쩡하지만, 그 죽음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괜찮냐고. 이상은 이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전에 소속되었던 구인회라는 단체에 같이 소속되어 있던 친구들이라고. 많은 것을 생략해서 말한 이상에게 수감자들이 캐묻자 이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순간이오. 순간이기에, 뿐이라 함이 썩 들어맞소.” 물론 이상의 삶에서 구인회와 함께했던 것은 순간이었을 수 있습니다. 허나 그저 순간이라기에는 동백, 동랑, 이상의 행동들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면서도 모두가 즐거워했던 찬란한 과거의 향기가 그 순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가장 기뻤던 순간이 구인회에서 낭술회를 했을 때였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죠. 여전히 그는 무척 서글퍼 보이기에 그 순간이 이상의 마음속에 영원으로 자리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술해방연합은 사실 도망간 것이 아니라 처음 습격했던 연구소를 다시 습격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K사의 건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다시 난리가 난 상태였죠. 그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슈렌느와 기술해방연합의 이메일을 통해 기술해방연합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어떤 기술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래서 모든 것이 더 반짝이게 보였을 과거로. 거기선 날개가 잘리지 않는 닭들이 초원을 날고 있을 거예요. 팔이 잘리는 사람이 생기면 모두가 위로해주고 팔이 없어도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배워 나가겠죠. 풍족한 음식과 문명.. 우리가 누렸던 모든 자원들은 이제 없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는 온종일 걸을 수 있을 거예요.”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근대의 영향을 받지 못한 라다크에서는 아주 오래전 과거처럼 마을공동체가 상부상조하며 TV나 휴대폰과 같은 그 어떤 것들 없이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죠. 이런 과거에 자주 볼 수 있었던 공동체의 유대와 같은 것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더욱 좋게 바꿔나가자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입니다. 어찌보면 기술해방연합은 이 라다크와 같은 세계를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기술을 파괴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세계. 하지만, 이미 그들은 틀렸습니다. 그들이 가진 사상이 멋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니까요. 그들은 죄 없는 연구원들을 마구 죽이고, 연구소를 마구 부수는 테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모든 걸 부수고, 사람을 죽여서 얻은 미래에 도대체 어디 모두를 위로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있을까요? 또한, 이미 기술의 혜택을 얻은 이들이 기술을 얻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미 맛본 그 편리함을 내려놓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죠. 사실 그래서 폭력을 자신들의 행동기반으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폭력으로 쌓아올린 세계엔 깊고 차가운 원한만이 자리할 뿐 따뜻한 웃음과 유대는 자리할 수 없을 겁니다. 기술해방연합의 명확한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죠.


기술해방연합은 K사의 가장 깊숙한 곳, K사의 특이점이 있는 곳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동람, 삼조, 버스팀 또한 그곳으로 따라갑니다. 그 특이점을 보고 동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해거 울어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늘 고맙고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답니다.” 이 말을 듣고 동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재생 앰플의 근원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만큼 죽이는 것도 이 눈물의 역할이니까.” 삼조는 이 말을 듣고, 특이점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눈물을 모아놓은 수조 안으로 뛰어듭니다. 그리고 수조에서 죽었습니다. 삼조의 죽음을 보고 동랑은 아무 감정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눈물의 역할이야.” 삼조는 인간 이전의 그 무언가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제 붕괴 앰플의 원리도 이해가 됩니다. K사의 특이점은 나노 로봇 치료 기술 따위가 아닌 저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유치진의 <토막>에서 삼조는 아주 짧게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삼조가 하는 몇 마디 말을 통해서 삼조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가면 무조건 돈을 많이 버리라 생각하는 <토막> 삼조와 눈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 삼조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맹목적인 믿음. 어떠한 대상에 대한 제대로 된 사실을 알기 이전에 부분의 장점만 보고, 전부가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맹신. 사실 이런 맹신은 삼조의 예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많은 사람이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관계를 맺을 때 믿음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믿음 없이는 그 어떤 관계도 지속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믿음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늘 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 늘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믿음이 누군가와 다를 수 있고, 혹은 아예 틀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어떤 때는 잘 하면서 어떤 때는 정말 조그마한 근거를 가지고, 절대 깨지지 않는 철옹성같은 믿음을 가집니다. 이는 삼조처럼 자신을 파멸로 몰 때도 있지만, 주변을 파멸로 몰기도 합니다. 넓게 보면 기술해방연합 또한 닫힌 시야로 누군가를 파멸로 몰고 있는 중이라 볼 수 있겠죠.


기술해방연합에 속한 동백은 특이점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특이점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개념 소각기에 넣은 영구 소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동랑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 네가 원하는 것이냐고 묻고, 동백은 기술을 다 없애고 남은 미래에는 그 무엇도 남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동백의 말은 사실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현재를 파괴하고 미래를 남기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동백이 파괴하고자 하는 현재는 특이점, 즉 기술입니다. 기술의 부정적인 면만 가지고 기술을 전부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한때 구인회의 낭술회에서 기술에 눈을 반짝이던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어 과거에 그토록 집착하는 행동에 의문을 더합니다.


동백은 대화를 끝내고 구 L사에서 가져온 E.G.O무기로 동랑과 이상을 전부 죽이려 합니다. 패퇴하고 부상당한 동백 앞에서 동랑은 동백의 절망을 키우기 위해 특이점을 얻는 방법을 두 눈 앞에서 보여줍니다. 거대한 눈이 하나 있고, 그 눈을 둘러싼 ‘유리창’ 여러 비극적인 영상을 틀어주고 있습니다. 환상체가 K사 둥지의 주민들을 죽이는 것부터 N사의 마을 학살과 싱클레어의 분노까지. 3장에서 N사를 K사 안으로 들여보내 벌어진 비극도 동랑이 더 많은 눈물을 얻어내기 위한 계획이었던 것이죠.


눈물의 진실은 참혹하고 잔인했습니다. 현실의 모든 기술이 그렇듯 아무런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어낼 수는 없는 법이죠. K사의 특이점은 누군가의 비극을 바탕으로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부족했기에 더 많은 눈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눈물은 누군가의 비극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죠. 눈물의 결과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HP탄이었습니다. 삼조 또한 죽을 위기를 그 HP탄으로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을 만들어낸 원인은 누군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 죽음이 적은 수였다고 해도, 그 눈물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해도, 그것이 정당한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가 만들어낸 이 말은 현재 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세계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가장 큰 허점이 있습니다. 행복을 어떻게 비교할 것이냐 하는 거죠. 그래서 자본주의는 이 많은 것을 수치화했습니다. ‘한 사람과 다섯 사람이 있을 때 내 선택으로 몇 명을 살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다섯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수치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그 한 사람이 나와 정말 가까운 사람이거나 그 한 사람을 내가 직접 죽여서 다섯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조건들이 붙으면 답변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그때 즈음 사람들은 느끼게 됩니다. 한 사람이든 다섯 사람이든 사람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것은 그 무게감이 엄청나다는 것을요.


이 공리주의의 허점에 가장 유명한 대답이 바로 ‘정의’입니다.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자유를 모두 평등하게 보장해야 하며 서로가 서로를 유대감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 정의는 결과주의의 만능에 ‘도덕’이라는 파문을 던졌습니다. K사 또한 회사의 이익,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도움의 측면에서 보면 동랑의 행동은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저러한 행동은 큰 거부감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수감자들도 마찬가지고, 동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편 도덕에서 벗어난 저 상황을 막기 위해 동백은 기술해방연합을 통해 테러라는 방식을 사용한 것입니다.


동랑의 눈물을 보여준 행위는 순수한 눈빛으로 기술을 바라보던 순수한 과거의 구인회와 대비됨과 동시에 동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유리창’과 ‘거울’을 바라보던 순수한 눈빛의 구인회는 그 기술의 가치를 깨닫자 분열하기 시작했고, 아예 갈가리 찢겨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그 기술을 발견하고 이용한 자신들, 구인회에 있다고 동백은 말합니다. 동백은 사실 알고 있을 겁니다. 기술이 없기 전으로 돌아간다해도 인류는 기술이 없기 전 그 화목한 상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동백이 기술을 없애는 데 집착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 기술을 없애고 다른 더 순수한 사람들이 발견해서 그 기술을 옳게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 돌려 말하면 과거의 순수한 구인회에 대한 강력한 집착이죠. 그리고 이 집착은 동백의 명확한 깨달음으로 더욱 강력해져 현재 자신의 기술 파괴를 거름으로 새로운 이들이 기술을 올바르게 쓰는 방향으로 꽃피우고자하는 바람으로 현현합니다. 그렇게 동백 자신만의 E.G.O는 개화합니다.


흐드러진 노란 동백이 넘실거리는 동백의 개화는 버스팀의 저지와 동랑의 공격으로 막을 내립니다.


“때가 되면 시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언제나… 곧 피어날 향기를 머금은 봉우리이고 싶었어…

이상 네가… 날아가고 싶은 꿈을… 꾼 것처럼…

나도… 그저… 너희들과 함께… 알싸한 꽃향기에… 흔적도 없이 파묻히고 싶었던 것 뿐이야…“


기술의 정의, 기술의 결과주의, 기술의 정당성과 같은 복잡한 논의들이 갈등을 통해 계속 표출되었지만, 동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인회와 함께했던 시간. 이상이 그저 순간이라 말했던 영원과도 같은 과거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그 과거의 이상에 집착하다보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를 풍긴 과거가 어떤 방식으로든 셋에게 영향을 주어 같은 방향을 보고 연구했던 그들이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서있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구인회의 알싸하고 향긋한 향기에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던 동백은 과거에 집착해 현재를 파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동랑은 왜 결과주의에 입각한 기술 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상은 그저 현실을 부유하며 자신을 찾지 못한 채 날 수 없었을까요?


절벽 끝으로 떨어진 동백을 바라보고, 절벽 근처에서 여전히 삶을 부유하는 이상은 무슨 생각을 하냐는 동랑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무것도.”


“그리고 묘혈의 향기가 만개하였소.

아, 그리하여… 여전히 난 ‘아무 것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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