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버스 컴퍼니 4장 변하지 않는> 끝까지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1, 2, 3, 3.5, 4장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현실의 이상은 천재였습니다. 한국 나이 28살, 고작 27년의 삶을 살면서 문인으로서 큰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수석졸업, 건축 도안 공모전 1등, 조선미술전람회 입선까지. 문이과 통합 융합형 천재가 있다면 바로 그였겠죠. 천재와 바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그 종이는 현실의 이해겠죠. 이상은 현실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지만, 현실의 문제점을 고쳐 이상적 현실을 만들려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의 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허나 천재의 이상은 너무 높기에 그는 늘 바보처럼 엇나갔고, 22살 하늘은 이 천재를 놔둘 수 없어 폐결핵으로 그의 앞에 늘 죽음을 가져다두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현실의 벽과 죽음의 불안, 공포 앞에서 늘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날개를 피지 못했던 그는 박제가 되었습니다. 죽어서 사람들에게 상으로만 남은 것이죠.
여기 박제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없이 그저 부유하기만을 반복하며 죽은 듯이 침묵하는 사람. 림버스 컴퍼니의 이상입니다. 현실의 이상의 몸부림이 어색하게 느껴질만큼 가만히 있는 그의 모습은 과거에도 그가 그렇게 살았을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가 늘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숨을 쉰다고 느꼈던 그날을 기억하오?’ 그는 분명 숨을 쉬었던 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어 보이는 그의 과거에 그의 모든 시간과 생명이 박제되어 있는 듯합니다.
동랑이 동백을 황금가지로 찌른 후 동랑과 수감자들은 황금가지가 만들어낸 자아심도에 들어갑니다. 자아심도는 누군가의 마음이 구현화 된 장소, 또는 형상으로 이번 자아심도는 이상의 마음이 구현화된 것이었죠. 동랑, 동백, 이상이 웃음을 간직한 채 함께 있던 장소. 그 무엇보다 아늑했던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책상에는 한 극본 형식의 편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을 기다린 듯한 그 편지에 맞추어 수감자들은 자아심도의 깊숙한 곳까지 나아가기 위해 한 사람씩 배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합니다. 동랑과 이상은 물론 자기 역할을 맡고요.
“내겐 돌연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혹은 숙명적으로 함께하게 된 이들이 있었지.”
구인회라 불리는 이들은 흑백사진처럼 늘 색이 바래있는 T사에 모여 있었습니다. 원래 살고 있던 S사의 상황이 무척 안 좋아지자 연구원들은 연구를 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영지와 동랑이 나머지 사람들을 불러모아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발명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있는 T사로 떠나자고 했고, T사에 와서 연구를 계속하며 낭술회를 가지는 구인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역사에서 구인회는 순수 문학을 추구하는 단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조금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단체를 만든 이종명과 김유영은 ‘카프’, 그러니까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문학계의 압도적 주류였던 카프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문학이 어떤 사상을 나타내는 주요한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척 정치성이 강한 문학 단체였던 것이죠. 이런 단체들은 보통 결속력은 강하지만, 자신들의 성격과 맞지 않는 문학은 심하게 저평가합니다. 이에 불만을 가졌던 이종명과 김유영이 사람들을 모아 문학단체를 만든 것이 구인회죠. 하지만, 카프의 대척점에 서서 대항마가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구인회는 말 그대로 순수문학만을 추구하는 친목회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만 모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문학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었던 것이죠.
림버스 컴퍼니의 구인회도 문학이 아닌 연구를 하는 점은 달랐지만, 자본주의나 사상을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탐구심으로 모여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종종 발표하는 낭술회를 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구인회와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색을 볼 수 없는 T사에서 색이 없어도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 불꽃을 연구하는 동백이나 기술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아도 거리의 동물들을 치료하며 보람을 느끼는 동랑의 모습은 구인회가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합니다.
그 구인회에서도 이상은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영지가 이상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늘 물어도 내미는 대답은 늘 백지일 뿐. 허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늘 가슴 한 켠에 한 소망을 품고 있었죠.
“나는 파릇하게 흩날리고 싶었으며 서걱거리는 마음에 씨앗이 박히는 듯한 일렁임을 느끼곤 했지.”
그저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보는 그가 가진 욕망은 조금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이 어떤 돈이나 명예에 있지 않다는 것은 쉬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소망은 현재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바라고 원하는 것이죠. 그는 지금 파릇하게 흩날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봄의 가지가 아닌 겨울의 가지처럼 죽어 있는 그의 마음이기에 그는 푸릇푸릇한 싹을 틔워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리고 구인회에서는 그 싹을 틔울 씨앗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랬기에 이 구인회는 이상에게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던 곳이었겠죠.
어느날 영지는 한 기술을 가져옵니다. 기술의 이름은 ‘유리창’, 덧없이 지는 것들을 비추는 창. 덧없이 지는 것들은 그 유리창 안에서 만큼은 더는 유한한 끝을 가지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주는 울림은 무척이나 강력하였습니다. 이 기술을 보자마자 단순히 ‘놀이’로만 끝날 기술이 아니란 것을 몇몇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유리창에 모두 감탄하고 있을 때 이상은 유리창을 누가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대상의 모습이 다르게 비추어지기에 유리창의 창살을 더 튼튼하고 반듯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지는 이에 본질을 꿰뚫어보았다고 말하며 이상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술을 새롭게 만들어보라고 말하죠.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거울’이었습니다. ‘연심(硏尋)’ 이라 붙인 그 거울 속에서 이상은 아름답고 당당한 나의 왼손잡이를 만났습니다. 상이라고 이름을 내걸은 거울 속의 남자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이상과 상이는 서로를 들여다보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구인회에 내놓았을 때 모두가 감탄했습니다. 이상은 이 기술을 두고 이렇게 말하죠. “어떠한 가능성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싶었소.” 영지는 이를 보며 이상의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런 것이었다며 말을 덧붙입니다. “그거 알아? 모든 기술에는 만든 사람의 낭만과 소망이 숨어 있대.” 이는 현실에도 적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상상해왔던 무언가를 실현하기 위해 개발자들은 기술을 개발하죠. 그렇다면 영지와 이상은 어떤 마음에서 이 기술을 만들었을까요?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딧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의 <유리창>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가 보는 것은 유리창입니다. 하지만, 그 유리창은 현실을 보여주는 유리창이 아니라 새까만 밤과 물먹은 별을 보여주는 유리창이죠. 그 유리창에서 그는 계속 입김을 불고 유리창을 닦으며 현실 너머의 밤을 보고 있습니다. 그 밤에서 누군가가 폐혈관이 찢어진 채 산새처럼 날아간 것이죠. 화자는 유리창 너머로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유리창은 현실과 현실이 닿을 수 없는 초월적 세계를 잇는 매개인 것이죠. 새까만 밤과 물먹은 별이 있는 그 초월적 세계는 폐혈관이 찢어진 죽은 이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그 죽은 이가 산새처럼 날아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영지는 덧없이 지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주고 싶었습니다. 유한한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한 초월적 세계의 가능성을 모든 것에 부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시에서도 유리창은 현실말고 다른 세계와 이미 덧없이 진 무언가를 보게하는 매개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은 영지가 덧없이 진 죽음과 관련된 어떤 큰 사건을 겪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특히, 동백이 아직 그 일을 맘에 두고 있냐고 묻는 말은 영지가 생명의 덧없음에 큰 슬픔을 느낄만한 어떤 일이 있었음을 알게 하죠. 그 덧없음의 허무함을 기술로써 빛나는 가능성의 길로 바꾸고자 한 것입니다. 즉, 죽음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유한한 생명의 한계를 유리창을 통해 넘어서고자 한 것이지요.
무한한 가능성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이 점을 이상은 잘 알고 있었기에 유리창이 비추는 것에 어떠한 의도도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든 가능성을 비추게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거울이죠. 다만, 이 내용에서 이상의 낭만과 소망은 알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거울 속에서 만난 그의 왼손잡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그의 낭만과 소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서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입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영지의 ‘유리창’이 제법 공통점이 많았던데 비해 이상의 <거울>과 이상의 ‘거울’은 많이 다릅니다. <거울>에서 화자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나 어떠한 상호작용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거울’을 통해서 이상이 상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 깊게 살펴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큰 차이죠. 또한, 말을 못알아 듣는 귀와 악수를 받지 못하는 왼손잡이인 <거울>의 또 다른 나와 다르게 ‘거울’의 나는 멋진 날개가 달린 나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또 다른 내가 보인다는 것이죠. 그래서 두 이상은 모두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보면 ‘거울’을 만든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또 다른 내가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덧없이 지는 것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영지와 달리 이상은 거울을 통해 파릇하게 흩날리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거울을 통해 다른 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도 부정적인 현재 자신이 아닌 이상적인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술을 만든 사람의 낭만과 소망이 어떻든 사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느냐에만 관심이 있죠. 강력한 억제력을 통해 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원자폭탄은 무고한 사람들마저 모두 한순간에 태워버리는 파멸의 무기로 쓰였습니다. 이는 ‘유리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무한한 가능성에 많은 날개들이 전부 달려와 그 기술을 탐내었고, 구인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러워졌습니다. 이미 생계를 위해 오직 발표하기만 한 기술을 사회에 팔고 있던 자들도 나타난 차에 구인회는 분열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거울’ 또한 무척 탐나는 기술이었지만, 이상은 이 기술이 사회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 거울을 다같이 웃음을 터뜨린 순간으로 간직하기를 바랐죠.
거울처럼 대단한 기술은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여파를 가져옵니다. 사실 몇몇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 기술이 이런 영향을 가져올지 몰랐다고, 나는 그저 순수한 탐구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것을 개발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그 기술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좋은 방법으로 사용하려고 고민할 겁니다. 이상의 거울을 보는 순간 이미 구인회의 모두는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저것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겁니다. 이상은 아마 이런 현실을 아예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상은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를 보지 않았습니다. 바라보지 않고 그저 그 분위기에 스며들 뿐이었죠.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사람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회피형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런 생각이었기에 그는 날개의 허가 없이 다른 세계를 엿보는 이 기술이 그저 놀이라고 생각했고, 날개의 그 어떤 압박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한 탐구심만 가득한 연구자의 안일한 실책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과 달리 이상의 생활이 무척 안정적이었던 것도 있습니다. 이상은 구인회의 월세를 대신 내줄 정도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이상의 직업은 현실 이상처럼 건축가였습니다. 그러나 둘 다 건축가라는 삶이 맘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의 이상은 총독부의 공무원으로 총독부가 시키는 건축만 해야 했기에 자신의 원하는 건축을 맘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총독부의 수탈에 도움을 준다는 불만과 죄책감 또한 이상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을 겁니다. 그리하여 3년 정도만 건축가로 일하고 관두게 됩니다. 림버스 컴퍼니의 이상도 자신이 만든 건축물이 T사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상이 만든 건축물이 힘없는 다수가 아닌 날개를 위해 쓰였던 것처럼 이미 다른 이들의 기술은 날개와 권력 있는 소수가 다수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쓰이고 있었습니다. 길 잃은 아이들이 부모와 쉽게 만날 수 있게 하는 기술이었던 인식표는 모든 공장에서 근로 시간을 관리하는 데 쓰였으며, 기술을 만든 당사자조차 공장에서 일을 할 때 그 인식표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순수한 탐구심과 인간을 사랑하여 만들어낸 기술은 누군가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데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예시는 유리창으로 인한 날개의 통제가 들어올 것임을 명확하게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이 널리 알려진 후 이제 구인회는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소란스럽고 활기찬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많은 기계들이 늘어났고, 다양한 문서와 기구들이 들어왔습니다. 이제 구인회 멤버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구인회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구인회 안에서도 기술을 순수하게 연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돈과 직결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사람처럼 동물을 지극히 생각하며 동물을 치료해오던 동랑도 이제는 나중에 뭐 해먹고 살 거냐는 핀잔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구인회의 관계에 금이 조금씩 생깁니다. 그 균열을 이상은 모르지 않았으나 여전히 비껴 바라보다 스며들기만을 바랐습니다 순수했던 동랑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동물을 치료하며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치료하겠다던 동랑은 순수한 탐구심과 이상을 뒤로 한 채 당장 쓰이는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동랑의 변화의 시작점이 이제야 드러나는 것이죠.
T사는 5인 이상의 기술 발명을 위한 민간 집합을 하려면 T사의 정식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공문이 내려옵니다. 그걸 본 구인회는 개념 소각기에 기술을 불태웁니다. 기술이 자신들의 손을 떠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계속 보아왔고 경험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죠. 순수한 탐구를 즐겨했던 동랑은 개념 소각기에 태워지는 기술을 보면서 이제 이런 말을 던집니다. “기술은 남들을 위해 쓰여야 비로소 가치가 생겨. 그전까지는 그냥 장난감일 뿐이고.” 즉, T사의 허가를 받아 기술을 만들어 무수한 이들이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죠. 그러나 구인회의 ‘순수한 탐구’라는 목적에서는 변질된 이러한 방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상이 추구했던 웃음을 터뜨린 순간을 만들어내는 장난감 같은 기술은 더 이상 구인회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기술을 없앴고, 동랑은 기술을 어떻게든 쓰자고 말한 것이겠죠. 이미 균열이 가있던 동랑의 마음을 부쉈던 건 K사의 특이점이었습니다. 액체만으로 모든 것을 고치는 K사의 특이점은 동랑이 연구하고자 했던 이상에 이미 도달해 있었습니다. 동랑은 자신의 고민이 무척 헛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려했던 구인회는 T사의 압박으로 위치를 불어버린 한 구성원에 의해 완전히 해산하고 맙니다. 누군가는 자기 갈 길을 떠났고, 누군가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결국 유리창과 거울을 압수하러 T사가 찾아옵니다. 어떻게든 숨겨왔던 지하실까지 알고 있는 T사의 직원들의 모습 속에서 구인회의 배신자가 있음을 발견하죠. 동백의 폭죽으로 그 순간을 넘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리창과 거울 기술을 가진 구인회의 해산으로 날개 곳곳에서 유리창과 거울 기술을 사용하게 됩니다.
현재로 돌아와 동랑은 자신이 배신자였음을 밝힙니다. 동백이 죽을 때까지 분노케한 것도 동랑이 배신자였음을 밝혔기 때문이죠. 동랑은 K사에 스카우트되기 위해 구인회를 배신한 것입니다. K사의 연구원이 된 동랑에게 이상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리하여 동랑, 그대는 마침내 소원을 이뤘소?”
동랑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동물을 치료하며 눈을 반짝이고 웃음짓던 과거의 소망을 지금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구인회의 폭발 이후 이상의 모든 것은 산산이 조각났고, 멈추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추었기에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때에 구보가 그를 데리고 N사로 향합니다. 사방이 하얗게 칠해진 사각형 안에서 늘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렇게 폐인처럼 살고 있는데 N사의 이사인 헤르만이 한 가지 의뢰를 합니다. 거울과 유리 속 세계, 그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파괴하는 법을 찾아달라고, 가능성을 만들고자 했던 영지의 이상과 그 모든 가능성을 비추고자 했던 이상의 이상과는 정반대되는 그 의뢰를 받지도 않았지만, 의뢰를 들으면서도 어떠한 반발조차 하지 않는 이상의 모습은 이미 생을 져버린 듯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거울의 나와 대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거울의 나를 무척 아껴 구보가 거울 세계의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달린 날개를 달고 날아가라고 말하죠. 거울 속의 상이는 묻습니다. 이상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은 것은 상이밖에 없다는 이상에게 상이는 잃어버린 것을 새로이 메꿀 생각은 하지 않냐고 말합니다. 이미 지쳐버린 이상은 내 세계는 이곳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 세계가 전부라면 적어도 이상은 이곳에서 만큼은 활력을 되찾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상의 전부는 구인회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구인회에 묶여 있는 과거의 내가 사라졌기에 현재의 내가 없고, 현재의 내가 없기에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미래의 나조차 없습니다. 그걸 바라보는 상이도 자신의 가능성을 하나도 보지 못하는 이상을 보며 모든 걸 잃은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날개>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걸 잃은 듯한 삶을 삽니다. 그저 부인이 주는 대로 밥을 먹고, 돈을 받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죠. 그가 종종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방과 바깥을 이어주는 부인의 방 정도입니다. 그 부인의 방 바깥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는 삶을 반복합니다. 자신의 방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갖추어 편안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가둬둔 자유가 묶인 감옥입니다.
사람은 자아가 있기에 자신만의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생각이 있기에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상이는 이상에게 구보가 주는 영양제를 3일만 먹지 않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거라고 말하며 두 가지의 선택지를 줍니다. 첫 번째는 다시 영양제를 먹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두 번째는 밖으로 나가는 것. 이상은 약을 먹지 않았고, 계속 열려있던 방문을 나와 흰 사각형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인이 준 돈을 들고, 거리를 나돌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던 <날개>의 주인공은 이제 박제된 채 살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더 돌아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부인은 수면제를 주었으나 한 번 맛본 자아의 해방은 막을 수 없었고, 아내가 매춘부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구보가 준 영양제가 자신의 정신을 흐리게 했고, 사실은 하나도 막힌 방문이 없었음을 깨달은 이상은 기나긴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상이 사각형 밖으로 떠난 것처럼 주인공은 거리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날아보자고 말하죠. 전혀 볼 수 없었던 의지가 불타며 이 구속된 현실에서 벗어나 자아의 해방을 원한다고 강렬히 말합니다. 하지만, 이상은 여전히 그 어떤 의지도 없고, 누구도 마주보지 못합니다. 방은 나왔지만, 여전히 방 안을 헤매고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기억의 재생이 끝나고 K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랑에게 이스마엘은 그가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바라던 것을 이루었냐는 이상의 질문과 이어지죠. 그리고 동랑은 대가 없이 무언가를 살려도 괜찮은 세상일 거라 생각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그 순수했던 과거가 구인회의 파괴와 함께 사라졌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추구했던 바는 K사에서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미 과거에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동랑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이상은 자신이 마주보지 못했음을 사과합니다. 이제 과거를 마주하고, 현재를 마주할 준비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동랑은 현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해온 행적들을 껍데기라 칭하고, 자신의 업적이 아닌 구인회의 업적이자 그늘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죠. 자신이 추구했던 그 모든 것들은 구인회에 있었으니까.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할 수 없었던 동랑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고 뒤틀립니다.
동랑도 동백과 비슷합니다. 과거에 묶여있기에 현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죠. 동백은 그래서 현재를 파괴하고자 하였으나 동랑은 표면으로라도 묶여있는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나름대로 충실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현재가 모순된 과거 위에 만들어진 헛된 영광임을 깨달은 동랑은 그 모순 속에서 모든 것을 부정했고, 뒤틀렸습니다. 하지만, 동백과 달리 동랑은 과거에 더 이상 묶이지 않았습니다. 뒤틀림이 된 채 수감자들에게 패배한 뒤 동랑은 이제 과거에 묶여 현재와의 모순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이어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발견합니다. 기술로 사람을 돕고자하는 마음. 뒤틀리고, 날개에 협력하여 희생을 만들었을지라도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던 그 이상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제 과거와 현재의 모순 속에서 헤매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E.G.O를 개화한 동랑은 과거와 현재를 모두 연결하여 늘 보고 있던 길을 다시 찾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기술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고 굳은 다짐을 합니다. 물론, 누군가의 희생은 상관없다는 생각도 여전합니다. 이 동랑을 이상과 수감자들이 막아섭니다.
전투의 끝, 여전히 이상은 흰 사각형 안에 갇혀있는 것 같다고 독백합니다.
“이제사 만물은 내게 아무 자극도 감격도 주지 못하는 점들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소.
나는 평생을 방랑하며 이 무의미한 걸음을 답습하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날개가 잘려지는 닭일 뿐이니…“
여전히 이상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갇혀진 어딘가를 헤매고 헤맬 뿐이죠. 그 어떤 것도 이상의 관심에선 벗어나 있습니다. 자신이 정해지지 않고 계속 변하니 그는 현실의 모든 것들과 같이 움직이기만을 반복합니다. 자신을 찾지 못하여 자신의 발밑조차 받칠 그 무언가를 가져오지도 못합니다. 더욱이 날아오를 날개는 아주 사라져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인 이상은, 특정지을 수 없는 이상은 오랜 과거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는 사실 자신이 쓴 편지였습니다. 다른 글도 아닌 편지를 쓴 이유는 누군가에게 이 기억을 전달하고 싶어서였겠죠. 무척 즐거웠던 웃음꽃 가득한 봄, 날이 변덕스러워 그저 피하고자 했던 여름, 추위가 다가온다 한들 그저 비스듬히 바라보고 스며들기만을 바랐던 가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던 겨울까지 이상이 겪은 그 모든 기억은 지친 이상을 이해하게 했고, 공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육신과 흘러흘러 지나가는 자신을 누군가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날개가 없어도 절뚝발이여도 자신을 살게 해줄 수 있는 그런 곳에 대한 희망을 가진 채로요.
‘거울’의 이름은 연심(硏尋)입니다. 이상은 거울이 자세하고 깊이 연구하여 만든 부산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상은 연구의 과정에서 발견한 내가 보고 싶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일 뿐이었죠. 날개가 달려있고, 당당한 이상의 모습은 현실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울>에서 말하듯 거울 속의 나는 참 반대지만 꽤 닮았습니다. 그렇기에 거울 밖의 나는 거울 속의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죠.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확률일지언정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있음을 말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자 한 이상의 거울에 비친 상들은 사실 현실의 내가 될 수 있는 상인 것이죠. 즉, 날개를 달고 있는 상이는 이상이 품고 있는 가능성. 언제든 이상은 날아오를 날개를 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상태였던 겁니다.
여전히 이상은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면 더 상처가 늘어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시간, 인연, 추억 그 모든 것들이 부서져 조각이 날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기에,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허무 같은 찰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그러나 이상은 이 모든 것을 말로 내뱉고 마주합니다. 그리고 거울을 만들었던 처음으로 돌아가 거울을 만든 이유에 답합니다.
“줄기차게 살아보고 퍼덕이며 날개짓해 보고 싶었기에 거울을 만들었고,
추락하더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 허공을 향해 날아보고 싶었소.“
그는 거울에 대단한 가치를 담지 않았습니다. 세상 만물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대단한 동기를 가지고 거울을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강렬하고 활기차게 살아보고 싶어서, 그런 가능성을 가진 나를 보고 싶어 거울을 만든 것이죠. 날개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만약 현실에서 추락한다 할지라도 그 이상을 향한 마음은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울을 쥐고 있는 내내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을지라도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거울에 내내 보였던 상이의 날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날개였습니다. 이처럼 전혀 다른 것처럼 보였던 거울의 상이와 현실의 이상은 사실 연결되어 있던 것이죠. 이제 거울은 연심(硏尋)이 아닌 연심(連心)으로 불립니다. 연결된 모든 가능성을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찔렀던 조각들이 등 뒤로 모입니다. 그리고 모든 마음이 한 곳을 가리키고서야 이상은 그토록 내뱉고 싶었지만,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내뱉습니다.
“그저 한 번 더… 날고 싶었소.”
“새장을 깨고, 자유롭게.”
이상의 날개는 완성되어 동랑을 막아섭니다. 과거를 벗어나 현재를 살고자 했으나 둘 사이의 모순에 뒤틀렸고, 그 모순을 이겨내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 길을 찾았지만, 그 길은 과거의 순수함과는 거리와 멀기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를 나아고자 하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이상에게 막혀 숨을 거둡니다.
이상은 이제 현재를 나아가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었던 구인회는 사라졌지만, 수감자와 관리자를 벗으로 삼아 마음에 새로운 것을 채우려 합니다. 흘러가며 늘 스며들기만을 바랐던 변하는 자신을 굳건히 세운 채, 거리에서 날아오르려 했던 <날개>의 주인공처럼, 늘 세상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내뱉었던 현실의 이상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이제 구인회는 자신의 모든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사랑했던 별처럼 반짝이는 과거로 변모합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에 이상은 다시 대답합니다.
“처음으로 우리가 숨을 쉰다고 느꼈던 그날을 기억하오?”
“그날의 봄을 기억한다네.
우리의 눈에는 별들이 떠올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