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사라진 순간

<림버스 컴퍼니 6.5장 워프특급 살인사건>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이전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T사의 업무를 마치고 다음 황금가지를 찾아 이제 P사가 관리하는 16구로 넘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16구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고, 길을 돌아가려면 더욱 오래 걸리기에 이번에는 늘 타고 다니던 버스 메피스토펠레스를 타지 않고, W사의 워프열차를 타고자 합니다. 문제는 수감자들이 워프열차의 실상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죠.


워프열차의 원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차원을 넘어가 어딘지 모를 차원 사이로 끼어듭니다. 그 차원들 사이를 누비는 동안 시간은 거의 멈춘 채 무척 느리게 흐릅니다. 이미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은 늙어 죽었을 만한 그 시간동안 사람들은 전부 미치고, 서로를 공격하고 찢어놓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무척 느리게 흐르기에 사람들은 죽지 않고 조각조각 나뉜 채 여행을 계속하죠. 여행이 끝난 뒤에는 워프열차를 운용하는 W사의 정리 요원들이 사람들을 조각대로 맞추어 놓습니다. 그럼 기억이 지워진 사람들은 마치 한순간에 도착한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모르면 이 열차를 이용하겠지만, W사 특이점의 단점을 모두 알아버렸는데 워프열차를 이용하고 싶은 이는 없습니다. 이미 전투 동안 다른 인격들을 보면서 이 W사 특이점의 단점을 모두 알아버린 수감자들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서 파우스트는 회사에서는 일반석이 아닌 급속 냉동 캡슐로 이동하는 일등석 표를 구했다고 말하죠. 그리고 수감자들이 전부 열차에 타고 냉동 캡슐이 닫힌 후 워프 열차는 출발합니다.


관리자 단테는 파우스트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납니다. 도착한 줄 알았던 순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파우스트의 말에 모두 의문을 표합니다. 사실 일등석 자리를 받은 것은 열차 내의 승객이 실종되는 사건을 의뢰받아 처리하는 대가로 얻은 것이죠. 다만, 여기서 제일 큰 문제가 생깁니다. ‘파우스트’의 연결이 끊긴 것이죠. 그에 당황하면서 수감자 파우스트는 상상치 못한 문제라며 크게 당황합니다. 늘 다양한 지식으로 분석과 결론을 내리며 관리자와 수감자들을 지원해왔던 파우스트의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의뢰를 해결해야 하는 상태가 된 것이죠. 그래서 늘 넘치는 지식으로 안정된 분석을 선호하던 파우스트는 평소면 하지 않을 말을 하며 의뢰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로 뛰어듭니다.


“어차피… 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추론해 낼 수 없을 테니까요.”


한차례의 전투가 끝난 후 원래라면 적에 대한 분석을 끝냈을 파우스트는 자기가 지금 가진 지식 내에서 어떻게든 적을 알아내고자 노력합니다. 먼저 뒤틀림이나 환상체의 구분이 가능한 관리자 단테에게 두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묻죠. 단테는 둘 다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꽤나 막막한 상황이지만, 적을 경험해가고 단서들을 조합해가며 추론해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느끼며 파우스트는 슬며시 미소 짓습니다.


추론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결론을 내야 하죠. 전투가 계속되었음에도 결론조차 내리지 못하는 파우스트에게 수감자들은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내 파우스트가 추론할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들의 경험들과 그에서 비롯한 생각들을 늘어놓습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이 아닌 본능에 따라 공격하는 것 같다. 신체 대부분이 붉었으며 피 냄새가 짙게 나는 것으로 보아 피가 결정화된 것을 몸에 달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나온 단서들은 파우스트가 적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도움을 줍니다. 적은 혈귀였습니다. 하지만, 보통 이렇게 많지는 않기에 여태까지 마주한 적은 직계 권속이 된 혈귀가 아닌 권속이 되지 못한 찌꺼기 피주머니였습니다. 하지만, 피주머니가 적으로 계속 나타난다는 것은 이번 의뢰의 최종 보스가 혈귀라는 것을 누구나 추론할 수 있게 했습니다.


파우스트는 여전히 불안하고, 어둠 속에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완전히 고립된 바다 위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앎이라는 것은 이렇게나 소중합니다. 인간은 그 무수한 무지의 바다를 건너고, 이겨내기 위해서 다양한 지식들을 쌓아왔습니다. 몇몇 지식은 풍화되어 사라졌으나 많은 지식은 길고 긴 시간을 전해 내려와 우리 옆에 여전히 있기도 합니다.


이 지식들은 우리가 세상을 구분하고 분석하며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다익선이라는 말만큼 지식에 잘 어울리는 말도 없죠. 그래서 파우스트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통제 범위에서 일을 했고, 분석 속에서 행동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넓고, 깊기에 인간이 재단한 지식만 가지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앎의 범위에서 벗어나 그저 경험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파우스트가 그렇습니다. 물론 파우스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늘 의지해 오던 지식이 없어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해 나가야 한다는 상황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파우스트는 이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해냈고, 적의 본체까지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의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혈귀를 잡아내야 의뢰가 끝난 것이죠. 추론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 승객 칸의 마지막에는 혈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혈귀를 쓰러뜨리는 것은 현재 수감자들의 실력으로는 어렵지 않았으나 죽음이 사라진 열차에서 강력한 회복력의 혈귀를 쓰러뜨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수감자들에게 몇 번이나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받은 혈귀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했습니다. 그 와중에 열차의 마스터키가 혈귀의 손에 넘어감에 따라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파우스트는 이 상황의 원인을 자기가 ‘파우스트’에 너무 의존해왔다는 점에서 찾으며 자신을 탓합니다. 이건 우리네 삶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늘 앎에 의존합니다. 지식에 의존하고, 지식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세상의 진리이자 법칙인 것처럼 말하죠. 하지만, 지식이 매번 맞는 것도 매번 옳은 것도 아닙니다.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는 것이죠.


파우스트는 ‘파우스트’를 잃은 상태이지만, 여전히 훌륭한 수감자입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자기의 한정된 앎과 엮어 좋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죠. 불확실 속에서 답을 만들었고, 의뢰의 해결방안을 확실하게 제시했습니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앎보다 그 앎을 삶에 적용시키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만 바른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앎은 경험이든 추론이든 얼마든지 다른 수단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즉, 앎이 없는 불확실함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에 단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불확실이란 건 우리에게 꼭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

“네가 그랬었잖아. 계획이 없는 것도 하나의 계획이라며.”


관리자는 다시 길을 제시했고, 파우스트는 불확실함에 몸을 맡겼습니다. 관리자와 파우스트는 혈귀에게 협상을 제시했고, 협상을 하기 위해 승객 칸 뒤의 화물칸으로 향합니다. 화물칸엔 그 모든 차원을 넘어 연결해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있었고, 불확실에 몸을 던진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와의 연결로 성과를 얻어냅니다. 하지만, 그 많은 지식으로도 여전히 혈귀에게서 마스터키를 가져올 수는 없었습니다.


길고 긴 대치 상황 속 몸을 가까스로 추스른 돈키호테가 나타났고, 협상을 깨려고 합니다. 그걸 말리려는 관리자와 파우스트 사이에서 셋의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돈키호테를 권속으로 만들려 혈귀가 돈키호테의 목덜미를 뭅니다. 물자마자 돈키호테가 그 어떤 때에도 벗지 않았던 신발 ‘로시난테’가 벗겨지고, 벗겨짐과 동시에 혈귀 제2권속의 힘이 풀려납니다. 고작 제6권속에 불과했던 적은 2권속을 물은 패륜을 저질러 그대로 녹아 없어지고, 제2권속의 상태인 돈키호테는 단테를 ‘약속의 시계’라 칭하며 로시난테를 다시 신겨달라고 말합니다. 로시난테를 신은 돈키호테는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죠.


시계를 돌려 모든 수감자들을 깨웠습니다. 의뢰는 해결했으나 한 가지 문제가 남았습니다. 적 혈귀와 함께 마스터키가 녹아 이제는 냉동 캡슐이 있는 일등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었죠. 하지만, 이제 ‘파우스트’와 연결된 파우스트가 자기의 압도적으로 많은 지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한 뒷문을 열고 10초만 있다가 나오면 도착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뒷문에서 온갖 이상한 것들을 마주했던 수감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나올 거냐며 파우스트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마 예전에 파우스트라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지식을 찾아내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 속 지식의 한계와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지식이 사라졌던 그 순간을 생각하며 이렇게 답합니다.


예상치 못한 걸 마주하게 되는 경험도…훗날을 위해 필요할 테니까요.


10초 동안 모래폭풍에서 모래를 잔뜩 삼키고 나오자 관리자 일행은 P사의 워프열차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파우스트’와 연결된 파우스트는 분석 잘하고 설명 좋아하며 거의 모든 것을 아는 전지전능에 가까운 이로 돌아왔지만, 분명 워프 열차에 타기 전과는 다릅니다. 삶의 불확실성이 지식으로 전부 해결될 수 없음을, 자신의 전지전능한 지식이 완전히 한계에 부딪힐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이제 전지전능에 가까워졌습니다. 다양한 지식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다양한 도구를 통해서 이 모든 지식들을 저장하고, 새로 생산하는 도구들까지 만들어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삶은 장대하고 오묘하며 그 깊이를 알 수 없기에 지식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함을 확실함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전지전능함을 버리고 불확실함을 불확실함 그대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모든 지식이 쓸모없는, 혹은 모든 지식이 사라진 순간에도 삶의 길 위에서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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