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신가요?

<림버스 컴퍼니 6.5장 시간살인시간> 끝까지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이전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매일이 여유로워 보이는 여자가 있습니다. 주변을 누구보다 잘 살피고 신경 쓰지만, 주변을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 가난한 이들의 권리에 누구보다 민감하지만,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냉정하고 차갑게 분석하여 사회를 비판할 뿐 따스한 두 팔로 감싸 안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여자. 오랜 친구를 만나 과거를 들여다보았지만, 마음속 갈등의 해소는 전혀 하지 못하고 추위에 떨며 시간을 보내는 여자. 그의 이름은 로쟈입니다. 길을 거쳐오면서 수감자들이 자기 마음을 터놓고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12명의 수감자 중 6명의 마음을 되짚어 왔음에도 그렇습니다.


색이 바래고 바랜 T사가 지배하는 20구의 일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다만,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일행 앞에 T사의 징수직 직원이 나타나 100억 4천만 안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시간세를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대뜸 엄청난 액수의 시간세를 내놓으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일까요? 사실 이 시간세의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시간이 돈이 되는 이 T사에서 관리자 단테는 딱 한 번 시간을 자기들을 위해 왜곡시킨 적이 있습니다. 마왕 히스클리프를 따라잡기 위해 공간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던 그때, 엄청난 시간세가 부과된 것이죠. 개인도 아니고, 공간 자체의 시간을 왜곡했으니 T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징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돈을 당장 낼 수는 없겠죠? 회사 간의 긴 협상을 통해 한 가지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시간 살인마’로 명명된 뒤틀림을 찾아달라는 것이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3명이 대표로 선발됩니다. 로쟈, 료슈, 홍루. 나머지는 볼모로 징수소의 유치장 안에 갇힙니다. 시간 살인마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은 목격자들을 통해 T사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봅니다. T사에서도 표준시는 A사의 시간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있고, 서민들은 더 적은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같은 도시에서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24시간 안에서 48시간을 사는 사람은 당연히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4시간을 사는 사람은 속도가 느려지겠죠? 그래서 같은 하루지만, 누군가는 무척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자는 시간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삶의 보장을 위해 하루 최저 시간은 정해져있지만요.


시간 살인마는 이처럼 재산으로 관리되는 각기 다른 시간을 그 사람에게서 잘라냅니다. 시간을 뺏는 것은 도둑이나 강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재화를 보관하는 시계를 통해서요. 하지만, 시간 살인마는 다릅니다. 그 사람의 시간 자체를 통째로 뺏어감으로써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 시간에 온전히 존재하기 힘들게 합니다.


시간 살인마를 뒤쫓던 중 ‘유로지비’라는 단체가 나타납니다. 소냐가 만든 유로지비는 그저 말뿐인 허상으로 가득한 단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곳의 유로지비는 T사 내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많아 지루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시간이 너무 없어 고단함만이 늘어나는 T사의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해소해보고자 T사에게 무력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단체였습니다.


로쟈는 당황합니다. 누구보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자기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멈춰있는 동안 친구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감정이 바깥으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약간의 열등감과 함께 말을 내뱉고야 말죠.


“내가 멈춰 있는 사이 소냐가 이루어 내려고 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니까 뭔가 기분이 좀… 묘하네.”


말을 내뱉고서 마음이 요동치는 와중 열심히 뒤쫓아서 간신히 얼굴을 마주하게 된 시간 살인마는 로쟈를 마주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지금…지루해하고 있으니까. 때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시간 죽이기나 하면서.”


로쟈는 6장을 거쳐오는 제법 긴 여정 동안 한 번도 무의식적인 것은 몰라도 의식적으로는 단테와 함께하는 이 여정이 무언가를 해내는 여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다양한 경험, 흘러넘치는 마음들은 로쟈와는 관련이 없는 무엇이니까요. 로쟈는 주변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로쟈와는 달린 주변을 사랑하는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기준에서는 노숙자일 뿐이지만,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 그 아이는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모두가 사랑을 나누게 하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 앞에서 아이들은 꿈과 희망을 되찾고, 어른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으며, 절친한 친구들은 마음의 안정감을 찾습니다. 그녀는 현대 사회의 기준에서는 한량일 뿐이지만, 그녀는 세상 만물의 시간을 듣고, 삶의 말들을 찾아냅니다. 늘 누군가를 기다릴 뿐이지만, 그녀의 기다림은 로쟈와 달리 시간 죽이기가 아닌 시간을 더욱 빛내는 행위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모모’입니다.


로쟈가 시간 살인마를 쫓는 것처럼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회색 신사를 쫓습니다. 회색 신사가 시간을 뺏어가면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효율’과 ‘속도’에만 신경씁니다. 삶을 돌아보고 누군가와 이야기할 시간은 없습니다. 시야를 좁힌 채 열심히만 살아야 하니까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더 촉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시간 죽이기에 가깝습니다. 회색 신사들은 그 죽인 시간들을 뺏어가지요. 이러한 삶은 지루함 속에서 우리가 가진 시간들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모모≫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호라 박사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그저 시간을 말과 개념으로만 대하면 시계에 적힌 숫자로만 보이고, T사의 재화처럼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시간은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자체이며 누군가의 삶은 무척 작지만, 우주처럼 장엄하고 광대하기도 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의 소중함은 재화로서의 소중함일 뿐 삶 전체의 소중함으로 다가오지는 못할 테죠.


모모는 주변을 사랑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진심으로 대하기에 자기의 시간을 지킬 수 있었고, 회색 신사들이 뺏어간 시간을 모두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쟈의 시선은 여전히 좁습니다. 자기 옆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일들, 일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것은 흘러가는 하나의 순간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생각, 행위의 시작점은 우리의 시간, 삶,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분석적이고 추상적이며 고차원적인 학문도 그 시작점은 일상생활임을 강조했습니다. 학문이 고도로 발달하여 마냥 쉬울 수는 없고 어려운 것도 당연하나 그 과정에서 일상에 대한 관심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요. 로쟈의 이상은 드높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모두 자기 삶을 누리는 그런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의 만족을 위한 이상을 뿐입니다.


시간 살인마에게 정곡을 찔린 로쟈는 시간 살인마를 붙잡지 못합니다. 한 번 놓쳐버린 시간 살인마는 T사에서 하루를 정확히 알려주는 시계탑의 시계가 고장났다는 료슈의 추리로 어렵지 않게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혐오로 뭉친 다수의 인격들로 만들어진 시간 살인마는 제압 후 T사에게 넘겨집니다. 사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사건을 해결한 일행은 신문에도 실립니다. 모두가 즐거운 한 때를 만끽하는 가운데 단 한 명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자기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로쟈. 가면 속에 숨겨진 우울감과 무력감이 관리자의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고 변화해야 하는 것은 로쟈 자신이기에 관리자는 아직 도와줄 수 없습니다.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시간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을 쓰는 와중에 지루함과 허무함이 가득할까요? 아니면 즐거움과 충만함이 가득할까요? 누군가는 시간을 열심히 쓰고 있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고, 누군가는 시간을 여유 있게 쓰고 있지만 거기서 삶의 진리를 깨닫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쓰고 계신가요? 로쟈처럼 쓰고 계신가요? 모모처럼 쓰고 계신가요? 두 사람의 대조되는 삶의 태도는 시간을 악착같이 쪼개 쓰는 현대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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