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버스 컴퍼니 7장 꿈이 끝나는>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이전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꿈은 끝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과거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빌려온 꿈, 대신 꾼 꿈을 돌려줄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수감자 돈키호테는 혈귀 돈키호테의 꿈을 대신 꾸었을 때 자기 의식이 하나도 없었을까요? 수감자 돈키호테가 걸어온 꿈의 길은 허황되고 거짓되기만 한 것일까요? 혈귀 산초의 기억 속에 수감자 돈키호테의 기억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녀가 뱉었던 모든 말, 자신 있게 행했던 모든 행동, 그 과정에서 만들어 온 관계들. 그것은 꿈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분명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감자 돈키호테라는 또 다른 과거로부터 혈귀 산초의 현재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혈귀 돈키호테의 몸에 꽂혀있는 황금가지는 공명합니다. 우리가 전부 알지 못하는, 혈귀 산초가 전부 인지하지 못하는 과거를 전부 드러냅니다.
망각의 강물을 마신 산초는 등대에 갇힌 채 해결사들의 잡지와 책을 보며 해결사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책에서 보는 꿈은 정의롭고 강합니다. 현실의 해결사와는 다른 이상 그 자체. 소설에서 돈키호테가 추구하였던 편력 기사의 이상과도 비슷합니다. 이 이상은 현실을 만나지 못하며 더더욱 커져만 갑니다. 기사 돈키호테가 기사 소설에 푹 빠진 채 상상 속에서 이상을 키워 왔듯이 산초의 꿈은 점점 커집니다. 하지만, 그 꿈은 망각과 거짓 위에 쌓아올려진 것. 그 망각과 거짓을 깨뜨리려 길잡이가 찾아옵니다.
등대 안 무수한 해결사들과 모험을 떠나는 산초를 밖으로 꺼내고자 길잡이는 산초의 이름을 묻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망각 속, 산초는 ‘돈키호테’라고 이름을 말합니다. 이름마저 빌린 여정. 그 시작은 단 하나 혈귀 돈키호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혈귀 돈키호테는 인간의 편에 서서 혈귀 전쟁에 참가하고자 합니다. 가족들의 이해를 바라며 참전을 산초와 고민합니다. 그리고 혈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놀이공원을 만들고자 합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장소.” 비극과 비명의 반복과 순환만이 남은 라만차랜드의 원래 목표는 모두의 행복이었습니다. 싸움과 두려움 없이 웃음소리만 가득한 곳. 인간들을 죽이거나 지하 세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아야만 혈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꿈을 꾸는 자. 어쩌면 고작 정의로운 해결사를 꿈꾸는 수감자 돈키호테의 꿈과는 비교도 안 될 미친 꿈. 꿈이란 크고 무모해야 하지만, 혈귀의 본성이라는 현실을 잊은 꿈은 모두의 절규를 불러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산손은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요?”
200년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해 낸 산초는 그 언젠가의 끝난 꿈을 기억해내며 이렇게 답합니다.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
혈귀 전쟁을 앞두고 가족들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돈키호테, 산초, 돌시네아, 이발사, 신부, 그들은 미치지도 않았고, 멀쩡히 가족으로서의 정을 느끼며 돈키호테의 꿈을 돕고자 합니다. 무척 강한 돈키호테의 승리는 예정되어 있습니다. 꿈을 꾸고 앞을 보는 돈키호테에게 현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래가 중요합니다. 산초가 “어떻게 살아갈 생각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돈키호테는 희망적인 미래가 오기를 바라고 기대합니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서 살 수 있는 삶이란… 그럴 것 같지 않니.”
그 말들은 너무 크고 빛납니다. 손으로 별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무척 아름답지만, 현실과의 거리는 한참 떨어진 그 말들은 마음을 움직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을 시큰둥하게도 합니다. 그럼에도 기대하게 합니다. 그 말을 꺼낸 것이 어버이인 돈키호테이기에.
돈키호테는 몸에 황금가지가 꽂힌 채 산초를 기다립니다. 문을 열어 깊은 자아심도가 드러나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길을 막는 혈귀와 피주머니를 압도적으로 쓸어버리며 나아가는 산초를 버스팀은 급히 따라갑니다. 버스팀에서는 배신감을 느끼는 자도, 진짜로 돈키호테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자도, 안타까워하는 자도 있습니다.
버스팀과 함께 했던 그 꿈. 그 꿈의 시간을 완전히 거짓으로 치부하는 산초에게 남은 것은 혈귀라는 정체성입니다. 돈키호테도 이를 인지합니다. 아마 200년의 시간동안 이미 깨달았을 말이 돈키호테에게서 나옵니다.
“사람은…바뀌지 않아.”
꿈이 바스락, 부서집니다.
산초는 묻습니다. 비참한 꼴로 기둥에 황금가지와 말뚝으로 꽂혀있는 돈키호테를 다른 가족들이 만든 것이냐고. 돈키호테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자기 가족 산초만은 정말 멋진 모험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허나 망각을 택한 미래에 거짓뿐인 모험만이 있었고, 망각의 꿈에서 건져 올려졌을 때 남은 것은 피를 탐하는 혈귀 하나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레판토 해전에서의 명예를 마지막으로 해적에게의 납치, 삶의 궁핍함, 신대륙으로 향하는 요구의 거부, 횡령으로 인한 징역. 그의 유일한 재능이었던 글은 그의 이름은 좀 알려주었으나 그가 처한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꾼 꿈. 모험과 기사를 향한 이상의 열망은 늘 현실 앞에서 꺾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사 돈키호테를 그려냈는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모든 비웃음과 고난에도 자기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 그의 삶이 비록 비웃음거리가 될지라도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는 신념을 가진 인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치 돈키호테가 빌려준 꿈에서 산초가 새로운 모험을 하고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꿈속에서 새로운 모험을 했던 것은 맞으나 그 모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모험을 혼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초가 돈키호테의 꿈을 빌려 했던 모험을 통해 본 세상을 같이 본 이들이 있습니다. 분명 각자 다른 관점에서 관찰했지만, 모든 경험을 함께 했던 동료들. 그 경험을 통해 신뢰가 쌓였기에 배신감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아직 배신을 말하고, 꿈을 끝내기엔 이르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전히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은 한 명. 수감자들의 길을 밝히는 관리자입니다.
“네가 깨닫고…그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함께하길 바랐어.”
하지만, 수감자들과 함께한 세월은 너무 짧고, 혈귀로 살아온 세월은 너무 깁니다. 꿈은 짧고 현실은 길죠. 완전히 꿈을 끝낸 산초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나오지 못한 기사 돈키호테처럼 등을 돌려 반대로 나아갑니다.
산초가 나아가는 곳은 돈키호테가 있는 곳입니다. 그들이 꿈을 꿨던 순간을 공유하며 즐거워하지만, 동시에 그 꿈을 공유하지 못하는 본성이 다른 이들을 전부 적으로 취급하며 갈라놓습니다. 그들은 현실에서 만나 꿈을 공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꿈에서 만난 존재일 뿐이니까요.
너무도 다르게 보이는 돈키호테에 다들 당황하지만, 단 한 명만은 확실하게 말합니다. 눈이 빛나는 것을 계속 보고 있던 수감자. 홍루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혈귀의 본성을 억누른 수감자 돈키호테와 혈귀 산초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존재의 운명이 마냥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본성이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산초에게만이라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돈키호테와 산초는 그저 선택의 차이일 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 늘 꿈을 꾸었던 빛나는 눈으로 했던 그 선택을 다시 함으로써 다시 꿈을 꾸는 돈키호테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 일말의 기대를 여전히 관리자는 놓지 않습니다.
돈키호테와 산초의 과거가 다시 펼쳐집니다. 라만차랜드가 만들어지기 전, 모두가 인간과의 공생을 꿈꾸며 희망을 가집니다. 맛은 없지만, 영양소는 모두 챙긴 ‘혈액바’라는 것을 만들어 혈귀의 생존도 도모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안정적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신부는 숨기는 것이 있을 정도였죠.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돈키호테와 산초는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모험. 행복을 찾기 위한 모험. 하지만, 정작 혈귀의 행복과 연결된 피를 모두 뺐긴 라만차랜드에선 불행만 남아 서서히 모두를 잠식하였습니다. 행복을 위한 꿈이 모두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역설이 만들어낸 라만차랜드가 지금의 모습입니다. 바뀌지 않은 사람. 바뀔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과거의 돈키호테는 그 현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한 꿈이었으니까요.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하는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단 하나의 규칙을 만듭니다. 결코 인간은 해치지 말 것. 그리고 그 규칙을 남겨두고 산초와 모험을 떠납니다. 연극과도 같은 유치한 모험. 그를 진지한 성격의 산초는 잘 맞추지 못합니다. 그를 보고 꿈을 꾸는 자가 말합니다.
“인생은 원래 유치해야 재밌는 법이야.”
그가 꾸는 꿈. 그가 보는 세상. 그가 만들고 싶은 세상. 단순합니다. 혈귀와 인간이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것. 그 세상에서 그는 최초의 혈귀 해결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미 도시에서 손에 꼽히게 강하겠지만, 그 길을 걷기 위해 그는 유치함을 택했습니다. 꿈과 행복을 향한 한발자국, 유치함. 하지만, 이 유치함을 모두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머나먼 뒤편을 바라보는 꿈 꾸는 자를 모두가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라만차랜드로 돌아온 돈키호테를 반긴 것은 피비린내였습니다. 어버이의 규칙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분노한 어버이를 누가 상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발사, 신부, 돌시네아를 비롯한 권속들은 치밀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맘브리노 투구를 돈키호테가 발견하여 착용하도록 만들었죠. 원작에서 돈키호테의 광기를 더욱 강조하는 세숫대야는 어버이의 힘을 억눌러 어버이에 반역하는 금기를 억누르는 저주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기사의 꿈을 상징하던 투구는 해결사의 꿈을 꺾는 투구로 변했습니다. 힘이 약해진 돈키호테는 자기 꿈을 도려내어 산초에게 넘겼고, 산초는 절규하며 라만차랜드를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라만차랜드의 200년은 지옥이었습니다. 본노한 어버이는 라만차랜드의 문을 닫아버렸고, 권속들은 어버이를 막기 위해 어버이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기둥에 고정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혈귀들은 거의 대부분 미쳐버렸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겪어왔던 이발사, 신부, 돌시네아는 앞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겪어왔던 고통을 로시난테를 신은 산초와 수감자들이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삶의 모든 것을 잃은 그들은 불쌍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피라는 것을 생각하면 잔혹하기만 합니다. 꿈을 꾸지 못하는 이들. 본성의 현실에서 반복만을 계속하는 이들의 본성을 실현시켜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한 이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혈귀 산손입니다. 황금가지를 건네어 라만차랜드를 다시 세상에 풀어놓았습니다. 혈귀들은 이제야 피의 행복을 다시 맛보고 지옥에서 벗어났지만, 인간들과의 갈등 속에서 다른 지옥이 또다시 펼쳐집니다.
돈키호테의 꿈은 끝났습니다. 인간과의 공존, 정의로운 해결사. 그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삶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의 꿈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미쳐가는 그의 가족들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의 안녕과 어버이로서의 책임만큼은 다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다시 인간의 증오와 미움을 받아내는 대신 가족의 행복을 택한 것이죠. 하지만, 그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를 보는 산초의 말과 모습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산초는 돈키호테의 모험과 꿈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이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돈키호테의 앞에서 이발사, 신부, 돌시네아를 모두 물리칩니다. 돈키호테의 꿈을 포기하고 지키고자 했던 책임들이 스러집니다. 이제 돈키호테의 말을 들을 가족은 산초 하나뿐입니다. 돈키호테는 가족을 해한 이들을 향해 공격을 명합니다. 그들은 가족을 행한 이들이기도 하지만, 산초의 꿈과 연결된 단 한 가닥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그 순간을 함께 했던 모든 이들. 그것이 끊어진다는 것은 정말 꿈을 향해 나아가던 길을 돌아와 제자리를 맴돈다는 것이겠죠. 완전히 꿈이 끝나는 순간일 것입니다.
“나는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다 생각하였지만…
나는 흔적에 불과해. 돌기만 하는 목마 위에서…
대지를 박차 달리며 바람을 가르는 말의 꿈을 꾸기만 하던…”
간신히 나아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제자리를 맴돌려는 산초와 그를 다시 나아가게 하려는 동료들이 부딪힙니다.
싸움을 하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끈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기에 그 꿈을 향했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에. 싱클레어가 산초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정의로운 해결사를 위해 노력하겠다던 산초는 온데간데없고, 혈귀에게 피를 먹이며 라만차랜드를 운영하겠다는 산초의 대답만이 돌아옵니다.
꿈을 끝내고 관계를 닫으려는 산초와 버스팀 사이에는 닫힌 문이 서있습니다. 버스팀은 늘 미래를 향하는 팀입니다. 소망이 있어서 버스팀에 합류했고, 그 소망을 이루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버스팀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눈빛의 산초에겐 그 소망이 결여되어있습니다. 미래로 나아가고자 함이 없습니다. 관리자가 길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 싱클레어가 질문을 던집니다.
“꿈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면요?”
산초는 꿈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렇게 보입니다. 혈귀로 돌아온 그 본성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중심부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팀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망설임.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다시 숨기는 돈키호테의 망설임. 그 속에 숨은 꿈을 싱클레어가 다시 건져 올릴 준비를 합니다. 그 망설임 속에 숨겨진 꿈의 한 자락에서 꿈의 시작을 마주합니다.
하얀 달의 기사, 미쳤지만 그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찬란한 꿈을 꺾어버린 장본인. 원작에서 꿈을 끝냈던 그 기사가 꿈을 시작하기 위해 성에 나타납니다. 혈귀들의 불행의 근원을 알려주기 위해 돈키호테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결투에 응해준다면 돈키호테가 원하던 것을 자기가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요. 그녀는 해결사의 규칙이라면서 결투의 규칙을 얘기하고 끝없는 재결투를 하며 이전에 없던 개념과 지식을 돈키호테에게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늘 상투적인 이야기가 그렇듯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됩니다. 이야기 속에는 즐거움, 재미, 그리고 꿈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늘 돈키호테의 수발을 들던 산초가 있었습니다. 그 꿈과는 한참 거리를 두었던 산초는 어느새 그 꿈과 가장 가까운 이가 되었습니다. 빌려왔다고만 생각한 꿈. 자신의 꿈이 아니라고 생각한 꿈.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꿈. 그것은 모두 사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이미 자기 마음속에서 자라나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수감자 돈키호테는 혈귀 돈키호테의 대리뿐만이 아니라 혈귀 산초의 소망도 함께 이뤄나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가 엉터리이고 허풍이라고 말했던 이는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그 엉터리이고 허풍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 꿈이 자기 자신에게서 이어진 꿈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제2권속 혈귀 산초는 너무 강하지만, 수감자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감자 돈키호테가 바라봤던 세상은, 그리고 꾸었던 꿈은 수감자들이 같이 보았고, 같이 꾸었으니까요. 그들의 관계 속에서 포기했던, 끝냈던 꿈을 다시 잇고자 합니다. 혈귀인 산초를 보았음에도 그들은 한마디씩 보탭니다. 그들은 지금의 산초 이전에 있었던 수감자 돈키호테의 꿈의 시간과 공간을 전부 함께한 이들. 그 유치하고 어이없는 꿈이 끝나도록 놔둘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산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다시 꿈으로 돌아가도록 말을 겁니다. 꿈이 끝났다고 말하는 산초에게 꿈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 꿈을 함께하는 우리가 있으니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면서요.
7장까지 이어진 모험은 거짓 꿈이 아닌 진짜였고, 내일로 향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산초는 돈키호테의 꿈으로 약속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꿈으로 바리에게 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얀 달의 기사가 돈키호테에게 주기로 약속한 내일은 끝내 낡고 찢겨져버린 돈키호테의 꿈을 지나 산초의 꿈에게로 왔습니다. 산초가 찾는 내일, 삶에 대한 기대, 그 모든 것을 담은 꿈이 산초에게 돌아옵니다.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산초가 묻습니다.
“모험은…끝나지 않았는가?”
관리자가 답합니다.
“그래.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중이야.”
다시 혈귀의 본성을 잊고, 미친 꿈을 꾸며, 세상에는 거의 없는 정의로운 해결사가 되고 싶은 수감자가 돌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돈키호테에서 산초로 바뀌어 빌려온 꿈에서는 벗어났으나 자기가 겪어온 모든 경험에서 키워낸 꿈은 다시 산초를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제 산초는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기사 돈키호테는 죽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왔고, 정신을 차려버렸습니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꿈이 사라진 돈키호테에게 삶은 더는 무의미했습니다. 돈키호테의 비석에 적힌 말은 이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미쳐서 살고 제정신이 들어 죽었노라.”
이렇게만 죽게 놔뒀다면 기사 돈키호테의 삶도, 작가 세르반테스의 삶도 허무함만이 남았을 겁니다. 하지만, 기사 돈키호테의 꿈과 광기의 원천이었던 돌시네아의 아름다움(귀부인으로 착각한 돌시네아는 평범한 촌의 아낙네였습니다). 그것만은 돈키호테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꿈을 끝낸 하얀 달의 기사도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투의 승리 후에 그 아름다움을 인정해 버립니다.
꿈은 현실에 부딪혀 꺾였지만, 그 꿈에 담긴 정신마저 꺾지는 못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미지를 향한 모험은 늘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그 현실은 돈키호테의 귀향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모험을 향한 열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작은 희망은 다 꺾지 못한 돈키호테의 정신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르반테스가 겪은 고통과 고뇌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희망과 함께 했다.”
우리는 산초가 겪은 고통과 고뇌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이 끝나려는 그 순간까지도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꿈을 빌려주고 심어주었던, 먼저 미친 길을 걸었던, 하지만 이제는 정신을 차린 돈키호테가 꿈의 말에서 낙마하여 길을 막아섭니다. 어버이이자 영웅, 동료이자 꿈이었던 그는 너무나 강했습니다. 그 싸움에서 어설프고 무모하였지만, 가슴이 뛰던 나날들을 떠올립니다.
해결사라는 꿈을 심어준 바리의 말
“무릇 해결사란…생각은 순수하게 말은 정직하게, 행동은 관대하게.
모험은 용맹스럽게 하고, 고난은 견뎌가며,
어려운 자들에게는 자비롭게.”
그에 동조하는 돈키호테의 말
“목숨을 걸고서라도 꿈을 잡으러 가는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켜야 할 바리와 한 약속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서로 남김없이 이야기해 주는 거야.
서로가 겪은 여정에 대해.”
이 기억이 모두 스쳐지나가고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을 산초는 내뱉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제자리만 도는 말 위라고 해도…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그 꿈을 끝내기 위해 돈키호테는 강력한 공격으로 수감자들을 쓸어버립니다. 그리고 관리자를 없애기 위해 강력한 창을 날립니다. 관리자가 고개를 떨군 순간 그 창을 산초가 막아섭니다. 돈키호테는 혈귀의 본성이 그녀를 낙마시킬 것이라 말하지만, 산초는 대답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연극처럼 보일 지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제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서
이야기가 이어진다면…
그것이 저의 당신의 꿈이 될 겁니다.”
그 찬란한 별과도 같은 꿈을 바라보며 관리자는 팔을 내뻗고 마지막 창을 만들 힘을 쥐어줍니다. 꿈이 끝나지 않은 길은 가시밭길이고, 어둠에 삼켜졌더라도 가시를 쳐내고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길이 있는 한 관리자의 인도는 길을 나아갈 방도를 제시합니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각자 마지막 창을 들고 격돌합니다. 혈귀의 천성과 책임의 무게가 별처럼 빛나고 그 어떤 힘보다도 강대한 꿈과 부딪힙니다.
“내 이름은… 키호테!
돈키호테! 이 창으로, 그 허황되고 유치한 꿈을… 끝내겠다!”
“내 이름은 산초!
이 창으로 곪아 썩은 나태한 꿈을 끝내겠습니다!”
“꿈에 닿을 수 없더라도…
닿을 때까지
아니…이 몸은 끝까지 달려나가겠소!!”
곪아 썩은 나태한 꿈은 허황되고 유치한 꿈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이루기 힘든 것이기에 꿈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꿈이기에 돈키호테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죽기 전 돈키호테는 자기의 꿈과 산초의 꿈이 모인 모험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산초는 울며 자기가 바라볼 세상을 향해 자기의 꿈을 외칩니다. 망각으로 끊어진 꿈도 아니고, 현실이 부딪혀 끝나버린 꿈도 아니고, 책임에 짓눌려 희망을 바랄수도 없는 꿈도 아닌 온전하게 이어진 꿈을.
“본인은…여정에서…
12명의 가족을 만났소.
그들과 함께…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며…
정의를 행하고… 한 순간도…희망을 포기한 적 없었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꿈을 이해하였으니.
이제… 그 높고 먼 꿈을 향해 또 다시 모험하리라.
다시 한 번 인사드리리다.
본인의 이름은… 키호테…
거기에 고귀하다는 뜻의 성을 붙여, 돈 키호테.
그대와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갈 해결사라네.”
이 꿈을 향한 모험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반짝거리는 꿈을 가진 모험이더라도 중간에 어떤 것을 만나 변하고, 스러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기사 돈키호테의 모험은 정신을 차림으로써 끝났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끝맺지 못한 그 모험은 결말은 비극이었으나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었고, 고통받는 몇몇 이를 구했으니 실패한 모험은 아닐 겁니다. 모험이 끝날 때까지 그 정신은 지켜내었으니 꿈에서 가장 중요한 희망만은 남겨두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돈키호테의 마지막을 집필하여 남긴 꿈과 희망이 이어지는 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모험이 결말에 도달했는지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모험은 아직 결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꿈을 담아낸 책은 널리 퍼져 전세계에 꿈을 전달했고, 그 꿈을 이어받은 이들이 모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모험 속에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친 사람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돈키호테를 품고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지를 향한 모험, 이것이 세르반테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꿈과 모험을 사랑했던 이였기에.
수감자 돈키호테, 기사 돈키호테, 작가 세르반테스가 보여주는 세상은 더없이 빛납니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세상은 각자의 꿈을 담고 있습니다. 그 세상들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읽는 이들에게 이어집니다. 이어진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가끔 고꾸라질 때도 있지만, 희망이 등 떠밀어주는 한 그 꿈에서 이어진 다양한 꿈과 세상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