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끝나는

<림버스 컴퍼니 7장 꿈이 끝나는>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이전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현시점 세상은 ‘근대’라 불립니다. 한글로는 근대가 아닌 현대가 익숙하겠지만, 원래 ‘근대’라는 말의 어원인 ‘modern'은 지금의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말로, 현재 시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근대에는 현재 시대를 나타내는 많은 말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를 표현하자면 가장 ‘인간의 시대’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법칙을 찾아내어 정리한 후 대부분의 것을 인간의 편리에 맞추어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원래는 신의 것이었던 세상의 관리를 인간의 것으로 만든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이성’이었습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힘, 이성은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는 신이 가진 질서 체계를 인간이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인간 주체’라는 말이 탄생하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초기의 근대와 현재는 조금 다릅니다. 초기의 근대에서 인간 주체를 만들어낸 이성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능력. 인간 모두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보편적 이성은 잘 쓰이지 않습니다. 그 시대에 등장한 한 말이자 가설일 뿐이죠. 우리를 떠받들고, 자연을 지배해온 이성은 사실 자연에 귀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성을 이용한 쉬운 이분법으로 세상을 단절하고, 규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러 modern의 근대를 뛰어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합리가 아닌 다수의 개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세상은 정말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음을, 정말 많은 이의 생각, 꿈들이 다양한 세상을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잠을 자는 이가 있습니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너무 달콤합니다. 그녀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로운 일을 행하려는 해결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은 어려워 보이지만, 그 꿈을 꾸고, 길을 걷는 그녀의 눈빛은 늘 반짝입니다. 림버스 컴퍼니 버스팀의 수감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돈키호테’입니다.

6.5장에서 살펴봤다시피 그녀의 진짜 정체는 혈귀입니다. 하지만, 로시난테라 불리는 마법의 신발 위에 올라타 있는 동안 그녀는 계속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잠시 잠에서 깨어났던 그녀는 이제 다시 수감자 돈키호테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워프열차의 종착점은 P사의 정류장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버스팀은 의뢰를 받습니다. 다만, 이번 의뢰는 조금 달랐습니다. 버스팀만 일하는 것이 아닌 다른 해결사 사무소들과 협력해서 일을 해야 하는 의뢰였습니다. 다만, 버스팀에게는 그냥 의뢰 전달이 아닌 날개의 부장급이 와서 의뢰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버스팀에게 더 바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죠.


정류장에는 곳곳에 실종자 전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전단지는 P사의 한 뒷골목에서 나타난 놀이동산 ‘라만차랜드’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한 이들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 몇 명 죽는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으니 사람들을 구해오는 것이 주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라만차랜드의 발생 원인을 찾아 없애는 것은 한 구역을 담당하는 P사로서는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P사 부장이 버스팀을 만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라만차랜드를 만들어낸 누군가나 무언가를 찾아 그 안에 있는 황금가지와 교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을 다루는 특이점을 사용하는 P사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공간의 기술을 가진 라만차랜드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죠.


정의로운 해결사를 꿈꾸는 돈키호테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보다 실종자들을 구하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여 평화를 가져온다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의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혈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늘 자신의 정의와 이상을 앞세우다 사고를 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소설 《돈키호테》의 돈키호테도 비슷했습니다. 그저 작위가 없는 힘이 약한 귀족에 불과한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막 훌륭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밥이나 많이 먹고 기사 소설에 푹 빠져 지내는 어쩌면 그 시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편력 기사(떠돌이 기사)가 되어 아름다운 귀부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명성과 부를 쌓는 삶. 인내, 약자에 대한 보호, 고난의 극복과 너그러움을 행하여 기사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 그가 꾸는 꿈이었습니다. 림버스컴퍼니의 돈키호테가 해결사가 되고자 했다면 소설의 돈키호테는 편력 기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 꿈을 이루어 자신들만의 정의와 이상을 이루고자 했으나 현실과 거리가 너무 먼 그 정의와 이상은 그들을 미치광이, 웃음거리, 골칫덩이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는 작가 세르반테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세르반테스 또한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이였습니다.

소설의 돈키호테처럼 기사를 좋아하여 모험을 늘 바랐습니다. 그는 그래서 훗날 추기경이 되는 클라우디오 아쿠이비바(Claudio Acquaviva)의 수행원으로 일하며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녔고, 오스만 투르크와의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황금기는 여기까지였고, 귀국 중에 해적에게 납치되었습니다. 몸값을 치르다보니 집안은 궁핍해졌습니다. 꿈을 멈추기 싫었던 그는 세비야에서 무적함대의 물자보급관으로 일하며 신대륙의 비어있는 공석들, 몇몇 도시의 총독, 회계 담당자, 시장 등으로 임명해주기를 바랐지만 거절당합니다.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이즈음 그의 현실은 그의 이상과 한참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하다 보니 세르반테스라는 사람 자체가 당국의 골칫거리였을 겁니다.


그래도 림버스컴퍼니의 돈키호테의 상황이 제일 낫습니다. 그녀를 지켜봐주는 11명의 동료와 관리자가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돈키호테가 골칫거리 취급하면서도 그녀를 절대 내치지 않고 그녀가 일으킨 사고를 투덜거리면서 수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상황이 제일 역설적이고 나쁘기도 합니다. 그것은 라만차랜드를 운영하는 이들이 ‘혈귀’임이기 때문입니다.


약속 장소에서 버스팀은 홍루의 동생 가시춘을 포함한 다양한 해결사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집합장소에서 1급 해결사가 말하는 적의 정체를 듣습니다. 라만차랜드에서 상대해야 할 이들은 혈귀입니다. 돈키호테가 무척 싫어하지만, 돈키호테의 정체이기도 한 혈귀. 워프열차에서 버스팀을 무척 힘들게 했던 혈귀가 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졌습니다. 거기에 라만차랜드는 인간들의 혈액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설명까지 나왔습니다.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달가울만한 소리는 아니죠.


라만차랜드 토벌 작전은 단순했습니다. 4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라만차랜드는 1, 2, 3구역의 장치를 가동시키면 4구역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3개 조로 나누어 3개 구역의 장치를 가동시키고, 마지막 4구역을 토벌하면 되는 것이었죠. 이 작전을 듣고 몇몇 해결사들이 자신들은 돈을 받은 의뢰인과 관련된 실종자만 데리고 빠져나가겠다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누군가가 바로 소리를 칩니다. 네, 돈키호테입니다. 약자를 구하지 않는 해결사들이 맘에 들지 않는 돈키호테는 결투를 통해 그 해결사들도 약자를 구하고, 토벌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 합니다. 관리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돈키호테는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풍차가 거인이라며 덤벼들고, 사제들의 마법사라며 공격하고, 양떼들을 향해 거인들의 군대라며 돌격하는 소설의 돈키호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할 뿐입니다. 둘 다 꿈속에서 한 명은 혈귀, 한 명은 평범한 이달고라는 사실을 잊고, 정의로운 해결사나 멋진 편력 기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 최선은 꿈을 향한 열망이기에 누구도 말릴 수 없고, 현실과 너무나 떨어져 있기에 미친 짓으로 치부됩니다.


상황이 정리가 되고, 라만차랜드가 나타나기 전 버스팀은 뒤틀림을 연구하는 팀(LCD)을 통해 정보를 받습니다. 이전에 혈귀 제1권속을 만난 적이 있었다는 LCD팀은 태초의 혈귀 아래 무수한 제1권속이 생겨났으며. 그 밑으로는 두 명의 권속만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1권속이 제2권속 2명, 제2권속이 각각 제3권속 2명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 관계는 마치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와 같으며 반란은 심리적으로 큰 거부감을 일으켜 ‘패륜’이라 불리며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피주머니라 불리는 것들은 혈귀가 아니며 휴대용 식량 정도로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LCD팀의 팀장은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들은 너희의 생각보다 피에 대해서 더욱 절실하다.”


혈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얻은 관리자는 몰래 홍루를 데리고 나와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에게 말을 겁니다. 왜 결투를 하는 돈키호테를 말리지 않았냐면서요. 돈키호테의 광기를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이 길잡이니 말입니다. 관리자의 째깍거림을 홍루를 통해 번역해 들은 베르길리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3번 수감자(돈키호테)도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할 시간이기 때문에.”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혈귀인 돈키호테는 없고, 해결사만을 꿈꾸는 평범한 수감자 돈키호테를 마냥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아마 이제 꿈에서 깰 시간임을 길잡이는 직감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홍루의 답이 조금 의아합니다.


“돈키호테 씨는 저희 중에서 가장 정신을 차리고 계시는 분 아니었나요?”

눈이요, 단테 님. 언제나 별처럼 빛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신기해요.”


화두를 던지는 듯한 홍루의 말에 의문이 더해집니다. 정신 나간 듯한, 현실 따위는 보지 않는 자기만의 이상의 추구 속에 당최 어떤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돈키호테. 눈이 빛난다는 것은 광기의 다른 의미로 해석되지 않을까요? 그녀가 꾸는 꿈속에서 바라보는 것은 남들에겐 아름답기보단 이해할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편력 기사도, 아메리카 대륙의 개척자 총독도 소설 《돈키호테》와 당시의 스페인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내젓고 무시할 광기의 일부로만 보입니다. 그 속에서 빛남은 어디 있을까요? 잘 쳐줘야 남들에게 웃음을 줬다는 위안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이처럼 림버스컴퍼니의 돈키호테, 소설 《돈키호테》의 돈키호테,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현실에 맞지 않은 꿈을 꾸었고, 그 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현실에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의 꿈은 그래서 꺾였을까요? 적어도 림버스컴퍼니의 돈키호테는 아직입니다.


“악인을 처단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구해내는 것. 그것이 본인의 한 평생 꿈이었으니 말일세!”


자기 꿈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피력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에는 광기도 있지만, 당당함이 남아 있습니다. 근데 문득 의문이 듭니다. 과연 돈키호테가 혈귀로 살아온 과거를 알게 되어도 지금의 시선과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요? 부당한 도시를 정의로운 해결사가 구해야 한다는 그 관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생긴 생각일까요? 돈키호테의 생각이 주체인 세상의 저 밑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요? 지금의 꿈이 끝나는 순간 그녀가 마주해야 할 또 다른 꿈은 혹은, 관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의문을 가진 채 버스팀은 혈귀들과 피주머니들이 가득한 라만차랜드로 향합니다.


버스팀이 배정을 받은 곳은 1구역입니다. 이백 년 만에 피를 먹었다는 혈귀들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러워 정말로 예전에는 놀이공원을 운영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혈귀들과 피주머니들을 무찌르며 1구역의 중심부로 향합니다. 중심부에는 1구역의 핵심 어트랙션, 판타지 블러드 슈팅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방송은 오래전부터 녹음되어 쓰이는 것으로 보이며 고위 혈귀의 이름으로 보이는 산초, 돌시네아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화 같은 녹음이 끝나고 어트랙션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옛날에는 혈귀와 인간들이 싸웠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가짜 혈귀들을 하나씩 무찌르는 어트랙션이었습니다. 못된 혈귀들은 모두 지하로 쫓겨났고, 착하고 의로운 혈귀만 지상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피를 탐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인간과 맺었습니다. 하지만, 지하의 혈귀들은 계속 인간의 피를 탐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지상의 혈귀들이 지하의 혈귀들을 막고, 인간의 피를 나눠받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지상의 혈귀들과 인간들은 평화롭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어트랙션은 끝이 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라만차랜드라면서요.


어트랙션을 이용하며 무수한 혈귀를 물리치고 앞으로 나선 버스팀은 관리자 혈귀와 마주합니다. ‘이발사’라 불리는 혈귀는 약간 나사가 빠진 듯 보였습니다. 버스팀은 이 혈귀를 어렵지 않게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든 듯 파란 옷을 입은 혈귀가 나타납니다. 이 혈귀는 공격은 하지 않고, 돈키호테를 바라보며 말을 겁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으로 돈키호테가 기억하는 자기 과거를 꺼내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수감자들은 자기 배역을 맡아 연극을 시작합니다.


산손으로 불리는 이는 하얀 달의 기사가 아무도 오지 않을 버려진 등대에 돈키호테를 머무르게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과거로 가 한 마을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도적 떼를 물리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보수로는 맘브리노의 투구의 위치를 받아 그것을 찾으러 갔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야기는 평범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연극에서 돈키호테는 계속 대화를 합니다. 돈키호테는 의심치 않고 로시난테와 대화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로시난테는 뭐가 됐든 신발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이 이상함 속에서 연극 도중 목소리가 들립니다. 돈키호테의 기억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말 이 목소리가 돈키호테와 로시난테의 목소리일까요? 무의식 저편에서 숨어 있던 꿈을 깨우려는 기억이 조금씩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요?


산손은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의 광기 어린 여행을 끝내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깨우지 못한 돈키호테의 꿈을 깨운 사람이죠. 림버스컴퍼니의 산손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이제는 기억해내지 못하는 과거를 돈키호테가 계속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떠올리는 과거 속에서 모순을 계속 집어내며 지금의 상황을 바꾸려 노력합니다. 소중한 맘브리노의 투구를 왜 잃어버렸냐는 등의 질문은 명백히 기억의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이죠. 소설에서 돈키호테의 광기를 없애고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명확한 의도가 보였던 것과는 달리 림버스컴퍼니의 산손은 그런 의도가 명확하지 않아 의문입니다. 다만, 그가 하는 행동은 명확합니다. 돈키호테의 꿈을 끝내고 싶어합니다.


산손은 사라지고 버스팀은 2구역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한 번 생긴 의문은 이제 돈키호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2구역은 일종의 귀신의 집입니다. 어트랙션에 들어서자 방송이 시작되며 똑같이 안내 방송과 함께 산초의 이름이 거론되고, 숨어 있던 혈귀들이 튀어나옵니다. 혈귀들을 무찌르며 앞으로 가는 동안 나눈 대화에서 이곳이 정말 놀이공원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혈귀들은 옛날에 인간들과 함께 놀았던 이야기를 추억하죠. 어트랙션 내의 혈귀들을 전부 무찌르자 산손이 또 나타나 한 왕국의 비밀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성안에서 외로이 살아온 왕이 가족들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기 시작했고, 그곳은 모두의 집이 되었습니다. 행복하게 살던 그들의 앞에 모험과 이야기를 가진 기사가 나타나 왕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에 왕은 성 밖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왕이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기다린 끝에 왕이 내린 결론은 성 밖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성을 부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 밖의 사람들과 너무 달라 함께 지내기 위해서 기쁨, 즐거움, 탄성, 쾌락, 희망, 기대 등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행복을 포기하고 그들의 행복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렇게 될 수 없었고, 행복해지기 위한 가족의 모든 노력은 죄가 되어 회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트랙션을 나가니 고해소가 눈에 보였습니다. 피를 마시지 못해 미쳐버린 혈귀들을 다 물리치자 신부 혈귀가 앞에 나타납니다. 피를 마시지 못해 미쳐버린 혈귀들을 상담해주다 자신도 미쳐버렸습니다. 혼잣말을 늘어놓던 신부는 돈키호테의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돈키호테를 향해 도망자 카세티도 손수 묻어주었냐며 존댓말 질문을 던지죠.


카세티는 워프열차에 타고 있던 혈귀, 이제 조금씩 윤곽이 드러납니다. 적어도 수감자 돈키호테, 카세티, 라만차랜드의 혈귀들은 같은 1권속을 모시는 혈귀였던 모양입니다. 아마 오래 전 돈키호테는 이곳에서 이제는 미쳐가는 저 혈귀들과 같이 라만차랜드를 운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꿈이라는 안개에 가려진 과거와 본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시 산손이 나타나 돈키호테의 과거 연극을 시작하게 합니다. 동시에 절규가 들립니다. 늘 이상을 향해 무릎 꿇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아가기만 했을 것 같은 돈키호테의 목소리에서 절대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절규. 도대체 과거 어떤 일이 지금의 광기어린 꿈만 남은 돈키호테를 만든 것일까요?


절규는 가라앉고, 하얀 달의 기사와 돈키호테의 싸움으로 연극이 진행됩니다.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고,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로시난테는 연극에서 대화에 끼어들고 있죠. 과거의 이야기가 점점 선명해집니다. 지금은 돈키호테가 적대시하는 장소이지만, 예전에는 돈키호테의 집이었을 이곳에서 돈키호테는 현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기사 돈키호테도 마찬가지. 늘 그의 모험의 끝은 고향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모험 끝에 그를 받아준 곳도 고향이지만, 그의 광기어린 모험을 멈추어버려 꿈을 끝나게 한 곳도 고향이었습니다. 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배 후에 고향을 찾았을 때는 기사 돈키호테의 꿈, 그 꿈으로 만들어진 삶은 끝났습니다. 그는 그 꿈을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세르반테스도 마찬가지. 모험을 늘 떠나고 싶었던 그는 집으로 계속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현실은 그를 멋진 모험으로 데려다주지 못했습니다. 돈키호테의 마지막을 집필하고 이듬해 사망한 그는 꿈을 잃고 삶을 잃은 돈키호테처럼 꿈으로 보고자 했던 세상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감자 돈키호테도 꿈이 끝나면, 꿈으로 보는 세상이 깨지면 더는 삶을 나아갈 수 없게 될까요? 아직은 눈이 반짝이고 빛나지만, 그 빛이 흔들리는 것이 이제는 보이는 듯합니다.


고해소를 나오자 3구역에서 퍼레이드와 마주칩니다. 혈귀와 피주머니가 가득한 퍼레이드에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고통받는 사람들도 한가득이었고, 놀이공원 특유의 분위기와 뒤엉켜 기과하고 잔혹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행렬을 뚫고 지나가다 버스팀은 행렬의 중심과 마주하고 돈키호테는 돌시네아라는 혈귀에게 행렬을 멈추라 말합니다.


돈키호테를 존대했던 신부와 달리 행렬의 중심에 있던 돌시네아는 ‘유치한 놀이’가 아직 안 끝났나며 직설적인 말을 던집니다. 이에 돈키호테는 ‘숭고한 모험’이라고 대답하죠. 그 말에 돌시네아는 돈키호테의 과거를 꺼내듭니다. 생기 있게 반짝이는 눈이 아닌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것에 관심 없다는 눈. 지금의 돈키호테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 과거엔 있었나 봅니다.


퍼레이드는 멈추지 않습니다. 라만차랜드는 행복을 재현하는 곳이기에 그저 그들이 행복했던 처음과 끝을 반복하는 행렬은 멈출 수 없죠. 그 행복이 어떤 것인지는 파악되지 않으나 그들의 행복에 미래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피를 원하는 본성에 따라오는 반복과 순환만이 있을 뿐. 힘차고 흥겨운 노래에서 느껴지는 우울감은 희망 없는 행렬을 너무나 잘 대변합니다. 그와 대비되는 돈키호테는 반대편에서 외칩니다. 그들을 적대시하고 그들을 물리치고자 합니다. 돌시네아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과거를 모두 잃어버리고 혈귀의 본성을 잃어버린 돈키호테는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자기 집마저 잊은 채 눈을 반짝이고 있으니까요.


돌시네아를 물리치고, 산손이 다시 나타납니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꿈을 가지고 있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킵니다. ‘망각’. 그녀가 살아온 시간, 그녀 존재의 본성, 그녀가 맺어온 관계, 그 모든 것. 그것들을 수감자 돈키호테로부터 분리시킨 힘. 조금씩 그 힘을 깨트려 온 산손은 망각에게서 돈키호테를 건져올릴 마지막 연극을 시작합니다.


연극의 처음에서 봤던 것처럼 돈키호테는 로시난테와 하얀 달의 기사와 함께 피난을 가고 있습니다. 피난 중 망각의 강에 도착합니다. 그녀는 견디기 힘든 기억이 있는 모양입니다. 기억을 없애고자 망각의 강물을 삼키고 잠들기를 원합니다. 그녀가 가져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망각 속에서 세상을 다르게 보고자 함입니다. 그 세상은 수감자 돈키호테가 본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두려움도 희망도 없으며, 고생도 없고, 영광도 없을 테니.”


모든 것을 잊은 나. 그 내가 보는 세상은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나’라고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보는 허구의 세상이 아닐까요? 아마 망각의 강물을 마시기 전 혈귀 돈키호테는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사실 이는 죽음과 같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다릅니다. 허구의 세상이라도 보고 있다는 점,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죠. 그녀는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꿈꾸기를 택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얀 달의 기사는 떠나기 전 이름을 밝힙니다. ‘바리’.


강물을 마시는 과정을 반복하고, 이제 산손은 과거를 뒤엎어 빠른 말들로 돈키호테를 옥죕니다. 무수한 과거의 격류들을 막아낸 로시난테에서 산초를 내리는 그 주문은 이제 망각을 지우고, 꿈을 깨웁니다.

관리자는 불안합니다. 이미 로시난테에서 내리면 제2권속 혈귀가 나타날 것임을 아는 관리자는 여태껏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관계가 무너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동안 만들어왔던 관계가 단절될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 관계의 단절은 꿈의 세상과의 단절, 즉 다시는 이 삶을 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기사 돈키호테와 작가 세르반테스의 안타까운 결말이 떠오릅니다. 수감자 돈키호테도 그리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사실 그렇게 될 확률이 더 큽니다.


걱정은 다가온 현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는 로시난테에서 내리고, 과거의 기억이 이제 선명하게 관리자 단테에게 보입니다. 누구의 명을 받고 절규하며 떠나는 돈키호테가 보입니다. 아니, 이제 진짜 돈키호테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 기억 속에서 로시난테로 보였던 수감자 돈키호테의 진짜 이름이 밝혀집니다. 산초. 제1권속 돈키호테를 보좌했던 제2권속 산초가 꿈에서 완전히 깹니다.


기억에서 수감자 돈키호테가 꿔왔던 꿈은 제1권속 돈키호테가 꿔왔던 꿈이었음이 밝혀집니다. 꿈을 빌려 대신 살았던 정의와 이상 가득한 해결사의 꿈, 수감자 돈키호테 자신이 만들어낸 꿈이 아니었던 그 꿈. 그렇게 망각의 벽이 허물어지고, 혈귀 산초와 수감자 돈키호테가 마주칩니다. 꿈은 현실과 뒤엉키고, 현재는 과거와 겹칩니다. 이제 수감자들이 매번 봐오던 돈키호테는 없습니다. 제1권속 돈키호테가 아끼던 제2권속 산초가 눈앞에 있죠. 그런 산초를 향해 제1권속 돈키호테가 저 먼 4구역의 안에서 말을 건넵니다.


돌아왔구나, 나의 산초.”

집으로 돌아온 산초의 꿈은 끝났습니다.


이제 이야기 해주렴. 네가 꾼 나의 꿈에 대해.”


산초의 발걸음에 나아감은 없습니다. 꿈을 반납하기 위한 돌아감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산초의 삶과 세상은 멈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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