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버스 컴퍼니 2장 사랑하지 않는>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1장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버스는 움직입니다. 버스 안에서는 길잡이인 베르길리우스가 관리자인 단테와 수감자 12명을 책망하는 말이 들립니다. 팀워크도 제대로 맞춰보지 못한 오합지졸인 그들에게 강력한 괴물인 환상체와 적대 세력의 방해를 이겨내고 황금가지를 가져오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그 책망을 크게 신경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한 번의 실패는 있을 수 있어도 두 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LCB(Limbus Company Bus, 단테와 수감자들이 속한 팀)을 보조하기 위해 LCCB(Limbus Company Clear Before, 버스팀을 보조하기 위한 사전관측 팀)를 파견합니다.
LCB와 LCCB가 같이 임무를 수행할 이번 장소는 J사가 관리하는 10구입니다. 10구의 한 카지노 지하에 위치한 구 L사의 지부에서 황금가지를 입수하는 것이 이번 목표입니다. J사에는 카지노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J사의 특이점에 있습니다. 요즘 도박에서 다양한 기술과 속임수로 승리를 쟁취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개입하지 않는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운’입니다. 이 운을 추출하여 화폐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것이 ‘소망력’입니다. 하지만, 운은 수치화할 수 없기에 보편성이 무척 떨어집니다. 그렇게 운을 소망력으로 바꾸는 기술은 특이점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J사의 특이점은 이 소망력을 도난당하지 않게 방어하는 보안 기술입니다. 이렇다보니 10구에서는 ‘운’이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는 운칠기삼의 수준이 아니라 운을 수치화하여 운이 안 좋으면 그 무엇도 할 수 없게 만들죠.
이 10구의 황금가지를 획득하기 위해서 이겨야 할 것은 도박입니다. 도박에서 이겨야 황금가지가 있는 카지노의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죠. 그래서 LCCB팀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들이 딜러로 변장하고, LCB팀이 도박에 참여하여 무조건 이길 수 있게 하는 판을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오합지졸에 무대뽀인 LCB팀은 계획을 전부 틀어지게 만듭니다. 말 그대로 다 부수고 싸워서 이긴 다음 도박이 열리는 꼭대기 층에 도착하죠. 모로 가든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듯 일단 도착했으면 되었죠. 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이길 방법이 없기에 진짜 운에 맡기는 도박을 해야된다는 가장 큰 문제점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2장의 주인공 로쟈가 나타납니다.
로쟈는 도스트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의 애칭입니다. 1장과 마찬가지로 2장의 ‘로쟈’는 <죄와 벌>의 로지온에게서 모티브를 딴 것이지요. 하지만,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릅니다. 로쟈는 서글서글하고 남들과 잘 어우러지며,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도박에 일가견이 있는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로지온은 생각이 깊고, 가난함에 쪼들리는 대학생 남성으로 그려지죠. 도박에 일가견이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마지막에 도박에 들어가는 것은 로쟈였습니다. 어찌나 자신이 있는지 이렇게 말하며 도박장으로 들어가죠. “돈이 걸린 일이라면 나는 평생 져본 적이 없거든.”
도박장에 등장한 것은 두 명의 마피아 보스와 유로지비의 리더이자 로쟈의 고향 친구인 소냐였습니다. 유로지비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여러 작품에서 등장하는 말로 “성스러운 바보”라는 뜻입니다. 겉은 바보나 미치광이처럼 굴지만, 진리를 설파하는 고행자들을 의미합니다. 신앙을 가진 선한 이를 통해 인간의 고통과 부정을 해결할 길을 보여주었던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에서 유로지비는 긍정적인 역할입니다. 여기 나오는 다만, 여기 나오는 유로지비는 신을 믿는 신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등장부터 여전히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억압과 착취를 타파해서 부의 축적을 경계하는…” 이 말을 통해 현 도시에서 부와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며 모두의 고통은 등한시하는 날개나 손가락들을 타파하여 모두가 배부르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로 보입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과연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자 어쨌든 네 사람은 도박을 시작합니다. 소망력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턴에 로쟈는 소망력을 사용하는 척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고, 속아서 이의제기를 한 사람의 목숨은 더 이상 도시에 있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로쟈의 최종 승리였고, 소냐는 깔끔하게 빠지지만, 남은 한 사람은 무력으로 로쟈의 승리를 빼앗으려 합니다. 이 싸움에서 LCB팀이 승리하고, LCB팀은 황금가지를 찾으러 지하로 향합니다.
로쟈는 도박장에 들어가기 전 모두에게 믿음을 사기 위해 소망력을 이용하겠다고 거짓말을 칩니다. 이에 대해 LCCB팀이 물어보자 이렇게 말하죠. 소망력이라는 것 자체가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을 그럴듯하게 붙여놓은 것 뿐이라고, 그래서 자신 같은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이는 위에서 소망력을 설명했던 것과 일치합니다. 소망력 자체가 특이점이 될 수 없다는 것, 바라는 마음이든 운이든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없기에 보편적인 기술로 치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추상적인 무언가를 지켜내는 기술이 특이점인 겁니다.
이렇게만 보면 로쟈는 자기 확신이 무척 강하고 멋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흔들릴 일이 없겠죠. 그러나 그는 소냐를 만난 후로 조금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과거를 극복해낸 것이 아닌 과거를 묻어두고 넘겨버리려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죄와 벌>의 로지온도 이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역사를 바꿔낸 인물은 모두 범죄자였다는 그의 논문은 그가 역사를 바꿔온 그 범죄가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확신은 백면서생의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자신이 가난한 이들의 돈을 악착같이 빼앗던 전당포 주인을 죽였을 때, 그는 자신의 확신을 바탕으로 살인을 정당화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불안에 떨고, 흔들렸습니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자신은 역사를 바꾼 이들처럼 위대한 이가 아니고, 전당포 주인을 죽였을 때 그것은 누군가의 삶을 나아지게 만든 것이 아닌 자신의 가난한 삶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뿐이란 것을.
로지온의 불안이 <죄와 벌>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처럼 구 L사 지부의 심층부로 들어갈 수록 로쟈의 불안이 더 드러납니다. 조금 차가웠을 뿐인 황금가지 주변은 얼음으로 뒤덮인 성이 되어있었죠. 그리고 그 얼음에 덮인 사람들은 유로지비에 있을 때 로쟈의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것을 로쟈 앞에 나타나 다시 깨우쳐준 소냐는 자기 확신 아래 묻어두었던 로쟈의 과거를 꺼냅니다.
로쟈가 살던 뒷골목에서는 세금 징수관이 악랄한 세금을 징수하며 가난한 이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로쟈는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가졌죠. 똑같이 불만을 가졌던 소냐는 말로 사람을 모아 유로지비라는 단체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로쟈 눈에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보다는 말로 둥지와 뒷골목을 바꾸고 싶어하는 허장성세만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보였죠. 탁상공론에 지쳐버린 로쟈는 유로지비의 막내 이반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죽고 나서도 토론만 계속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유로지비에게 완전히 질려버렸습니다. 사사로운 잡음쯤은 무시하자는 소냐의 말에 사사로운 자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는 로쟈의 말은 무척 가슴을 울립니다.
소냐의 말은 구구절절 옳아보입니다.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고, 기득권의 억압과 착취를 타파해야한다는 말은 좋지만, 실천 없는 그 말은 현학적일 뿐입니다. 당장의 눈 앞에서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고, 주민들이 착취당하는 데도 이를 사사로운 잡음이라고만 표현한다면, 이는 사실 독재로 나아갈 여지마저 남겨두는 것이죠. 1987년 민주화가 끝나고 그 이후 노동자의 권익을 되찾고자 계속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세우고 권익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노조는 이 과정에서 하나의 배타적인 조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 노조는 공장 안의 노동자를 챙겼을 뿐 식당 직원이나 청소 직원과 같은 비정규직들은 전부 제외해버렸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기득권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고통받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이 기득권으로 남은 것이죠. 모두가 기득권이 되는 것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소수자를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기득권의 모습을 소냐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마을 주민의 고통에서 시작했던 유로지비가 마을 주민의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은 시간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주변이 다치는 것을 ‘사사로운 잡음’쯤으로 치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없이 행동으로만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로쟈는 당시의 근본적인 문제가 세금 징수관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세금 징수관을 도끼로 죽여버렸습니다. 그 세금 징수관의 동생은 뒷골목을 주름잡는 손가락 중 하나인 ‘중지’의 조직원이었고, 보복을 중시하는 중지는 그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립니다. 정당하다고 느낀 살인이 죄없는 사람의 죽음을 불러온 것은 <죄와 벌>의 로지온과 같습니다. 로지온은 전당포의 노파를 죽이고, 이를 목격한 선한 노파의 동생을 똑같이 도끼로 죽여버립니다. 자신의 살인이 정말 정당했다면, 그리고 떳떳했다면 그 자리에서 선한 노파의 동생에게 붙잡혀 경찰서로 가는 것이 맞았겠죠. 이미 그 순간부터 로지온은 이 살인이 마냥 옳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자신은 세상을 바꿀 위인이나 구원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로쟈는 마을 사람들의 죽음으로 죄악감에 뒤덮였습니다. 하지만, 소냐는 더 나아가 로쟈의 내면을 끄집어 냅니다. 세금 징수관이 죽기 전 로쟈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죠. “불쌍한 로지온 녀석 니가 대단한 구원자라도 되는 줄 착각하나 본데…” 또한, 굶어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는 로쟈에게 소냐가 하는 말 또한 인상적입니다. “아니, 너는 스스로를 위해 휘두른 거야.” 로쟈가 도끼를 휘두른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죠. 로쟈가 세금 징수관을 죽이는 데 이르게 했던 마을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로쟈의 가장 큰 행동 원리는 ‘자신의 특별함’에 있었다는 겁니다. <죄와 벌>의 로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혹은 자신이 악한 자를 벌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없었다면 저런 일을 벌일 수는 없었겠죠. 이 과정에서 로쟈의 위선이 깨어집니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사실은 자신을 온전히 대면하지 않은 데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로쟈의 불안이 조금이나마 계속 느껴졌던 건 이러한 이유겠지요.
로쟈의 구원은 본질적으로는 위선이었고, 결과적으로는 크나큰 실패를 가져왔습니다. 주변의 가난에 대한 안타까움은 느꼈을지언정 그것이 주된 로쟈의 행동 원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 않았기에 얼어붙었고, 애매하게 공감했기에 그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행위는 구원자이고자 했지만, 마음은 평범한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위선 속에서 자신을 똑바로 대면할 수 없었기에 로쟈의 과거와 마음은 얼어붙었습니다. 고통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고통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로쟈에게 소냐가 황금가지로 보여준 세상은 무척 이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서 웃음이 넘치고, 모든 이가 평등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 로쟈의 꿈에서나 그리던 그런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냐가 말하는 것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며 황금가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제까지의 소냐의 행동을 보면 사기꾼 같지만, 지금의 소냐는 황금가지를 찾아내는 활동을 하는 등 분명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유로지비의 힘을 이용해 로쟈가 황금가지를 얻고 돌아가도록 도와줍니다. 황금가지에 대한 의문만 남긴 채 황금가지를 회수하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1장 그레고르의 이야기 또한 자신의 과거를 그렇게 만들었던 이들과의 관계를 완벽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찝찝함이 남으나 그레고르가 앞으로 나아갈 여정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사항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로쟈는 자신의 과거만 밝혀졌을 뿐 오히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감추고, 웃음으로 넘깁니다. 소냐와 만난 후 자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흔들리며 종종 보이는 불안까지 더해지니 더 부정적인 상태로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진심은 숨기고 대면을 피했기에 그의 과거엔 의문스러운 점이 한가득입니다. 마음의 얼음을 부수고 평범한 자신을 대면하고 나야만 특별한 자신으로서의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지만, 로쟈는 여전히 추위에 떨겠다고 말합니다. 사과를 잘라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선택을 한 그레고르와는 달리 여전히 추위에 떨면서 과거에 갇혀 있겠다는 로쟈의 말은 앞으로 더욱 그가 흔들릴 여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변을 그렇게나 잘 살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주변을 사랑하지 않는 그의 미래는 안개에 쌓여 있습니다.
<죄와 벌>에서는 소냐가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로쟈를 회개하게 하고, 자수한 그를 끝까지 뒷바라지하면서 결말로 향합니다. 로쟈의 위선을 소냐라는 사람이 깨트리고, 신의 박애를 실천하면서 로쟈에게 인간성을 되찾게 한 것이죠. 2장의 로쟈는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소냐를 만납니다. 소냐는 로쟈를 회개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상과 이성 위에 쌓아올려진 확고한 소냐의 자아는 로쟈의 위선에 자그마한 균열을 냈습니다. 그 균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요. 소냐의 이상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진실된 자신으로 주변을 사랑하여 구원할 것인지. 그가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길이 더욱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