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공포에 마주서서

<림버스 컴퍼니 3장 마주하지 않는>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1, 2장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황금가지를 회수한 버스팀(Limbus Company Bus)은 기분 좋은 채로 다음 목적지로 향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K사가 관리하는 11구입니다. 여태까지는 기업인 날개의 직접적인 영향이 닿지 않는 뒷골목에서 작전을 행했으나 이번 작전은 날개의 직접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둥지 11구의 둥지 안에서 작전을 행합니다. 뒷골목과 둥지 간의 차이는 크기에 들어가는 방법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사실 검증된 비자만 있으면 되지만, 검증된 비자를 구하기 쉬울 리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림버스 컴퍼니는 아주 좋은 회사라 비자를 준비해뒀습니다. 하지만, 12 수감자가 조용히 비자만 내밀고 출입국 센터를 지날 리가 없습니다.


출입국 센터는 너무 당연하게도 두 가지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비자가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쾌적한 구역과 비자가 없는 사람들이 서있는 암울함이 가득한 구역이죠. 보통은 두 구역을 안 보이는 것으로 막아두겠지만, 유리창으로 구분해두었습니다. 비자가 있는 사람들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아빠와 생이별하는 아이가 보입니다. 아빠는 피를 흘리고 있고, 아이는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고, 외면해야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돈키호테는 유리창에 자신의 커다란 창을 집어넣고, 도와주기 위해 난동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다른 수감자들도 다같이 난동을 피우지만, 이 난동은 진압됩니다.


난동이 끝나고, 난동의 주범이었던 돈키호테는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에게 불려 가 무력을 포함한 강력한 압박을 당합니다. 자신의 핍박받고 있는 약자를 지나칠 수 없었다는 돈키호테의 말에 베르길리우스는 돈키호테를 거욱 압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는 대부분 정해진 답을 가지고 있다. 그 답을 맞힐 수 있는 지를 물을 뿐이지.” 일단 림버스 컴퍼니의 세계관에서는 높은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인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이가 울고 아빠가 피를 흘리며 끌려가는데 모른 체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회사와의 계약 사항에 따라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지만, 그런 상황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만한 일일까요? 초반의 짧은 에피소드는 회사의 냉혹함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이 인간으로서 옳은 일이었을까? 회사의 계약을 엄수하는 일과 핍박받는 약자를 돕는 일. 넓게 보면 이렇게도 물을 수 있겠죠?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맞을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3장의 이야기는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3장의 주인공을 이야기해야겠군요. 3장의 주인공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싱클레어입니다. 모티브가 된 문학은 <데미안>이죠. K사에 들어올 때부터 공포에 질려있던 싱클레어는 목적지의 이름을 듣자마자 아예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싱클레어와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자 온몸을 쇠로 덮은 갑옷을 입고 못과 망치 문양을 새긴 사람들이 버스를 세웁니다. 집단의 이름은 ‘Nagel und Hammer’로 한국어로는 못과 망치라는 뜻이며, 줄여서 N사라고 부릅니다. N사 사람들은 관리자 단테의 시계 머리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불경한 여행자의 머리를 베어내라." 대뜸 사람의 머리를 베어내라니. 어이없죠? 어떤 의미에서 저 머리를 베어내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N사는 의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N사를 물리치고 다시 버스에 오른 후 다들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뫼르소는 N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험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라 말하는 날개. 인간은 자신의 가치에 맞는 경험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 그들은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에서 의체를 부정하는 이유를 드러내보자면 원래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 혹은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인간의 피와 육체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고, 의체라는 원래 인간의 몸과는 다른 것을 끼워넣으면서 인간이라는 가치에 맞지 않는 경험과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이 맞는가도 고민해볼 여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입니다.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다고, 다른 날개까지 찾아와 자신들의 말에 맞지 않는 이들을 죽이려는 행동은 절대 맞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가치에 맞는 행동을 그들이 하고 있냐고 물으면 단호히 아니라고 답할 것입니다.


인간 주체의 근대적 개념이 발호된 이후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체로서 신에서 벗어나 오롯이 서는 존재인 인간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하나의 주체로서 중요하기에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권리를 갖고, 생명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갖습니다. 이 개념이 이 림버스 컴퍼니의 세계관에 적용되냐고 물으면 애매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고, 몇몇 가치는 압도적으로 사람의 위에 섭니다. 특히 날개라는 회사가 대부분의 사람 위에 서있는 형국이죠. 하지만, 이런 세계에서도 N사의 이런 행동은 독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날개에 들어와 특이점과 관련이 있는 행동이 아닌 자신의 사상과 관련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N사의 행동은 매우 극단적입니다. 연기가 자욱한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의 상황이 눈에 그려집니다. 마을은 전부 불에 타고 있고 큰 못에 온갖 장기와 기계부품들이 걸려있습니다. 의체를 사용하는 마을 주민들이 전부 살해를 당하고, 시체마저 훼손을 당한 그 저열하고 참혹한 광경에 수감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N사의 사상이 사상을 넘어 광기와 혐오라는 말이 실재로 변해 나타난 그 마을에서 싱클레어는 미친듯이 두려움에 떱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가져오는 자가 목소리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화' 작업 중이라는 말과 함께 목소리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크로머. 순수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 그리고 망치를 쥐는 자." 휘파람 소리에 함께 강렬한 기억을 불러내는 크로머는 싱클레어와 구면이면서 싱클레어에게 공포를 각인시킨 자입니다. 그리고 마을의 학살을 주도한 장본인이죠. 이 학살을 정화라고 말하는 데서 크로머의 의체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은 K사에서도 의체 산업이 발달한 마을로 배고픔과 목마름, 피곤함이 사라지는 장점 덕분에 많은 이들이 의체 수술을 자진해서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크로머는 이들을 죽이는 것을 정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의체를 단 자들을 사람이라고 보지 않고 불순한 자들이라 보았던 것이죠. 좀 극단적이라고 말하면 의체를 단 자들을 인간이라고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는 자들이기에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고 했던 것이죠.


과연 의체를 의식한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 현 세계의 많은 이들은 자신의 근원이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혹은 부모로부터 비롯되어 함부로 훼손하거나 바꿔서는 안된다고 했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신의 어린 양으로서의 인간과 자연물의 하나로 세계에 속한 것으로서의 인간에서 나온 개념이 앞에서 말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결정한 것이죠. 오직 인간인 '주체 자신'으로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결정한 사례는 아닙니다. 자신의 주관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 주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의 개념과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즉, 인간 주체가 명확하게 인식된 근대 이후로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와 생각이 인간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대두된 것입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순간부터 인간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죠. 다만, 이러한 방식은 민족과 이념이라는 새로운 인문학적 개념에 따라 인간을 나누고 학살하는 제노사이드의 길을 열기도 했습니다. 근대의 가장 큰 과오로 불리는 이 개념까지는 파고 들지는 않겠지만, 인간 주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무조건 장점만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음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림버스 컴퍼니가 있는 세계관이 인간을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인간을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걸까요? 현재 세계에서는 어떠한 명분과 정당성이 있더라도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다고 여기지만, 림버스 컴퍼니의 도시 세계관에서는 명분과 정당성만 있다면 사람의 목숨이 충분히 의미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N사의 행위가 인간적이지는 않다고 많은 이가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 자들에게 그런 거창한 사상 따위는 없어요. 그냥 광기와 폭력에 매료된 미치광이죠." 수감자 이스마엘의 말에서 충분히 N사가 도시에서 보기에도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일행은 이제 싱클레어의 가족을 죽인 크로머가 있는 싱클레어의 옛 집으로 향합니다. 그곳 지하는 구 L사 지부와 이어져있어 황금가지를 찾으러 가는 회사의 목적과도 부합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던 중 시계 머리를 한 단테에게 싱클레어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의체를 하고 있는 기분이 어떠냐는 이 질문은 순수한 궁금증도 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시계 머리를 하기 전의 기억이 없는 단테는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의체를 하고 있지 않은 싱클레어의 모습이나 이 질문에서 싱클레어가 의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택에 도착하자 더는 쳐다볼 수 없는 잔인한 광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의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마구 분리되어서 쇠꼬챙이에 꽂혀있고, 집은 불에 타고 있으며, 싱클레어 가족들의 무덤은 파헤쳐져서 시체가 전부 사라졌습니다. 아마 저 무수히 많은 쇠꼬챙이 어딘가에 걸려있겠죠. 분노가 저택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그 순간, 휘파람 소리가 들리며 크로머가 나타납니다.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나타나 싱클레어의 화를 돋운 뒤 뒷처리는 부하에게 놔두고 황금가지를 찾으러 다음 말과 함께 지하실로 들어갑니다. "항상 그랬지만, 쥐는 건 나야."


이미 구 L사의 지부는 N사의 고문실이자 실험실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체들을 고문하고, 황금가지의 기능을 이용하여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금가지의 정확한 용도는 모르지만,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변형하는 기능이 있는 듯합니다. 다만, 모든 물건이 그렇듯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거나 잘못 쓰면 변화를 넘어 침식당하여 이성을 잃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합니다. N사의 심판관들과 침식당한 괴물들을 물리치고, 심층부에 도착하자 완전히 새로운 장면이 수감자들을 맞이합니다.


싱클레어의 마음속을 보여주어야 했을 황금가지는 먼저 온 크로머와 공명하여 크로머가 생각한 이상적인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시체들의 산과 그 위에 서서 피와 육체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인간을 찬미하는 크로머, 그 아래에서 크로머를 찬양하는N사의 광신도들이 황금가지를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크로머의 광기를 멈추고 황금가지를 회수하러 가기 위해서는 N사의 광신도들을 무찌르고 시체들의 산 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는 과정에서 숨겨진 싱클레어의 기억이 수감자들에게 드러납니다.


싱클레어는 의체사업을 하는 부모님과 누나 아래의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난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어느 어린 학생들처럼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도 가득한 소년이었죠. 그래서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다가 아버지 회사의 기밀을 말해버리고 맙니다. 그걸 눈여겨 보고 있던 크로머는 그 거짓말의 어색함 속에서 싱클레어가 마음 깊이 의체를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의체에 대해 태생적인 불결함을 느낀다는 데서 공감을 이끌어낸 뒤 자신의 원망을 들어주면 의체 수술을 하기 싫다는 싱클레어의 원망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한 싱클레어의 학교 생활에 데미안이라는 전학생이 들어옵니다.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멀었지만, 데미안 이마의 어떤 표지를 흐릿하게 확인한 후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점점 가까워집니다. 데미안과 있을 때만큼은 크로머가 싱클레어를 건들지 않았죠.


시간이 지나고, 크로머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 지하실로 내려가 구 L사 지부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보고 몸서리친 싱클레어는 지하실 열쇠를 훔쳤다는 죄책감과 그때 보았던 끔찍한 장면을 떠올리며 크로머 자체를 무서워하게 되었고,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에도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데미안은 이러한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더욱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널 연달아서 덮쳐올지도 몰라.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돼." 그리고 그가 지하실 열쇠를 훔친 것을 고해하려던 크리스마스 이브, 크로머는 가장 최악의 방법으로 싱클레어의 원망을 이루어줍니다. 가족들을 모두 죽여 싱클레어가 의체 수술을 받지 않게 한 것이죠.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마주한 싱클레어는 공포에 질려 도망갑니다. 그리고 도망간 어느 길에서 데미안을 만납니다. 데미안은 공포에 질린 싱클레어를 마주하고, 이 말을 던집니다. "싱클레어. 네 세계에 금이 갔구나. 언젠가 전부 깨버린 채 전부 박차고 오를 날이 오겠지." 그리고 이 기억을 마지막으로 크로머와의 전투가 펼쳐집니다.


황금가지와 공명하여 강력한 힘을 얻은 크로머는 강했고, 싱클레어는 몸이 녹아가는 와중에도 전투를 지속하려합니다. 안정되고 따뜻한 세계에 있던 싱클레어는 그 세계가 무너지고 나서 자신의 선택만이 남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자신의 선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아주 보지 않게된 이후로도 크로머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잊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림버스 컴퍼니의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너머의 길을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K사에 올 때부터 겁에 질렸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계속 말할 정도록 겁에 질려 과거의 그 사건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계에 금이 갔지만, 여전히 그 금이 간 세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마주하게 되고나서 공포말고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하나씩 드러냅니다. 분노를 통해 크로머를 마주보기 시작했고, 모든 수감자를 물리친 크로머를 눈앞에 두고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며 싱클레어가 이제는 과거에 가졌던 죄책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싱클레어의 각성과도 같은 모습이 있었음에도 현실은 냉혹합니다. 자신의 세계가 깨어지는 정도로 앞의 강력한 적을 물리치기에는 택도 없습니다. 순수한 인간을 추구했던 그의 적은 이젠 인간을 닮지도 않은 괴물의 모습으로 눈앞에 있습니다. 광기로 가득찬 그 모습 앞에 몸이 녹아내리는 한 인간이 마주하고 서있습니다. 순수한 인간을 추구한 괴물과 자신 내부의 혐오감과 죄책감을 이겨내고 앞에선 인간의 싸움은 괴물의 승리로 끝나기 전입니다. 누구보다 인간을 추구했지만, 누구보다 괴물에 가까운 크로머보다 인간 주체로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자 하는 싱클레어가 훨씬 인간답습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그 길을 걷기엔 부족합니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은 <데미안>에서처럼 데미안입니다. 어디선가 나타나 크로머를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물리쳐 버립니다. 하지만, 문학에서의 데미안과 달리 데미안은 딱 거기까지만 싱클레어를 도와줍니다. 이미 싱클레어가 자신을 걷는 것을 도와주는 관리자 단테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죠. 어린왕자의 모습을 한 데미안은 그대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황금가지를 회수한 후 3장은 끝이 납니다.


3장은 인간을 추구하며 인간을 버린 광기를 보여줍니다. 의체를 한 사람들은 어색하고, 누군가는 태생적인 불결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어쩌면 혐오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일 뿐이죠. 자신의 어떤 느낌을 이성으로 누르고 서로를 마주할 수 있기에 사람은 사람이라고 불리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겁니다. 크로머는 그 혐오감에 몸을 내맡겨 다른 이들을 마주보지 않았습니다. 앞에 있는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혐오감만이 중요할 뿐이죠. 싱클레어는 똑같이 혐오감을 느꼈지만, 크로머와는 달랐습니다. 의체를 한 사람이라도 마주하고 대화를 청했습니다. 단테에게 어떻냐는 질문을 던진 것도 이해하기 위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싱클레어는 완전히 마주하지는 못했습니다. 혐오감과 자신의 경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강했죠. 마주보지 않은 채 자신의 광기만을 발산시키는 크로머라는 적과 데미안과 단테라는 조력자가 이 길을 잃은 싱클레어를 길 위에 올라서도록 했습니다. 따뜻한 세계가 깨어진 공포에 잠식되어 도망가는 싱클레어가 아닌 나 자신을 마주하고, 세계를 마주하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려는 싱클레어가 될 수 있는 한 발짝을 디딘 것이죠.


<데미안>에서도 크로머의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중요하나 크로머가 줄거리에서 퇴장하는 것은 매우 초반부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는 싱클레어가 자신의 방황을 이겨내고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죠. 림버스 컴퍼니의 3장은 끝났지만, 수감자들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표지를 품게 되었으나 발현하지 못한 싱클레어는 여전히 버스에 타있고 여정을 계속할 것입니다. 광기에 공포에 마주했던 싱클레어는 이제는 도피하지 않고, 이 여정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더욱 성장하겠죠. 여전히 인간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완벽하게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싱클레어는 성장 중이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마주하는 것이 인간 주체로서 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라는 것. 그리고 싱클레어는 그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싱클레어의 다음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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