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실패, 자책감, 감정 숨김... 엄마가 먼저 돌봐야 할 마음들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은 웃고 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은 울고 있었던 날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나는 이렇게 힘든 걸까. 특히 수유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보다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돌보는 마음은 점점 작아지곤 합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괜찮지 않은 마음을 안고 견디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엄마로서 부족한 게 아닐까 자책하고, 아기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날들의 감정도,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 겪는 너무 당연한 마음의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에서는 잘하려다 더 아픈 마음들을 천천히 꺼내보고, 그 안에서 우리가 먼저 안아줘야 할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누군가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본능처럼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실제로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그 말을 먼저 내뱉고 나면, 다시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 더 어려워지곤 하죠. 아기를 안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잘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흔들려도 '내가 부족한가',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불안이 밀려옵니다.
사실 괜찮지 않은 날들이 많습니다. 수유가 잘 안 되는 날, 아기가 자꾸 우는 날, 감정이 뒤엉켜 있는 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너지고 싶지만 그 무너짐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괜찮은 척을 반복하다 보면, 감정보다 역할이 앞서게 되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가장 나중에 돌보게 되는 상황에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수유는 아기와의 가장 가까운 접촉이고, 부모가 되어 처음 마주하는 살아있는 연결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수유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단순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 감정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이 되어버립니다.
젖이 잘 나오지 않거나, 아기가 자꾸 물기를 거부하거나, 밤새 유축기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순간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라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수유가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마치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또는 엄마 역할에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감정을 꾹 누르고 웃으며 지나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건 정보보다도, 방법보다도 "그럴 수 있다"는 감정의 허락일지도 모릅니다. 수유의 실패가 곧 엄마의 실패는 아니니까요.
그런 감정들이 쌓이기 쉬운 이유는, 젖이 잘 나오지 않거나 아기가 거부할 때처럼 반복되는 어려움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려움을 느꼈던 그 순간들조차 당연한 과정의 일부였다는 걸, 이제는 스스로 인정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수유를 하다 보면, 아기보다 먼저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먼저 바닥을 치는 순간들. 아기는 울고 있지만, 나는 그 울음을 감당할 힘조차 없는 날. 몇 시간째 이어지는 수유 시도,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 안아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 '이렇게 해서 뭐가 나아질까' 싶은 생각이 떠오를 때, 문득 나보다 아기가 더 단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죄책감과 무력감이 겹쳐집니다. 아기 앞에서 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여유도 없고. 결국 남는 건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라는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감정이 먼저 무너진다고 해서 당신이 나쁜 부모가 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그만큼 애쓰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릅니다. 수유와 육아는 체력만이 아니라, 감정을 견디는 힘도 함께 요구하는 일이니까요.
조금 먼저 무너진 날이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나누고, 잠시 기대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뜻일 뿐입니다. 바로 그럴 때 필요한 것이,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나 자신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짧은 틈이 마음의 균형을 붙잡아주고, 무너지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줍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고, 아기의 작은 울음에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날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감정이 예민해지고, 일상의 작은 변수에도 쉽게 무너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렇게 묻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예민할까'
하지만 이 예민함은 약함이나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다는 몸과 마음의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수유 시간이 길어지거나, 몸이 피곤한데도 아기는 계속 안기려 하고, 무언가 하나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감정은 급격히 밀려오고, 그걸 말하지 못하고 참다 보면, 감정이 아닌 나 자신이 문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민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하면 감정을 돌볼 기회조차 잃게 됩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몸과 마음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입니다. 예민함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그만큼 많은 걸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 느낌을 밀어내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야말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눌러버리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나는 괜찮아야 해'
'이런 감정은 사치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올라오면 감정은 말도 꺼내기 전에 다시 안으로 접혀버립니다.
하지만 진짜 회복은 그 감정을 밀어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그 감정과 잠시 함께 머무르는 시간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 실망, 분노, 외로움, 죄책감은 어떤 이유도 없이 잘못된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이라는 건 지나가는 날씨 같은 거라 억지로 멈추려 하면 더 오래 머물고, 그저 바라보면 언젠가는 스르르 지나갑니다. 그 감정 속에 잠깐 기대어 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한 템포 천천히 돌아옵니다.
엄마이기 전에 나 자신으로서, 그 감정을 잠깐 안아주는 시간. 그게 바로 내 안의 여백을 지키는 방법이고,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정한 말을 듣고 싶어하고, 누군가에게 안심받고 싶어합니다. 그 누군가가 지금은 바로 나 자신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아기가 잠든 밤, 조용한 방 안에서 소리 없이 울던 기억이 있나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용히 흘러내리던 그 밤에도 당신은 여전히, 잘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무너짐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참아낸 모든 것의 흔적이었고 그저 감정이 흘러갈 수 있도록 잠시 문을 열어준 용기였을 뿐입니다.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칭찬하지 않아도, 당신은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아기를 품고, 견디고, 다시 일어서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잘하는 부모가 되려고 애쓰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내 감정을 다치지 않게 품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울었던 밤이 부끄럽지 않게, 그 날의 나를 탓하지 않게, 오늘은 조금 더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하루였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도 작은 루틴과 감정의 리듬을 지켜내려는 시도는 당신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조용한 힘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하루가 당신에게도 꼭 필요하다는 것, 그걸 기억해 주세요.
수유가 어렵고, 감정이 복잡하고,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오히려 나를 다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은 당신이 엄마로서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 안에는 매일 당신이 홀로 견뎌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고, 눈물이 난 날도 틀리지 않았고, 조용히 무너졌던 순간조차 당신은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잘하려다 지친 마음은 누군가의 칭찬보다, 조용한 위로 하나가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당신 스스로에게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