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마음은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시간
'우리가 함께 키우기로 한 거잖아.'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어느 순간부터 혼자라는 감정이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같은 집, 같은 시간 안에 있지만 아이를 돌보는 무게와 리듬은 어딘가 서로 다르게 흐릅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서운함이 쌓이고, 함께 있는 순간마저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왜 나만 이럴까'라는 자책과 외로움으로 이어지곤 하죠.
이 글에서는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데도 왜 나는 혼자인 것 같을까' 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비난도 정답도 없이, 그 감정 자체를 바라보는 시간. 그 안에서 우리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감정의 여백을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나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이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다른 피로를 느끼고, 서로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낸다는 걸 알지만, 막상 나의 하루는 혼자만 고여 있는 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눈앞에는 함께 있는 가족이 있지만 감정은 벽 너머에 놓인 것처럼 닿지 않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낮은 소리로 마음을 흔들곤 하죠.
누구도 크게 잘못한 건 아닙니다. 단지 각자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을 뿐인데, 나는 점점 더 혼자라는 기분에 잠식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기분은 때로 피곤함보다 더 크게 마음을 무겁게 만들죠.
가장 가까운 사람과 나누지 못한 감정은 조용히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작게 흔들리는 울림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
가볍게 던져지는 그 한마디에 왜인지 울컥하고 싶었던 날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기의 울음, 수유, 재우기,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데, 그 하루를 설명하자니 마치 별일 없는 하루처럼 느껴질까 봐 입을 다물게 됩니다.
사실, 설명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작은 서운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함께하는 것 같지만 서로의 하루를 모르는 채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그 서운함은 쌓이고, 결국 '왜 나만 이러지?' 하는 생각으로 자신을 가둬버리기도 하죠.
말하지 않았으니 몰랐던 거라는 말도,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 같은 마음도 어디쯤에서 부딪히며, 점점 멀어진 감정의 간격만 남게 됩니다.
같은 방 안에 있고, 같은 식탁에 앉아 있고, 같은 아이를 바라보는데도 어쩐지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TV를 보고, 누군가는 아기를 달래고, 같은 집 안에서 나란히 살아가지만 그 안에 담긴 하루의 밀도는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특히,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대부분인 쪽은 말수도 줄고, 눈빛도 흐려지고,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때 느껴지는 고립감은,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자랍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감정을 건너뛰다 보면 어느새 같이 있음이 단절로 느껴지기 시작하죠. 함께 있는데, 마음이 홀로 남겨져 있는 것 같은 그 순간. 그건 누가 더 많이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나도 힘들어."
그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걸 듣는 순간 내 감정은 틀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엔 분명히 섭섭했고, 조금은 화도 났고, 지쳤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는데 막상 대화가 엇갈리기 시작하면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말을 아끼게 되고, 혼자 생각하고 삼키고 참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죠.
하지만 감정이 상처가 되는 건 그 감정을 느낀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을 존중받지 못했을 때입니다. 예민한 게 아니라, 그만큼 느끼는 것이 많고,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일 뿐입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에 마음이 다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은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부터 먼저 믿어주는 것이 서로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같은 아이를 돌보지만, 서로 다른 리듬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한 사람은 아이와 하루 종일 몸으로 부딪히고, 한 사람은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 육아의 일부만 스쳐 지나갑니다.
이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리듬이 계속 엇갈리면 서로의 감정이 맞닿을 틈조차 사라지기도 합니다.그때 필요한 건 서로를 탓하는 일보다 '우리는 지금 다르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나와 같은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무책임한 것도 아니고, 내가 예민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각자의 리듬이 다를 뿐이고, 그 리듬을 조금씩 맞춰가려는 마음이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그날의 서운함을 풀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작지만 중요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육아 리듬의 충돌을 줄이기 위해 부부가 함께 시간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육아는 아이만 돌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부모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라는 또 하나의 생명체도 함께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울고, 어떤 날은 내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어떤 날은 부부 사이에 말이 엇갈립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를 돌보는 동시에 나 자신도 돌보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혼자 하는 기분이 들었던 날들, 말하지 못했던 서운함, 외로움에 길게 잠 못 들었던 밤들도 사실은 같이 키우는 길 위에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함께 키우기로 했다는 말은 모든 걸 정확히 나누자는 뜻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순간부터 비로소 조금씩 지켜질 수 있습니다.
함께 키우기로 했지만, 어느 날 문득 혼자라는 기분에 잠식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은 쌓이고, 같은 공간 속에 있지만 서로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사이 감정은 천천히 멀어지곤 하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똑같이 나눠야만 함께인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에 작은 여백 하나 남겨두는 일, 그 여백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을 잠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진짜 같이라는 이름을 지켜주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 밤, 혼자라는 생각에 조금 흔들렸다면 조금 더 느리게 걷고 있을 뿐 당신은 여전히 함께 키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