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칼럼]Izza - 위트를 입은 정통

내추럴 이탈리안 다이닝의 새로운 방식

by 세련된미식가 세미

서울 성수동의 한 모퉁이, 유리창 너머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단층 공간에 ‘이짜(Izza)’가 자리한다.



골목 끝에 불쑥 나타나는 이 식당은, 의외로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도 손님을 끌어당긴다.

‘Pizza’에서 P를 뺀 듯한 이름.

‘잇자’, ‘잊자’, ‘있자’처럼 들리는 그 이름은 가볍게 농담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 일종의 정체성 선언 같기도 하다.


이짜의 셰프 오동규는 “정통을 유연하게 해석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과하게 창의적인 것도, 고전적인 것도 아닌, 가장 일상적인 감각으로 이탈리안 다이닝을 풀어내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증명하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셰프 오동규, 그리고 ‘식탁의 방향성’



셰프 오동규는 Park Royal에서 유러피안 퀴진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Salvatore Cuomo에서 클래식 이탈리안의 원형을 익혔고, Le Comptoir에선 프렌치의 섬세함과 균형을 배웠다. 이어서 Toc Toc이라는 파인다이닝에서 수셰프(Sous Chef)를 거쳤고, Eeeat과 Cement라는 각각의 콘셉트가 뚜렷한 공간에서는 헤드 셰프로 자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요리 기술을 넘어, 식사의 흐름과 공간의 맥락, 그리고 접객의 철학까지 통합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가장 오랜 시간 꿈꿔온 것은, ‘누구든 편하게 올 수 있고, 한 끼 식사가 복잡하거나 어려워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로는 더더욱, 제약 없이 식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했어요. 어른도 아이도 자연스럽게 앉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요리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런 곳이요.”


그 바람은 결국 Izza라는 이름으로 실현됐다.


잇자, 잊자, 있어야 할 식당



첫 접시로 등장한 아스파라거스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요리 전에 입안을 정갈히 여는 역할을 맡는다.


탄 듯한 그을림이 남은 아스파라거스를 반듯하게 정렬해 담아낸 구성은 시각적으로도 절제의 미감을 보여주고, 곁들인 무스 형태의 소스는 식재료 본연의 향을 덮기보다 끌어내는 방식으로 조율되어 있다.


접시 위 초록의 채도와 라임 오일의 번짐, 플레이팅에서 느껴지는 식당의 감각은 이곳의 요리가 단순한 ‘불맛’을 넘어서 있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이 메뉴 하나만으로도 다시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접시가 있다면, 그건 이짜의 프라운이다.


두툼하고 탱글한 블랙타이거 새우 위에 얹힌 칠리크런치가 바삭한 첫 식감을 주고, 곧바로 흑초소스의 단짠 새콤한 잔향이 이어진다.


칠리와 흑초의 조합은 자칫 날카로울 수 있지만, 놀랍게도 조화롭다.

새우를 다 먹은 후에도 남은 소스는 식사의 ‘킥’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소스를 피자 한 조각 위에 올려 먹었을 때 터진 의외의 별미는, 이 집의 진짜 매력을 ‘즉흥적인 조합 속 살아있는 맛의 폭’으로 요약해 준다.



이짜의 대표 피자는 단연 잠봉이다.

검은색 차콜 도우 위로 잠봉(프렌치 햄), 무화과, 감자, 그리고 헤이즐넛 버터가 얹힌 구성은 기존 피자의 틀을 기분 좋게 비껴간다.


입에 넣는 순간, 단짠과 고소함이 마치 크림처럼 녹아들며 퍼지고, 특히 테두리 부분의 바삭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도우 자체에 숯 향이 은은하게 스며 있어 풍미를 단단히 잡아주며, 피자 한 조각에 불과한 구성임에도 마치 콜드컷 플래터를 먹는 듯한 입체감을 준다.


앞서 먹은 프라운의 소스를 이 피자 위에 살짝 얹어 먹자, 의외의 궁합이 터졌다.


이처럼 한 메뉴의 여운이 다른 접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식사는, 분명 잘 짜인 테이블이라는 증거다


셰프는 각 요리를 단순한 ‘알라카르트’가 아닌, 식사의 흐름으로 구성한다. 산뜻함에서 고소함으로, 청량감에서 농후함으로 넘어가는 흐름. 식사를 하는 동안 손님이 체감하는 질감의 변화, 온도의 변화, 심지어 식사 템포까지 세심히 설계되어 있다.


단일한 미식의 형식을 넘어서


이짜는 코스 레스토랑도 아니고, 전통 이탈리안 식당도 아니다. 하지만 요리 하나하나에는 셰프가 몸으로 익힌 조리 맥락이 녹아 있다. 그 흐름은 장르를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먹는 사람에게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그 인상은 정제된 인테리어나 화려한 플레이팅보다는, 일상적인 접시와 담백한 조리 방식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셰프 오동규는 “좋은 재료를 무조건 비싸게 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료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야 진짜 요리”라고 말한다. 이 원칙은 메뉴 구성에서도, 가격 설정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의도도, 트렌드를 과하게 반영하려는 전략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그러나 요리만큼은 정직하고 탄탄하게.


다시, 식탁 위의 질문


‘이짜’라는 이름엔 여러 개의 층위가 있다. 피자의 마지막 음절을 따온 농담 같기도 하고, ‘있자’, ‘잊자’라는 말장난 같기도 하다. 셰프는 이 질문을 받고 웃는다. “딱히 뭔가에 매이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는,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저희 가게가 담고 싶은 분위기—누구나 와서 있을 수 있고,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싶은—그런 걸 담고 싶었어요.”



이짜는 정통과 자유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 어디쯤, 우리가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식탁. 피자의 본류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그 너머를 향해 있는 다이닝. 셰프의 말처럼 “결국 맛있으면 되는 거죠”라는 선언이 이곳에서는 참으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성수동이라는 트렌디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지만, 유행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좋은 식사를 차려내는 식당. Izza는, 위트와 정통 사이에서 가장 아름답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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