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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구리]

by 우영이

인스턴트 라면 제품인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은 요리다. 너구리의 굵은 면과 매운 수프가 짜파게티와 잘 어울리고, 일반적인 짜파게티에서 조금 더 쫄깃하고 매콤한 맛이 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한우 채끝 살을 넣은 짜파구리가 비중 있게 다뤄져 주목을 받았다. 아카데미 짜파구리의 역사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은 출고된 지 십 년이 지난 승용차를 출퇴근용으로 이용해 왔다. 몇 차례 교통사고가 생겨 차 수리를 받았다. 차량의 노후화로 장거리나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이 걱정되어 시내만 이용한다. 경차만의 차별도 겪는다. 이유도 없이 괜히 가깝게 붙어 위협하듯 경적을 울려댄다. 서러움을 한꺼번에 떨치고 싶기도 한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자동차 판매점 방문은 주말마다 찾는 행사가 되었다.


몇 차례 차량 시승도 예약하고 제조사와 모델 별로 실물 확인을 하였다. 선호하는 승용차의 가격대 별 성능도 비교하고 차량 인도 시기도 따진다. 노트 몇 페이지에 분석표도 만들어 구입 차종을 줄여 나갔다. 차량의 최종 결정은 SUV다. 혼자 결정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많은 참고가 되었단다.


명절 전에 차를 받을 수 있다는 문자에 딸은 기대가 크다. 앱에는 배송 중인데 더 이상의 진행이 없다. 배송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고 오는 중 탈이 생겼나 갖가지 이유가 몰려온다. 새 차 구입으로 기분이 상승세였는데 실물 영접은 뒤로 미뤄야 할 처지다. 며칠 후 차량 번호판 선정을 위한 사진이 첨부되었다. 자동차 등록에 앞서 어떤 번호를 고를지 생각이 머문다. 이 사진 저 사진 가족 단톡 방이 시끌벅적하다. 4892, 짜파구리가 떠올려졌다.


처음으로 새 차를 구입한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 듯, 딸은 목소리조차 옥 구슬이 굴러가는 듯하다. 이 차에 우리들만이 부르는 이름이 생겼다. 선팅이 이루어지고 트렁크에는 실물 짜파구리가 귀퉁이에 자리 잡았다. 트렁크에는 조명 장치가 추가된다. 정성으로 몇 시간째 작업이 이루어져 외형 따라 아형 띠가 만들어졌다. 반짝이는 불빛은 젊은 분위기가 드러나고, 단순한 이동 수단이 재미를 더해 주는 도구로 다가온다. 시트보호 커버도 덩달아 설치해 둘만의 밀애를 기약하는 모양새다.


새로운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개인의 경험은 다양하게 와닿는다. 배고픔이나 문화의 한 요소로 등장한 물건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탈것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기다림의 즐거움은 입가에 웃음이 머무는 만족감으로 다가온다. 작은 것이 모여 큰 물줄기가 되듯 물질과 정신의 충족을 애원한다. 어느 한 가지가 충족되면 또 다른 욕심이 뒤따른다. 현재에 만족하면서 오랜 세월 함께 해 줄 우리의 짜파구리에게 푹 빠진다. 인생의 나침반처럼 안전한 항로를 함께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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