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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은]

by 우영이

‘이런 거에는 댓글 달아주지 말아주삼’ 자식은 마눌 편인데 “내한테는 아무도 내 편이 없네.”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눈에 물방울을 쏟아낸다. 때맞추어 아들이 바로 답장을 한다. “동생은 엄마 편이다.”

아들이 결혼하면서 분가를 하였다. 은근히 손주를 기다렸는데 많이 기다리지 않게 해 주었다. 결혼식을 올린 지 이년을 넘기지 않고 손주를 안겨주었다. 손주가 태어나면서 매일매일 보내 주는 아이 사진을 보면서 웃음이 가득하다.

성질이 급한 것인지 세상이 너무 궁금해서인지 당초 분만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엄마 아빠를 만났다. 조산과 미숙아로 현대 의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나름 걱정을 했다. 산모나 아기에게 따로 도움이 필요치 않아 일반 입원실로 옮기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아들과 함께 신생아를 마주하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분만실 앞 복도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을 바라보는 마음만큼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하고 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고 포대기에 싸인 태아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 있다. 첫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굳었던 어깨를 돌리고 숨쉬기가 편안해졌다. 아이고! 탄성이 절로 터진다. 양수에 뒤덮였던 얼굴은 쪼글쪼글하다 못해 이마는 누렇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뱉는 아기 울음에 ‘감사합니다’를 연신 읊조린다.

산부인과 퇴원에 이어 산후 조리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감염 차단의 이름하에 산모와 남편 외에는 아이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았다. 다른 가족들은 삼사 주 후에나 신생아를 안아 볼 수 있으려나.

손주가 태어났음에도 기꺼이 안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기의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만나게 해 준다. 마음은 몇 번씩 아가에게 가 있지만 화면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아이의 커 가는 모습을 올리는 앱에 가입을 하여 가족들이 공유를 하도록 초대되었다. 그날그날 올망졸망한 손주의 일상을 보면서 지난날 내가 아이를 키울 때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서재 한켠 먼지 내려앉은 사진첩을 꺼냈다. 첫째와 둘째의 백일 무렵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씨 도둑은 못한다고 했던가. 더하고 뺄 것 없는 부녀 사이다. 뽀송뽀송한 솜털 박힌 볼을 꼬집어주고 싶다.

어느 날 올린 손주의 동영상에 댓글을 달면서 일이 생겼다. 그저 자그마한 아기가 귀엽고 안타까워 무심코 올린 댓글에 자식 녀석이 태클을 건다. 자기 아내가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으니 그런 표현은 달지 않았으면 한단다. 그 이야기에 갑자기 아내가 눈물을 보인다. 팔을 휘둘러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을 노려본다. “내편은 아무도 없는데.” 아내의 등을 토닥여 준다. 여태껏 이래 왔던가. 당사자가 그렇게 느끼고 지내 왔다면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나.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신세대의 생각과 차이를 확인한다.

예전과 지금이 같을 수는 없다. 세월의 흐름 속에 신세대가 요구하고 누리는 여러 가지가 다르다. 우리 부부에게 갖추어지지 않은 여건은 삶을 질서 없이 흩뜨려 놓았다. 해야 할 일과 갖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삶을 통해 지난날의 우리를 돌아본다. 부모가 가져야 최소한의 준비도, 자질도 부족했다. 어느 날 자식이 우리에게 찾아와 부부가 함께 역할을 해 나갔다. 손에 익은 것이 없어 허둥대는 일은 당연했다. ‘자식보다 손주를 잘 돌볼 수 있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것이다. 부족할 것이 없는, 아니 넘쳐나고 남아도는 지금은 오히려 고통을 안긴다.

어깨를 들썩이고 눈물을 닦는 아내를 쳐다볼 수가 없다. 이삼십 년 동안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남남이 만나 오로지 남편만 의지하고 가정을 꾸렸다. 자식을 낳고 결혼하기 전의 세월만큼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지지하고, 방패가 되어야 할 남편은 보이지 않아, 자기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꼈으니 얼마나 황량했을까. 의지 할 사람은 남편인데, 아내의 눈물을 보면서 다짐을 한다. 미처 살피지 못한 그대의 마음을 다시는 아프지 않게 하리라.


자식을 통해 지난날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본다. 이제는 당신 편이 되어 줄게.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 앞으로는 그대를 혼자 두지 않으리다. 우리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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