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늦은 저녁마다 책방에 앉아 ‘우리가 바라던 바다’를 주제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날씨와 여러 사정으로 두 주 동안 자유분방한 시간을 취했다. 휴식 후의 첫 모임은 바다를 끼고 위엄을 자랑하는 해양 박물관으로 정해졌다.
약속된 시각보다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게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찾는 곳이라 한가롭게 둘러볼 요량이다. 천마산 터널을 지나 바다를 가로질러 반짝이는 파도를 굽어보며 남항 대교를 건넌다. 박물관으로 안내하는 길잡이를 따라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이십 여 분을 달려 눈앞에 한 척의 배가 항해하듯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커다란 닻을 안고 있는 건물 옆에 차를 세워 두고 본관을 향했다. 정문 옆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다. 눈앞에 보이는 이정표는 곧장 가면 조도요 맞은편은 크루즈선 터미널임을 알려준다.
정리된 나무계단을 옆에 끼고 바라보는 풍경은 멀리 부산항 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바다 끝 자락에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오륙도가 어렴풋이 자리해 있다. 막무가내로 시작된 도시 개발은 자연 풍광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눈길은 조도로 향한다. 발걸음이 무겁다. 삼십 여분을 걸었다. 대학 건물이 겹겹이 둘러 쌓였다. 방파제 아래 해양 실습선 두 척이 선착장에 묶여 있다. 작은 파도에 꿈쩍 않는 모습은 배의 위엄을 드러내는 듯하다.
조도 입구에 이르니 아침 바람이 제법 세다. 대학교가 들어서기 전 '아치섬 마을'이라고 불리던 곳으로 해돋이 명소의 의미를 지녔다. 아치섬 마을의 시초는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초 아치섬에서 조개 더미가 발굴되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19세기 개항 당시에는 인가가 예닐 곱쯤 있었고 광복 후 해산물 채취를 위하여 사람들이 거주하며 어촌 마을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한산하던 마을이 5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밀수 소굴로 둔갑하면서 대한민국 최대의 밀수 근거지로 불렸다고 한다. 70년대 대학이 들어서면서 백 여 가구의 주민들은 집단 이주 되고 마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아치섬 원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 저 편으로 밀려나 있다.
약속 시간이 되어간다. 해양 박물관 일 층 현관에 도착을 하니 단체 관람을 온 유치원 아이들과 공공기관에서 컨설팅 온 듯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짝의 손을 잡고 교사의 안내를 받는다. 반짝이는 눈과 꾸밈없는 모습이 손을 꼭 잡아 안아주고 싶다. 함께 행사에 참가 한 일행을 만나고 있을 때 모임을 주관한 작가의 전화가 왔다. 잠시 후에 도착한단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오늘 함께하는 사람은 다섯 명이다. 인사를 나누고 위 층에 올라 차를 한 잔씩 주문하여 마신다. 내려다 보이는 눈앞 풍광은 새로운 모습이다. 저마다 감탄사를 뿜어낸다. 바다와 섬의 조화가 색다르다. 멀리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가 덩그러니 산자락 옆에 붙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박물관 이 층에는 '별별신 특별전'이 열린다. 특별전은 어촌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펼쳐지는 의식을 실물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그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풍어제와 별신굿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풍습을 접한다. 바다를 끼고 바다에서 생활하는 우리네 이웃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기원하는 풍어와 안전을 엿본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난날의 정을 잃어 간다. 이웃이 멀어졌다. 조용한 해양 도서관이 애처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