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내려앉기 전 옷차림을 두툼하게 껴 입고 집을 나선다. 어제와 달리 바람이 잠을 자는지 포근함마저 피부에 닿는다. 매일매일 찾는 산책로는 마주치는 인적이 드물다. 일찍 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찾는다 했던가. 하루의 시작에 작은 여유가 생긴다.
휴일 아침 한가로움 속에 부부가 나란히 차 한 잔을 나눈다. 커피에서 녹차로 내용물이 바뀌었다. ‘세작’이라는 작설차가 한 모금씩 향기로운 맛을 보탠다. 녹차 맛을 알아 가는 시간에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고요 속에 편안함을 깨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상대방을 인식하지 못한다. 설명이 이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현직에 근무하고 있을 때 독서회를 함께 하였던 임원임을 확인한다. 그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상대방도 퇴직이 일 년 남았단다. 금년이 끝인데 모임을 이끌면서 나에게 초빙 강사 부탁을 한다. 몇 년 간 몸 담았고 강사로 한 번 나섰던 입장에서 곧바로 수락을 한다. 강사 승낙서와 개인정보 동의서 서식이 메일로 도착했다. 빈칸에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내는 일로 마무리되었다.
두 개의 도서관 독서 모임이 특강의 주 내용으로 자료가 만들어진다. 독서모임에서 나누는 토론이 같은 도서를 읽고 서로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더러는 치열하게 비판하고 공감하는 웃음과 눈물이 뒤따른다. 교육 현장에서의 소수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이 독서와 맞닿아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학생 때는 그나마 책 읽는 권 수가 상위에 있다. 성인에 이를수록 외국과 비교하여 일 년에 서너 권에 미치지 못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실정이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불러 올 필요도 없다. 나 자신도 퇴직 후 여유 속에 도서관을 찾고, 독서 모임을 통해 정기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종이 책이 미처 준비되지 못할 때 가끔은 전자책으로 시간 활용을 한다. 책 읽기가 자신의 지적 갈증을 채워 주는 계기가 되지만 의무감으로 손에 잡는 경우도 많다. 두 곳의 독서회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나의 느낌을 전달한다. 모인 이들이 다양한 연령층인 덕분에 세대를 아우르는 화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사건도 생긴다.
삼 년째 소설부터 인문학 분야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이 매월 독서대에 오른다. 토론 시간이 기다려진다. 지금까지의 독서 경험이 연구회 특강 자료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현장 교육에 도움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연구회 참석자에게 연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녹여들 수 있을지 부담스럽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앞 뒤 따져 보지도 않고 강사 승낙서를 보냈다. 나의 작은 경험이 학생 지도와 선생님들의 독서 교육에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책은 무한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이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친다. 긍정과 부정, 한 작가의 작품을 공감하거나 시대정신과 역사적 현실에 비난이 뒤따르기도 한다.
교육청 연구원 소속의 연구회에서 나에게 특강 요청이 왔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공식적으로 현장에서 멀어진 자신의 입장을 받아들이며 일반적인 중년의 삶을 이어왔다. 오늘을 계기로 마음 자세부터 바꾸어야겠다. 수동적인 것에서 벗어나 매사에 능동적으로 나설 것이다. 내가 필요한 곳은 거리낌 없이 나아가고자 한다.
도서관과 지자체의 평생 교육 프로그램 강좌가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열어 주었다. 지금껏 갈고닦은 영역의 전문 교과목을 넘어 다양하게 역량을 넓혀간다. 한국어와 특허 분야, 서예와 글쓰기 그리고 텃밭 농사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받은 전화가 잠자고 있는 나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이제는 생각부터 변화된다. 텃밭 농사와 글쓰기는 시나브로 몸에 배었다. 붓글씨는 필요할 때마다 화선지를 펼쳐 법첩의 글귀를 발묵 시킨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묻어두지 않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재능 기부는 또 다른 차원의 재생산 일테다. 한자 교육과 독서와 글쓰기가 어우러져 언어 능력을 키운다. 문해력이 요구되는 요즈음 의미가 크다.
약속한 특강 날짜까지는 시일이 넉넉하다. 남아있는 기간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다듬어 연수에 기대를 하고 모인 이들에게 시간을 쪼개어 ‘참석하길 잘했다.’ 유익한 연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동료와 후배 교사들에게 귀감이 되어 보탬이 되는 나 자신의 역할을 펼치는 내일이 기다려진다.
교학상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자. 배움에는 끝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마음을 넉넉히 챙겨 사회의 일원으로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자 한다. 다 함께 깨어있는 우리들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