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목소리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게 한다.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야! 우리 얼굴 본 거 오래 됐제.” “그래, 지난번 큰일 칠 때 보고 못 봤지.” “얼굴 한번 보자.” “언제가 좋겠노”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고향을 떠난 지 오십 년이 지났다. 한 동네에서 또래 열세 명이 한 집 건너 앞 뒷집 거리에서 태어났다. 맏이 이거나 막내로 앞 서거니 뒤 서거니 자라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면 단위 지역이지만 또래가 유달리 많아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았다. 책가방이래야 남자들은 큰 보자기를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여자들은 허리춤에 동여맸다. 달음질칠 때마다 필통 속의 학용품이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여기저기 쳐다보는 시선을 감추려고 발걸음을 살금살금 뗀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네모난 노란색 빈 도시락도 챙겨간다. 학교 후문 쪽 언저리의 급식실 가마솥에는 강냉이 죽이 익어갔다. 땔감 연기에 그을린 시커먼 천정 아래에 솥이 몇 개 걸려 있다. 고소한 냄새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옥수수 죽을 도시락에 받는다. 교실에 둘러앉아 앞 뒤 가까워진 뱃가죽을 채웠다.
우리들이 고향을 떠난 시기는 제각기 다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간 이도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대부분 기별도 없이 훌쩍 사라졌다. 일 이 년 간격으로 부모와 동무들 곁을 멀리하고 떠밀리다시피 생활 전선으로 나아갔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면서 가정을 꾸리거나 자기 생활에 충실하며 지냈다.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한 달에 한두 번 일요일에 만나 바닷가를 걷는 게 전부였다. 명절이 되어야 겨우 떨어져 있던 동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소꿉친구들이 모이면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고무줄놀이와 목마 타기를 하다가 다툰 일이며, 어른들 몰래 밀가루와 기름을 챙겨 와 외딴집에서 빵을 구워 먹은 일을 떠올린다. 십육구 짜리 국화빵 틀에 구워진 귀한 간식이다. 빵 재료를 서둘러 꺼내느라 부엌 살림살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찬장을 샅샅이 뒤진 결과 돌아오는 대가는 어머니의 회초리였다. 서툰 솜씨에 갈피를 못 잡아 콧잔등에는 숯검정이 수를 놓아 부뚜막에 오르내린 고양이 얼굴을 한 추억을 챙긴다. 발가벗고 철없이 개울에서 멱 감고, 소쿠리를 머리에 얹어 빨래터에 오르내리던 시골 내기 시절이 아련하다.
세월은 틀림없이 시간을 지킨다. 저마다 새로운 도시에 터전을 잡았다. 결혼 후 자녀를 낳고 한 집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반 백을 훌쩍 넘겼다. 날아가는 새도 짝이 있는데 지금의 나이에도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지 못한 이도 몇 된다. 다만, 뚜벅뚜벅 황소 마냥 자기 일에 열심이다. 각자 삶의 방식과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따름이다. 그러다 자식 이야기로 수다가 이어질 때면 괜스레 눈치를 살피게 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 했던가. 화제를 돌린다.
제각기 사는 지역이 다르다. 창원, 울산, 대구, 부산, 서울 등등 민들레 홀씨 되어 바람에 날려 정착하듯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둥지를 틀었다.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져 얼굴조차 가물가물하다는 녀석도 더러 있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사는 동무끼리는 분기별로 모여, 잔을 기울이며 지나온 세월을 불러 세운다. 멀리 따로 지내는 친구들은 우리들의 자녀 결혼식이나 어른 장례식에서 잠깐 보는 것이 전부다.
또래가 모이기로 한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 참석을 확답한 동무와 그렇지 못한 친구로 나뉜다.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하기도 하고, 서둘러 만든 단톡방에 시간을 낼 수 있는지 확인을 하였다. 중간 지점인 남부 지역 소도시가 집결지다. 뒤로는 산을 끼고 앞에는 강을 안은 전원주택에서 모인다. 모임을 앞두고 참석자를 챙겼으나 결국 예정 인원의 절반 정도만 자리를 함께 하였다. 두 시간 정도 차를 몰아 도착한 친구,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도착한 이에게는 승용차로 마중을 나갔다. 삼십 분 거리에 있는 동무는 얼떨결에 왔단다.
모여든 이들과 두 팔을 벌려 등허리를 안는다. 굳어진 허리만큼이나 그동안의 세월을 느낀다. 마주한 얼굴에는 파도에 밀려와 패인 모래톱처럼 잔잔한 주름이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찾아온 집에 그냥 방문할 수 없다며 화장지와 세탁 세제를 안겨 주었다. 안채와 별채, 창고를 둘러보며 좋은 선택을 하였다며 자신도 이 같은 꿈을 가졌는데 아직 실행치 못하고 있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잔디 마당에 햇볕 가리개를 펼쳐 자리를 잡았다.
몇 년 만의 만남인가? 이전에 두세 명씩 따로 만난 적은 있다. 많은 친구들이 오늘 같은 행사는 어른이 되고 처음인가 보다. 서로가 무정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삶이 팍팍해서인지. 그저 살림살이는 앞서고 뒤처질 것 없는 도토리 키 재기와 같을 뿐인데.
먼저 준비된 과일이 갓 시집온 색시 마냥 오밀조밀 수줍게 접시에 담겨 탁자에 오른다. 계집애들은 채소를 다듬고, 머슴아는 참나무 숯덩이에 불을 붙인다. 잉걸불에 석쇠를 걸치고 선홍 빛 고기를 한 점 씩 올린다. 치익~ 달구어진 불판에 고기 익는 냄새가 코를 자극해 침샘을 고이게 한다. 불판의 풍경은 사양 않고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젓가락을 들게 하였다. 여자들이 준비한 밑반찬이 올려지자 젓가락질이 점점 빨라진다. 채소에 쌈을 싸 서로에게 한 입 씩 건넨다. 술도 곁들인다. 자리를 함께 한 이들은 너나없이 소나기밥이다. 식탁에서 몸이 점점 멀어져 앉은자리가 흩트려졌다. 오늘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 둘 불리어진다. 농부로 살면서 선산을 지키는 친구나 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오가는 녀석 등 술잔을 함께 들지 못해 더 챙겨진다. 서로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이고 서로 챙기는 자리가 되었다.
식사 자리는 늦저녁까지 이어진다. 지나온 시간들을 탁자에 올린다. 동리 골목길을 누비며 지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불쑥불쑥 연결되었다. 도시의 곰삭은 마음이 훌쩍 넘겨진다. 고향에 대한 추억은 제각기 달리 남아 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 했던가. 어느덧 살아온 날이 살 날보다 긴 우리들이 되었다.
오늘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자리를 비워 둔다. 짧은 만남이었기에 조만간 여유롭고 넉넉한 시간으로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한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곧 만날 것을 새끼손가락으로 걸어본다. 헤어진 지 반나절 만에 벌써 그날이 언제가 좋을지 챙긴다.
터 놓고 서로 스스럼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둘도 없는 관계로 이어지는 친구가 있는지 돌아본다. 나는 이런 친구를 몇이나 두었는지 반문해 본다. 새삼스럽게 오늘의 만남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하다. 내일부터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안부를 물어보련다. 지금 시작하자. 모두 집으로 잘 돌아갔겠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