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탈체복(無明脫體復)

by 유정



전 세계가 지난 4월 교황의 선종에 경의를 표한 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권위에서 온다. 교회의 역사가 오랜 기간 전쟁과 돈, 식민지 건설 등의 탐욕과 연관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가치를 나누며 교리를 전파하려는 성직자들의 노력과 시간도 존재해서다. 묘지는 땅속에 있어야 하고, 특별한 장식 없이 간단해야 하며, 오직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겨져야 한다는 교황의 유언은 울림을 주지 않은가. 교회의 권위는 교회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시간과 존재 그 자체다.


교회는 서양사람들의 사고의 뿌리인데,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중심을 지켜주는 정신의 근간이다. 서양에서는 교회를 중심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실익을 이끌어내며 문명의 전환에 앞장서고 있다.


동양에서도 전통적인 가치를 주체로 하고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이용하자는 ‘체용(體用)’이라는 개념이 나온 바 있다. 중체서용(中體西用)은 19세기 후반 청나라 말기에 전개됐는데, 중국을 체(體)로 하고 서양을 용(用)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조선도 중체서용에 영향을 받아 동도서기(東道西器) 구호를 내걸며 근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청나라와 조선 모두 실패했다. 오히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일본의 체를 유지했고, 용을 적극 수용해 현재 정교한 사회체제를 구축하는데까지 발전했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건설 과정에서 일본보다 더 잔학한 모습을 보였지만, 현재 선진국으로써 전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조상들이 쌓아온 체를 지켰고, 이에 사회가 위험한 이념에 흔들리지 않도록 정신 기둥이 힘을 발휘해 실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제식민지 때 스스로 체를 버려 현재 정신 기둥이 소멸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유교와 불교를 옛날 얘기이고 여성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욕하지만, 여성을 억압한 건 성리학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선 조선 중기 이후로 한반도 전체 역사에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오히려 조선 중기까지 여성에게 똑같이 재산을 물려주는 중계사회였고, 대한민국이 건국됐을 때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어 전 세계적으로도 빠르게 여성의 권리를 인정했으며, 서양과 다르게 여성이 결혼해도 여성이 남성의 성을 따라가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문명의 변화를 이끌지 못했지만 서양이 부러워하는 정신 문화를 갖고 있다.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와 불교의 깨달음이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해 인간다움의 중요성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었고,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라고 말하며 자기성찰 능력을 강조했다. 대반열반경에 실린 석가여래의 마지막 설법엔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며 깨달음의 방법을 전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를 스스로 체화하며 진리를 탐구한 것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잘못된 집착과 사상으로 덮여 있고, 우리의 체와 정신 기둥을 ‘옛날 것’이라고 비난하는 무지(無知)를 드러내고 있다. 그 옛것을 계승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켜 실익을 얻고 있는 전 세계 수많은 선진국이 있는데도 말이다. 과거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은 서양과 달리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잔혹함을 경계하며 인(仁)을 실천했는데도 한국인들에게 평가 절하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현재 민주주의라는 구호에 광기를 띠며 빠져있는데, 민주주의는 분명 중요한 사회체계이지만 체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미국이 건국될 때 미국의 주도 아래 부활된 뒤 국내에 수입된 지배이념이며, 한국 사회에서선 이미 20세기에 완성된 그야말로 옛날 아이템이다.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의예지와 깨달음이 우리의 정신 기둥이라는 것을 깨닫고 전 세계 조류를 타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는 공부는 오히려 하버드대학교 등 세계 최고 명문대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법 등을 통해 계승되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따분하다고 비난하는 그 옛것이다. 전 세계는 화폐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코인을 암호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으로 보는 까막눈은 일제식민지와 그 이전 조선 당시 전 세계 정보에 어두웠던 상황과 다름 없으며, 비트코인 관련 기업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있는 공학자 등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20세기 구호인 민주주의를 21세기의 4분의 1이 지나간 2025년 현재까지도 외치는 것은 까막눈이 허상의 세계에서 화를 내며 허우적대고 있는 것과 같다.


무명(無明)에서 벗어나 체를 회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