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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메리 크리스마스!

by gentle rain

아버지, 안녕하세요?

한국은 갑자기 추워졌어요. 그곳은 여전히 화창하고 적당한 온도의 날씨일까요? 작년 아버지 생신 때 뵈었으니 1년이 넘었네요. 저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어요. 아내가 곧 MRI 등의 진료를 받아야 되긴 하는데 늘 저희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시니 다 괜찮을 거예요. 결과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저는 지난주에 대학원 2학기를 마쳤어요. 이름 있는 대학원은 아니지만 상담영역에서는 뿌리가 오래된, 배움이 많은 곳이에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제 안에 불안, 억압의 방어기제, 피상적인 대인관계 등 제 안의 연약함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남다른 가정환경으로 인한 영향이 컸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것 또한 은혜임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끔찍이 사랑하셨던 아내, 아... 저의 어머니를 하늘나라도 보내신 게 지금의 제 나이보다 훨씬 젊으셨을 때잖아요. 그때의 아버지 심정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횡격막이 내려가면서 큰 숨이 쉬어집니다.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삼형제를 생각해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지금의 어머니와 재혼을 하셨지만 모두가 힘들었었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저는 거의 없지만 어머니를 아는 모든 사람이 어머니를 칭찬하시더라고요. 참 훌륭한 어머니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 저는 20여 년 전, 처음으로 제 발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어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거든요. 상담을 받으면서 당시 건강하지 않았던 어머니께서 밥을 잘 먹지 않던 5살 어린아이에게 찬물에 밥을 말아 떠먹여 주는 한 장면을 찾았어요.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요. 아... 나도 사랑받는 존재였구나. 집에서 수없이 들었던 세상에서 처음 보는 못된 아이도, 한심한 아이도 아닌 그저 사랑받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교회에서 예배 중에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속에 들어왔어요. 공부를 잘해야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말씀에 바로 대답을 해야지만 사랑받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는 창조주 아버지의 마음이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죽음에 대한 충동이 멈췄습니다.


이후 한참을 지나 대학원에 다니면서 그때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시간을 가졌어요. 대학원 두 학기를 다니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평생을 소명으로 사시는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혼잣말로 '아버지 보고 싶어요'를 참 많이 얘기해요. 평소에는 잘 모르고 사는데 무의식에서는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제가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 학생들과 학교 현관 앞에서 핸드벨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합니다. 저는 키보드를 치고요. 새어머니 덕분에 음악적 소양을 갖게 되었음에 감사해요. 새어머니도 참 많이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네요. 평생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요. 제가 아버지 닮아 뒤늦게 공부하고 있네요. 아버지 존경합니다. 건강하시고, 부디 평안한 성탄절을 맞이하시길 바래요.


아버지, 메리 크리스마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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