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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Nov 27. 2019

쇼호스트의 말하기 9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만드는 사람들

사람들은 무엇을 만든다. 인천의 공단에서 우리의 피부를 가꿔줄 화장품을 만들고, 베트남 지역의 어느 공장에서 우리가 입을 옷을 만들고, 부산과 중국의 어느 곳에서 우리가 신을 신발을 만든다.

무엇을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많이 팔 것인가 고민이다.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만 옆 공장에서 만든 물건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반면, 내 물건은 외면을 받아 서글프다가, 절치부심해서 만든 다음 물건으로 다른 회사들의 부러움을 사는 매출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산다. 거의 비슷한 성분이지만 손이 가서 잡게 되는 화장품이 있고, 외면하는 화장품이 있다. 거의 비슷한 디자인과 소재의 옷이지만 어느 것은 두배가 비싸도 팔리고, 어느 것은 초저가에 내놓아도 외면받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매출은 운명인가?

왜 그럴까. 운명인가? 잘 팔릴 운명을 타고난 물건, 아니면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운명이 그러한 것인가.

노력하면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건가? 대체 내 물건은 언제 잘 팔리게 되는 것인가.

쇼호스트로서 19년간 유통현장의 최전선에서 고객과 만남을 가져온 나는 운칠기삼이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린다. 어느 물건이든 만든 사람들의 노고와 기대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나, 사랑받는 것은 적고, 외면받는 것은 많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팔리게 만들어야 팔린다. 그래서, 파는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제품과 상품

어느 물건에 대해 우리는 제품이나 상품이라는 말을 붙인다.

[제품]의 사전적 정의는 '원료를 써서 물건을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들어 낸 물품'이고
[상품]의 사전적 정의는 '사고파는 물품, 장사로 파는 물건, 또는 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재화'이다.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혼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무릇 유통하는 사람이라면 두 단의 쓰임을 알아야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낼 수 있다. 유통과 세일즈의 현장에서 자신의 물건을 누군가에게 많이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공장에서 갓 만들어낸 물건은 '제품'이고,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예쁘게 몸치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팔릴 준비가 된 물건은 '상품'이다.

쇼호스트는 '상품'을 파는 방송을 통해 시청자, 고객과 최우선으로 만나는 세일즈맨이고, 프레젠터이면서, '제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상품'이 되게끔 카피와, 마케팅적 상상력 버무려 넣는 마케터이기도 하다. 소위 '잘'하는 쇼호스트는 그런 면에서 3박자를 갖춰야 한다.


다음 시를 보자. 잘 알려지기도 했고, 언어가 아름다워 나도 무척 사랑하는 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략-
김춘수의 '꽃' 중에서.


아름다운 시를 인용해서 미안하지만, 쇼호스트로서의 이력이 더해질수록 우리는 어떤 제조업자의 귀한 자식인 [제품]을 [상품]화해서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그 [상품] 효용이 그들에게 유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또렷해진다.

소비자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파고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 때마다 작가, 피디, 엠디, 상품 공급사와 머리를 짜내어 만들어 냈던 카피와 컨셉 기획, 마케팅 전략들이 떠오른다.  


그저 따뜻한 겨울 본딩바지에 컨셉을 입히다

추운 겨울 따뜻하라고 만든 바지가 기모 본딩바지다. 일반적인 원단의 안쪽 면에 털 기모를 일으킨 원단을 합포(본딩)시켜 하체에 담요 두른 듯 포근함을 주는 바지 종류다. 십여 년 전 처음 이 바지를 접한 사람들은 따뜻한 건 좋은 데 너무 두툼해 보이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부해 보이면 나이 들어 보이고, 아저씨 같고 그럴 테니까 당연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A라는 브랜드의 안쪽에 기모가 있어 따뜻한 겨울 바지를 '아무도 모르게' 본딩바지라고 방송 중에 처음으로 이름 붙인 사람은 바로 나다.

티 나지 않으면서 따뜻하게 입을 수 있다는 컨셉을 '아무도 모르게'라는 카피로 만들고, 멘트를 마무리하면서 그 카피를 꼭 붙였다. 소비자는 직관적으로 그 본딩바지는 티 나지 않게 따뜻하다는 걸 인식했을 것이고,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기모본딩바지는 소위  대박이 났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얇고 따뜻한 원단들을 만나는 지금도 본딩바지를 소개할 때마다 즐겨 쓰는 카피다.


우리가 그에게 이름과 영혼을 불어넣기 전에는
[제품]은 다만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게 이름을 붙이고, 마케팅을 더했을 때
그는 소비자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물건 하나에 아이디어 한 스푼을 더해 '제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쇼호스트의 말하기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이 일이 재밌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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