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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Feb 18. 2019

쇼호스트의 말하기 4

- 스피치의 뼈대 만들기

그냥 떠들어~ 떠들면 된다? 

온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현대홈쇼핑 쇼호스트로 뽑히고 개국을 앞두고 있는데, 20여 명의 신입 쇼호스트 가운데 나를 비롯한 4명은 편성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가능성만으로 뽑히긴 했지만, 실전 프레젠테이션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동기들이 방송에 멋지게 데뷔하는 동안 4명의 원석들은 쇼호스트실 한쪽 자리에서 또 한 번 주어진 테스트 기회를 준비해야 했다. 


연예인에서 쇼호스트로 변신한 한 형님은 실의에 빠진 채로 면벽 수행을 하며 PT 연습을 하던 우리에게 새털같이 가벼운 말투로 조언했다. 


“시장에서 물건 파는 것처럼 떠들어~ 그냥 떠들면 돼~우리는 떠드는 거야”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떠들라는 주문이었다. 반감이 일었다. 아니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진 못할망정 떠드는 거라고 표현하다니. 담으려 했던 말의 뜻은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는 뜻이었겠으나, 특유의 가벼운 말투가 내용조차 불쾌하게 만든 것이리라. 어쨌거나 나는 원석 시절을 넘어서 19년 차 쇼호스트이고, 우리가 하는 일을 떠드는 것이라고 했던 그 형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일을 해야 하게 되었다. 우리 일은 떠드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것이 말인가

요즘도 간혹 상품 전략회의 자리에서 쇼호스트가 잘 떠들어 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악의 없이 한 표현이겠거니 하고 넘기지만 우리는 그저 떠드는 사람이 아니다. 제품의 특장점을 토대로 세일즈 포인트를 뽑아내어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듯 정밀하게 말을 구성해야 하는 사람이 쇼호스트다.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청자가 우리에게 귀를 기울여주는 시간은 5~7분(요즘은 3분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39,800원 짜리 상품부터 몇 백만 원 하는 상품까지 소개하고, 시청자가 주문 전화를 들 수 있게 설득해 내야 한다. 황금 같은 시간에 아무 말이나 떠들어서는 시청자를 고객으로 만들 수 없다. 일반적인 연설이나, 강연 등의 스피치와는 다른 조건 하에서 펼쳐지는 것이 쇼호스트의 스피치지만 어떤 종류의 스피치든 구성부터 잘 짜야 좋은 스피치가 나올 수 있다. 


O - B - C

스피치의 전통 이론에 따르면 스피치는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는다. 

O - Opening(서론)

B - Body(본론)

C - Closing(결론)


주의를 환기하는 Opening

과거 우리는 아름다운 오프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여전히 대중 앞에서의 연설이나 강연 등에서 청중을 집중시킬 수 있는 오프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점점 짧아지고 있는 쇼호스트 PT에서의 스피치나, 영업 거래처에서 선 채로 제품 설명을 하는 짧은 스피치에서는 오프닝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인다. '초보'후배들이 오프닝에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서, 옛날의 내 모습이 생각나 웃을 때도 많다. 


오프닝은 본론을 매개하는 인사말 정도의 비중으로 생각할 수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 스포츠 중계 등을 보다가 다른 채널은 뭐하나? 궁금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 채널에 들르는 시청자나, 내 상품에는 관심도 없는데 어쩌다 만나게 된 고객들이나 그렇게 한가하지는 않다.  그러면, 시간도 없으니까 대충 하라는 말인가? 


거래처의 의사결정권자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상품이나 비즈니스의 에센스를 의사결정권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엘리베이터 스피치’ 이론이 있다. 구매자, 고객, 의사결정권자는 1분이면 그 상품이나 비즈니스에 대해서 대략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오프닝이 길어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본론의 에센스를 강하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본론(body)의 테마는 3개면 족하다

방송을 위해 상품 전략회의를 갖는다. 상품 공급사, 담당 MD, PD, 쇼호스트가 만나는 자리다. 공급사는 자신의 상품을 설명하는 상품 기술서와 샘플을 가지고 상품의 ATOZ을 소개한다. MD는 기획의도와 판매 조건, 방송 콘셉트 등에 대해 정돈된 의견을 전달한다. PD는 전달된 정보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를 고민한다. 쇼호스트는 상품정보들 중에서 USP(Unique Selling Point)를 찾아 어떻게 소구 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공급사나 MD에게 상품은 자식과 같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소중하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도 PT에서 언급해주길 바란다. 경험이 적은 쇼호스트는 파트너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쇼호스트라면 5분 여의 메인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자를 것은 자르고, 핵심에만 집중한다. 파트너들의 소망은 오프 멘트(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자료화면이 나가는 동안 상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서나 들어준다. 

5분 여의 main pt는 3~4가지의 셀링포인트로 채운다.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다 보면, 핵심은 흐려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정작 중요한 부분의 소구가 미흡해지기도 한다. 3~4가지의 셀링포인트를 찾아 씨실과 날실을 엮듯 치밀하게 설명하고 고객의 마음을 잡는 것이 본론이다. 

 

Closing(결론) 내기

클로징에서는 반드시 행동을 유도하도록 권한다. PT를 마무리하며 강한 어조로 “이제 주문하실 시간 드립니다”와 같이 주문을 유도하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 어물쩍 마무리를 하더라도 주문할 사람은 주문할 수 있겠으나, 쇼호스트의 설득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주문 전화를 들라는 신호를 줘야 콜 그래프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소위 Call time이라고 불리는 시간은 쇼호스트가 PT를 마치고, 제품 이미지 영상 등 자료화면이 나가는 시간이다.


‘관여도’에 따라서 고객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저관여 상품은 일반적으로 긴박감을 주는 ‘하드 세일링’ 기법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관여 상품의 경우에는 고객이 전화를 들게 만드는데 좀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고가의 가전제품을 판매할 때는 종종 이렇게 마무리하곤 한다. 

“지금 주문하시면 내일부터 당장 배송이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배송 설치 시기 등을 정하기 위해 저희가 3일 내로 전화드릴 거예요. 오늘 일단 주문 걸어두시고, 여기저기 비교해 보십시오. 저희 조건이 제일 맘에 들고 믿음직하면 전화드릴 때 배송 약속 잡으시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100% 취소가 가능합니다. 부담은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자신 있는 조건 함께 하시죠.” 

좋긴 좋은데, 수화기를 들까 말까 고민하는 고객의 부담을 낮춰 수화기를 들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처럼 O - B - C 구조로 말하기의 뼈대를 세우고, 대략 O:B:C=1:3:1 정도로 시간을 배분하여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똑같은 주제의 스피치라 하더라도 5분, 7분, 10분 등 주어진 시간과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논리 정연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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