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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Feb 24. 2019

아직은, 마흔여섯

- 꿈이 사라지면 배가 나온다

아빠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너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이 50이 저 너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세상은 어렵기만 한데, 이제 곧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어야 하다니. 20대 때는 꿈을 향해 한결 같이 정진했으나 실패했고, 30대 때는 일하는 바닥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분투하느라 바빴다.  어떻게 하면 잘 되지? 성공하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 나갈까? 그이는 안정적인 직업이니까 부럽네. 몰랐는데 돈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 인생은 오직 나만의 것인데 즐거운 것보다는 손에 잡히지 않는 헛된 '성공'에의 욕구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았고, 부단하기만 했던 시절들이다. 


결혼을 하면 안정적이 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랬더니 우주가 바뀌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이 와이프, 딸과 함께 꾸리는 우리 집 가장의 삶으로 바뀌었다. 더 연로해지신 아버지를 봉양해야 하고, 처가가 생기며 챙겨야 할 가족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나는 아들이고, 여섯 누나의 동생이고, 김서방이며, 수현이 아빠고, 우리 아내의 남편이다. 딸이 태어난 후로는 내 헛된 성공 욕구 때문에 마음이 분주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만 믿고 사는 우리 '가족'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느냐가 화두가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마흔여섯이다.

 

결혼 이후로는 외모에 신경이 덜 쓰였다. 타고난 동안과 살찌지 않는 체질에 대한 자신감이 한동안 유지되었다. 25만 원 하던 청바지도 마음에 들면 사고, 후배들 밥도 척척 잘 사주던 쾌남자가 가계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보니, 의식주 가운데 패션 영역의 지출에 제일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바람 불면 찰랑이던 볼륨감 있는 머리 스타일도 나오지 않고,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매끈했던 몸이 살이 쪄 있었으며, 뽀얗진 않아도 건강하게 까무잡잡했던 얼굴 톤도 칙칙하기 이를 데 없다. 


40대 초반이라고 우기고 싶던 45 세까지는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46세가 되어 더 이상은 40대 초반이라 우길 수 없게 되니 억울하다. 효자까지는 아니어도 착한 아들로, 성실한 남편으로, 자상한 아빠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하는 직장인의 삶은 아니지만, 프리랜서라 수입이 많은 편이어도 들쑥날쑥하고, 친구들은 팀장, 부장, 어떤 이는 사장인데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쇼호스트일 뿐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젊고 예쁘고, 날씬했던 시절엔 의류를 많이 팔았지만 지금은 건강식품, 건강용품, 가정용품을 많이 소개한다는 것 정도?


딸 친구네가 동네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2억이 넘는 프리미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분양권을 팔아 차를 바꿨다는 얘기까지 들으니 배가 아프지만, 아내에게 배가 아픈 내색하기는 싫다. 더군다나 그 아파트는 우리도 분양 신청을 해볼까 부부가 며칠간 고민했던 곳이기도 하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갈 곳이 많운 삶이라 두려웠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 저지르지 못했으니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지인이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해서 건물주가 된 이야기,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아 별다른 일은 안 하면서도 편안하게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면서도 배 아프지 않은 척한다. 다 큰 어른이 그런 일에 흔들리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주를 봤더니 점쟁이가 점사를 말해준다. 

"당신은 당신이 일한 만큼 벌어먹고사는 팔자야. 80까지 일해!" 

"네?!" 제 꿈은 60세 은퇴 후 전원생활하는 건데요?"

"80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이 와, 그때까지 일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야."

"그럼, 제 인생에 대박은 없나요? 흐흐 ^^;" 

"그런 거 없어! 잘 벌면서 욕심은...."

운명이나 팔자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점쟁이의 말처럼 내가 일하는 만큼 벌어서 먹고살아왔다. 왜 내게는 행운의 여신이 환한 웃음을 지어 주지 않는가. 왜 뿌린 대로만 거두란 것인가. 왜 그 점쟁이의 말에 내색하지 못할 억울함이 느껴지는가. 


남들은 양력 1월 1일부터 계획한 것을 실행하지만, 나는 음력설까지 집안에 일이 무척 많은 편이라 계획하는 것을 미뤄 두었다. 설이 지나 목표를 만들었다. 

귀엽게 둥그런 보름달 같은 배를 집어넣을 것이고, 30대 초반 때의 얼굴 톤을 만들 것이며, 위대한 글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삶과 전투만 했던 것에서 벗어나 삶을 즐기는 아빠, 아들, 남편이 될 것이다. 

‘무엇이 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라는 피곤한 목표에서 벗어나,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즐겁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겠다. 개인적 성공에 대한 꿈이 아닌, 가족, 이웃과 잘 사는 삶에 대한 꿈을 꾸겠다. 다른 이들의 행운과 성취를 내 삶의 팍팍함과 비교하지 않겠다. 마음에 드는 생각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머리숱이 적어지고, 배가 나왔다. 함께 어울리던 때처럼 욕을 섞어가며 즐겁게 떠들다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다섯 명이 호주머니 돈을 털었는데 2600원 밖에 없었던 적이 있다. 그걸로 소주 한 병, 라면 하나 사고 학생회실에서 봉지라면을 안주삼아 밤을 새워도 즐거웠다.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고 서로 격려하며 각자의 꿈을 응원했던 친구들이다.  20년 지나서 만나니 부동산, 주식, 자식들의 학업 걱정에 맥주잔을 기울이게 된다. 술도 못 마시는데 얼큰하게 취하는 기분이다. 재미가 없다. 이게 대한민국 가장들의 인생이고, 모두 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썩 위안이 되진 않는다.  내 꿈은 어디로 간 것인가. 내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 된 20년, 일부 성취도 있었으나 낭만적으로 꿈꾸는 것을 잊어버린 세월이 20년이로구나. 


꿈이 사라지니 배가 나왔다. 

나이가 들어 신진대사가 떨어지니 살이 찌고, 배가 나온 것이겠지만, 공교롭게도 꿈이 없는 생활인이 된 때부터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생의 절반을 보냈다.  생업 외에 인생 2막을 즐겁게 꾸며 나갈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다. 여행, 독서, 기타 제대로 배우기, 수영 배우기, 영화 많이 보기, 작가되기....

인생 2막은 새로운 꿈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는 잊지 않아야겠다.

꿈이 사라지면 배가 나온다는 것을. 아직 나는 마흔여섯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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