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오래 미뤄왔다.

— 이제야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by 아림

인도에서의 시간은 길었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길을 걷고, 계절을 여러 번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은 기록은 거의 없다.

문득 깨달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는데,

정작 '나'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블로그를 시작하려 해도 올릴 만한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아니, 사진보다는 의욕 자체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나는 늘 '이끌림'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주체가 되기보다, 누군가의 뜻을 따라가는 일이 익숙했다.

그게 믿음이라 생각했고, 순리라고 믿었다.

선교에 뜻을 둔 남편을 만나 인도로 갔고, 신혼생활과 출산, 육아를 모두 낯선 땅에서 경험했다.

비자 문제로 네팔에서 2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뭘 잘하고 싶은지도 모르게 됐다.


2019년 팬데믹 직전, 셋째 아이 출산을 위해 귀국했다.

첫째, 둘째는 인도에서 낳았는데 셋째는 달랐다.

당뇨가 심해진 상태라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고, 덩달아 비자 이슈도 생긴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그때 귀국하지 않았다면 코로나 시기를 네팔에서 훨씬 더 어렵게 보냈을 것 같다.

선교를 하며 사건, 사고가 참 많았다.

돌아보면 다 추억이지만,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한국에 와서 남편은 많은 갈등을 했다.

소명 의식으로 지난 시간을 보냈지만, 외아들로 태어나 점점 나이 드시는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은 점점 커져갔다. 삼 남매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계속 집을 비워야 하는 부담감, 더불어 선교사와 국내 목회자로서의 괴리감이 그를 괴롭혔다.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그는 이제 마음 편히 사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나를 설득했고, 결국 우리는 지난 삶을 정리하기로 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삶 말고, 우리를 돌보는 삶을 시작하기로.


부모의 삶이 갑자기 멈춘 경험은 아이들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겉으로는 밝게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막내는 원인 모를 변지림과 변비로 수개월을 고생했고

둘째는 밤마다 악몽을 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첫째는 사춘기를 맞이하며 대혼란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 늘 바쁘게 살아오느라 아이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던 나는,

이제 아이들을 먼저 돌보는 삶을 선택했다.


세상은 여전히 9시부터 6시까지 돌아간다.

하지만 내 하루는 늘 그 틀 밖에 있었다.

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고,

내 학력과 경력으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어려웠다.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하며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 자리를 떠나고 나니 남은 건 '이제 나는 뭘 하지?'라는 물음뿐이었다.


남편의 수입은 일정치 않았고, 나는 태평하게 자기 계발 공부를 하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독서를 해도 낮아진 자존감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날들이 쌓이면서 마음 한편에는 작은 불씨가 남았다.

'나는 쓰고 싶다.'

사진은 부족해도, 말은 있으니까.


그동안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물음 자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기록을 시작하려 한다.

아마 나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곳에 조금씩, 천천히,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