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박하지 않다, 아직은

by 아림

책을 읽다가 잠시 멈췄다.

『밤과 나침반』의 저자 하와이 대저택의 말,

퇴근 후 하루에 책을 두 권씩 읽을 수 있었던 건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내가 절박하다고 생각했다.

커리어 없음, 금융 지식 얕음, 인간관계 리셋, 40대 재시작. 스스로를 설명할 때마다 이 단어들을 꺼냈고, 그럴 때마다 꽤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절박한 사람이고, 그러니까 지금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런데 책이 거울이 됐다.


하와이 대저택은 절박해서 하루에 책을 두 권씩 읽었다고 한다. 주말에 5권.

나는 절박하다고 느끼면서 책을 몇 권까지 읽어봤나. 얼마나 노력했나.

무언가를 악착같이 붙든 적이 있나.

세어보다가 그냥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숫자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절박하지 않다고.


이상했다. 분명히 절박하다고 느꼈는데, 실제 내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느끼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 꽤 큰 틈이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 알면서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진짜로.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절박한 상황'과 '절박한 마음'을 같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상황이 어려우니까 나는 절박한 사람이라고.

그런 자기 인식이 꽤 편했던 것 같다.

절박하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뭔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절박함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느끼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

그렇다면 나는 왜 움직이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던 것 같다.

절박하게 뭔가를 향해 달려갔다가 또 엎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마음.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던 오랜 삶의 습관도 아직 몸에 남아있다.

방향이 없는데 달리면 그냥 넘어지기만 한다는 걸 몸이 알고 있는 걸지도.

그게 핑계인지 지혜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오늘, 한 가지는 인정하게 됐다.

나는 절박하다고 생각했지만, 절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이제야 봤다.

진짜 절박함은 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저래야지' 느끼는 데서 오지 않는다.

그건 그냥 독서 감상이다.


절박함은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날 때 온다.

나는 아직 그게 깨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내가 느끼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을 직면하는 것, 그게 먼저다.

가짜 절박함으로 매일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는 것보다, 내가 왜 아직 움직이지 않는지를 먼저 아는 게 맞는 순서일 것 같다.

방향이 생기면 몸은 따라온다.

몸이 따라오면 차 마실 시간이 없어진다.

그때가 되면 이 따뜻한 차가 조금 그리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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