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다
허세로 시작한 독서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솔직히 말하면, 독서가 좋아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카페에서 책 펼쳐 든 내 모습이 조금은 있어 보일 것 같아서.
이 고백을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다.
그 가벼운 허세가 내 삶을 바꿔놓았으니까.
어느 날, 오랫동안 속해 있던 세계를 떠났다.
자의였지만 두려웠고,
옳은 선택이었지만 텅 비었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가족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 같은 날들뿐이었다.
내 이름으로 무언가를 해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그러면서도 아이 셋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했고,
"나는 앞으로 뭐가 되지?"라는 질문은
대답 없이 매일 아침 찾아왔다.
그 무렵 유튜브를 참 많이 봤다.
살아남은 사람들,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그럼 나도 해보지 뭐."
거창하지 않았다.
안 하고 후회하는 건 내 성격상 못 견디니까,
일단 몸을 움직여보자는 심정이었다.
거기에 살짝, 책 읽는 내 모습에 대한
소박한 기대감도 얹혀 있었고.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종이와 공기가 뒤섞인 특유의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여기선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처음엔 욕심도 부렸다.
잔뜩 빌려왔다가 다 못 읽고 반납하기 일쑤였고,
"역시 나는 독서 체질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나와 결이 맞는 책이 따로 있다는 것.
억지로 읽히지 않는 책은,
지금의 내가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책이라는 것.
맞는 책을 만나면 달랐다.
다 읽고 나서도 다시 펼치고 싶고,
밑줄 친 문장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한 권씩, 책이 나와 가까워졌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시작한 독서였는데,
책은 내가 기대하지 않은 것들을 돌려주었다.
첫 번째는 마음의 평온함이었다.
세상은 그대로였다.
육아는 여전히 길었고, 미래는 여전히 흐릿했으며,
내 자리는 여전히 좁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아무도 몰라줘도 나만 아는 성취감이었다.
한 권을 덮을 때마다 쌓이는 그 감각.
누가 봐주지 않아도,
칭찬받지 않아도,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느낌.
무엇보다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다. 쓰면서 만나는 내가 정말 반갑다. 모르고 살았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 독서를 하며 얻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데 손이 안 간다면,
거창한 이유 같은 거 없어도 된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라도 충분하다.
그 가벼운 마음이,
반드시 삶의 선물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