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해야만 사는 사람

대화가 필요해.

by 아림

남편과 나의 관계는 대화의 양과 비례한다.

서로 바쁘거나, 어떤 일로 감정이 상해서 대화가 줄어들면 반드시 다투는 일이 생긴다.

혹은 한 쪽이 사소한 일에 토라지거나, 별것도 아닌 일에 쉽게 오해가 생겨 결국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숨을 못 쉬는 사람들이다.


결혼 초기, 나는 남편의 말에 자주 마음이 상했다.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뭔가가 내 마음속 어딘가를 툭툭 건드리는 게 너무 싫고 기분 나빴다.

당연히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시선으로 번번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결혼 후 처음 시댁에 내려갔을 때였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속으로 덜컥 겁이 났다.

싸우는 건가? 강하게 치고받는 것 같은 말투, 빠르고 힘 있게 오가는 대화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물론 싸우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일상적인 저녁 식사 자리였다.


말의 온도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우리는 보는 것부터가 달랐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는 한참을 떠들었다. 장면이 어땠는지, 인물이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은지, 어느 부분에서 울컥했는지. 남편은 그 모든 말을 듣고 나서 한마디 했다. 좋네.

음식을 먹어도 맛있네, 뭘 봐도 그렇네.

처음엔 나한테 관심이 없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그 사람이 가진 언어가 그만큼이었던 거다.

남편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툰 사람이었다.

외동아들로 자라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환경이 많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데이트할 때는 잘 몰랐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물으면 항상 좋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으니까.

그냥 나한테 맞춰주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생기면서 종종 싸웠다.

결혼 전이랑 달라진 것 같다고.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표현을 잘 못해서 그랬던 거라고, 이제 나랑 있는 게 편해지니까 날것의 감정이 툭툭 나오는 것 같다고.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남편이 묵묵히 맞춰줬던 게 표현할 줄 몰라서였다는 걸.

남편은 나를 만나 크림파스타를 처음 먹어봤다고 했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본인 몫으로는 한 번도 시켜본 적이 없었다고.

그런데 내가 맛있으니까 먹어보자고 하니까 그냥 응, 했다가 맛있더라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맞춰준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대화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를, 남편은 처음에 부담스러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다고도 했다.

나를 만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냉소적인 말이 다른 사람들 귀에 어떻게 들릴지, 혹시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지.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부담스러워하고, 조금씩 불안해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게 가장 크게 불거진 건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우리는 그때 외국에서 살고 있었고, 남편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영어가 부족했던 남편을 위해 나는 강연이 끝날 때마다 틀린 표현을 지적하고, 말투와 제스처에 대한 피드백을 했다.

남편을 위한 마음이었다. 정말로.

그런데 그게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남편은 점점 지쳐갔다.

자기 보다 영어도 잘하고, 서울 사람이고, 가정형편도 더 나은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크게 싸웠다. 살면서 그렇게 소리치고 울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정말 당신이 너무 잘 됐으면 좋겠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남편은 그 말이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무시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그 순간 남편이 나를 향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산산이 부서졌다고 했다.


그 싸움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이야기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의 진짜 이유는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거다.

내가 지적을 하는 건 남편을 위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남편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니 그냥 지적일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걸 그때 나도 비로소 깨달았다.


이야기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어디까지를 꺼내놓느냐가 중요했던 거였다.

그 이후로 남편은 내가 자신을 사랑하고 위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서울 남자처럼 다정한 말이 바로바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불편한 내색을 할 때 말하는 부분을 의식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해야만 사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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