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소대나무의 성장에 대하여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잠시 앉아 있었다.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조용한 저녁이었다.
그동안 묵묵히 잘해오던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어깨가 조금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잠깐의 미끄러짐에도 스스로를 더 크게 몰아붙이곤 한다.
옆에서 지켜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가끔은 망설여진다.
괜찮다는 말이 너무 가벼운 위로처럼 느껴질까 봐.
그러다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모소대나무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10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성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주 멈춰 서 있던 시기였다.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던 때였다.
그때 우연히 모소대나무 이야기를 들었다.
모소대나무는 씨를 심고 나서 4년이 넘도록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겨우 몇 센티미터 올라오는 것이 전부라 겉으로 보면 성장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5년째가 되면 하루에 30cm 이상 자라기 시작한다.
마치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처럼.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가 그때 참 인상 깊었다.
성장은 늘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요즘 그 이야기를 가끔 떠올린다.
남편을 보면서도 그렇고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도 그렇다.
사람의 삶도 늘 위로만 자라지는 않는다.
어떤 시간은 땅 위가 아니라 땅 아래에서 흐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시간.
지금의 시간이 조용하고 느리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멈춘 시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모소대나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