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있었다.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
남편은 일찌감치 조수석에서 항복했다.
눈을 감자마자 곧바로 입이 살짝 벌어지더니—잠든 사람 특유의 그 평화로운 얼굴.
덕분에 핸들은 내 차지가 됐다.
밤 운전은 여전히 긴장되지만, 뭐 어쩌겠나.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속도를 조금씩 올리던 중, 앞 차가 이상했다.
차선을 넘나들며 흔들리고, 속도는 들쭉날쭉. 누가 봐도 졸음운전이었다.
'이건 위험하다' 싶어서 추월을 결심했는데, 추월 차로가 좀처럼 비질 않았다.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은 차곡차곡 쌓였다.
드디어 차로가 열렸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악셀을 밟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엔진이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야?! 무슨 소리야?!"
남편이 벌떡 일어나 계기판을 보더니 외쳤다.
"6000RPM 넘었잖아! 뭐 하는 거야?!"
잠깐, 6000이 뭐가 문젠데?
우리는 얼마 전 차를 바꿨다.
오래 타던 디젤 SUV에서 세단으로.
남편이 주로 모는 차였고, 나는 시내 주행만 몇 번 해봤을 뿐이었다.
예전 차는 발만 살짝 올려놔도 휙 나가던 애였는데, 이 친구는 아니었나 보다.
옛날 감각대로 악셀을 밟았다가 RPM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버린 것.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남편은 자동차를 전공했고, 차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을 넘어서… 솔직히 말하자면 과보호 수준이다.
오일 교환 주기는 물론이고 타이어 공기압까지 신경 쓰는 사람.
그 덕에(?) 우리는 차 문제로 다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 설명도 듣지 않은 채 "차 망가진다", "무리한 운전이다"라는 말만 쏟아내고 있었다. 순간 화가 확 치밀었다.
나는 위험을 피하려고 했던 건데, 그건 안 보이나?
결국 가까운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당신이 해. 그리고 앞으로 나 이 차 안 탈게."
그리고 입을 닫았다. 어차피 이야기해 봐야 또 싸울 게 뻔했으니까.
며칠간의 냉전.
먼저 말을 건 쪽은 남편이었다.
"계속 그렇게 삐져 있을거야?"
…이 사람이, 진짜.
하지만 나도 이제 좀 식었으니까,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날의 불안과 판단의 순간을.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보다 차를 더 아끼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그러고 보니 마침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 동생 남편, 그러니까 제부는 동생이 차를 여러 번 긁고 고장 냈을 때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차는 고장 나도 돼. 사람만 안 다치면 되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감동했다.
비교는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엔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났다.
남편은 한참을 듣더니 조용히 사과했다.
본인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앞으로는 차보다 사람을 먼저 보겠다고.
물론 나도 잘못이 있다. 차에 대한 이해 없이 운전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번 6000RPM 사건은 단순한 엔진 회전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 속도로 돌고 있었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차는 다시 정상 RPM으로 돌아왔고, 우리도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조금씩 맞춰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6000RPM, 정말 대단한 위력 아닌가.
차도 놀라고, 남편도 놀라고,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마음을 한 번에 가속시켜 이해의 지점까지 데려다 줬으니까.
다음엔 좀 더 부드럽게 가속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