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처음부터 취미가 아니었다.
너무 안 읽어서, 가끔 마음이 찔릴 때마다 꺼내 드는 특별 활동에 가까웠다.
계획표에 적어야만 실천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이벤트 같은 것.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재미있는 문장을 만났고, 생각보다 오래 책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쯤 독서는 취미가 되었다.
여유가 있을 때 즐기는 것, 삶의 바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호 같은 자리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독서가 취미의 자리를 떠난 순간은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마음이 자주 가라앉고, 생각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
그때 나는 책을 ‘읽었다’기보다 ‘붙잡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정확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책은 마지막에 남은 선택지 같았다.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아서도 아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이 상태로 가라앉지는 않게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상한 일이다.
가장 위태로운 시기에 책을 읽고 있는 지금이,
돌아보면 가장 평안하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잠잠해진다.
독서는 내 삶을 정리해 주지 않는다.
답을 주지도 않는다.
대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준다.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허락한다.
요즘의 독서는 성장의 도구가 아니다.
성과를 남기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루를 버텼다는 증거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이제 독서를 말할 때 조심스러워진다.
책을 읽으면 뭐가 달라지느냐는 질문 앞에서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 자신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나에게 독서는
좋은 취미가 아니다.
훌륭한 습관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기 위해 붙잡고 있는 것.
나의 평안,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