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시리우스 A, 그리고 B

심야 안부 03 - 겨울

by 별의별



좌측 하단 밝은 별 – 시리우스 ㅣ 우측 상단 별무리 – 오리온성운(M42)



안녕, 시리우스

이렇게 인사말을 직접 건넬 수 있어서 반가워.


그간 너의 명성은 충분히 들어왔어.

겨울 하늘의 전설, 그 빛나는 위용.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 겨울에는

마치 항성인척 위장한 목성의 존재감 때문이었을까,

네가 그렇게 눈부신 존재라는 사실이 선뜻 실감 나지 않았던 것 같아.


저녁 시간, 하늘 높이 떠 있는 오리온이나 마차부의 카펠라와는 달리

도심의 빌딩 위를 아슬아슬하게, 혹은 산봉우리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

남쪽 낮은 고도로 서서히 솟아오르며 빼꼼 고개를 내밀던 너를

난 인내심을 품고 기다리고는 했어.


하지만 너는 내가 상상했던 위풍당당한 광채보다는

낮은 고도 탓이었을까,

차가운 대기에 의해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여린 별이더라.


Sirius - 불타오르는

천랑성 天狼星 - 하늘의 이리

큰개자리의 알파성

오리온의 사냥개

지구의 밤하늘에서 보이는 가장 밝은 항성


여러 이름과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너지만,

천체관측에 별로 관심 없는 어떤 사람에게

'아 저건 겨울하늘의 큰개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에요!'라고 말해주었더니,

'그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가는 별인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더라고.

하하하... 그럼 대형견은 시리우스(큰개)로 가고 댕댕이들은 프로키온(작은개)으로 가려나?

그 귀여운 해석이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두고두고 곱씹어보곤 했지.


여러 매체의 프레이밍과 우러름 속에서

넌 어깨가 으쓱할 테지만

난 개인적으로 네가 '희망'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별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희망' -

그건 목표도 염원도 포부도 아니고

아주 아주 절박한 상황에서 붙드는 – 소재를 알 수 없는 동아줄인가.

요즘엔 다소 고전적인 단어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책장과 화면 곳곳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하고는 했어.

지금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내 눈에는 별로 띄지를 않네.

그저 내 시야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내가 생각하는 희망은,

믿음 80과 불안 20이 같이 붙어있는

여러 가지 상황에 위축된 사람의 절실한 기도를 닮았어.


그건 마치

커다랗고 찬란한 시리우스 A와

그 주변을 맴도는 왜소한 짝꿍 시리우스 B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로 착시되는 별.


밤하늘에 군림하는 항성이지만

낮은 고도에서 여린 점등처럼 깜박거리는

너희 쌍성을 떠올리게 해서.




시리우스 확대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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