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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Feb 24. 2023

 Viajero- Japan つえたて

시간은 동그랗게 멈춰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 봉우리를 피워대는 매화와 벚꽃, 바닥에 뚝뚝 떨어져 있는 동백꽃들을 보면 이 꽃들이 화사하게 만개해 있을 시간을 떠올려 보게 된다. 꽃을 보지 못하는 2월 여행은 그래서 좀 아쉽고, 한가롭고 쓸쓸하다. 그리고 그 쓸쓸함이 더해지는 곳이 있었다. 굽이굽이 깊은 산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후쿠오카 근처 온천 마을 츠에타테에 도착했다. 개울이 흐르는 산속엔 오래된 건물들과 텅 빈 주차장, 문 닫은 상점들이 인적이 끊긴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외관은 을씨년스럽게 낡아 한숨이 날 정도였지만, 내부는 정갈하고 깨끗했던 오래된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희미한 유황냄새를 풍기는 온천수는 수증기를 뿜어내며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숙소의 다다미방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개울로 흘러내리는 온천수 소리가 마치 장마철 요란한 빗소리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이 숙소를 예약했을 때, 예약금도 받지 않고 취소 환불 규정도 없다는 점이 좀 이상했고 마음에 걸렸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키가 작은 할머니께서 예약한 내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고 불러주었고, 친절하게 방을 내어주고, 온천 욕탕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푹 쉰 다음날 다른 할머니께서 정성스러운 조식을 차려주었고, 짐을 다 챙겨 떠나는 순간에야 그들은 비용을 받았다. 문득, 이 사람들은 우리를 뭘 믿고 이렇게 다 내어주는 것일까. 나쁜 마음이라도 먹고 계산도 하지 않고 가버리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을 보자고 하지도 않고, 신용 카드로 결제하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이 공간을 찾아와 준 손님들을 믿고 끝까지 대접하는 이 오래된 여관의 전통에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숙소에서 저녁을 신청하지 않은 우리에게 저녁은 어디서 먹을 건지 물어봤을 때,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라고 생각했었다. 숙소 바로 옆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것이라고 말하자 식당 영업시간도 알려주던 할머니는 조식을 먹을 때 어제저녁 식사는 어땠냐고 다시 또 물어봐 주었다. 그때 나는, 손맛 가득한 집밥 같은 조식에 감동하며 생각보다 별로였던 어제의 저녁 식사를 떠올렸고, 저녁도 숙소에서 먹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던 중이었다. 식당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어쩌면 그 모든 걸 예상하고 손님들의 저녁 식사를 걱정해서 그렇게 물었던 건 아니었을까, 뒤늦게 생각했다.

 대를 이어 가꾸어 나가는 오래된 여관,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낡고 쓸쓸한 그곳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믿고 기다리고, 집 밖에 나와 오래 배웅하는 그들이, 나는  자꾸 생각난다. 무척 감사했다고, 늘 여름의 빗소리가 들리는 시골 할머니집에서 잘 쉬었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 진다.

 마을 곳곳엔 온천물과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할 수 있는 ‘무시바’가 있었는데 계란과 야채를 넣어 익혀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주 먼 옛날 이곳을 찾아온 누군가도 그곳에 계란을 넣었을 것이다. 뜨거운 온천에 익은 계란을 꺼내 먹으며 웃음을 나누었을 것이다.

 츠에타테의 시간은 그때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는 계란을 넣은 것조차 잊혀졌다. 문득 떠오른다 하더라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꺼내지 못한 계란처럼 내 마음도 그곳에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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