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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Luna May 27. 2022

 Viajero- Uzbekistan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바쁜 일상과 더위에 지쳐 있던 나는, 우연히 한 사진전에서 본 파란 하늘 앞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저런 파란 하늘을, 눈이 시리게 볼 수 있겠구나. 하며 결정한 여행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한 도시에서 되도록 오래 머물며 골목 구석구석을 걷고, 예쁜 가게를 구경하고,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골라 보기도 하고, 나른한 오후엔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한가로운 여행을 즐겨한다. 그런 내가, 처음 만나는 동행들과 낯선 우즈베키스탄에서 2주간의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우선 설렜다. 겨울에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는 추위를 잘 견디는 편이지만, 처음 가는 중앙아시아의 겨울은 얼마나 추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여행 출발 전 며칠 동안 매일 우즈베키스탄의 날씨를 검색하고 상상하며 걱정도 조금 했었다. 하지만 설렘과 걱정을 안고 도착한 그곳에서는, 한국의 겨울과 비슷한 정도의 추위와 바람이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수도 타슈켄트(Tashkent)의 인상은 뭔가 삭막하고 황량하고 어설펐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사람들의 안간힘이 느껴지는 신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현대식 건물 안에서 지나치게 빛나는 새 조명처럼.

 타슈켄트를 떠나 열차를 타고 히바(Khiva)로 가던 밤, 덜컹거리던 열차 침대에 누워 쉽게 잠들지 못한 채 열차 바퀴의 회전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속도에 맞추어 시간 여행에 빠져들었다. 열차 밖으로 황량한 들판이 이어졌고, 가끔씩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천천히 지나갔다. 별만 보이는 까만 밤도 지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았다.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듯한 성곽 도시 히바는 오래된 성을 쓸쓸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옛날 실크로드 유적들이 불쑥불쑥 스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건조해 보이는 건물 돌 벽 위로는 하늘빛을 닮은 동그란 지붕들이 구름처럼 떠 있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타일들이 그 내벽을 덮고 있었다. 민트 색 타일의 은은한 색감에 취해 한참을 바라보고 쓰다듬다 고개를 돌리면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오래된 기억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 오래된 성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풍경도 그곳에 있었다. 내가 만약 다시 우즈베키스탄에 간다면, 히바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낡은 성벽을 따라 매일 산책을 하며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시간을 좀 더 가져보고 싶다. 히바의 타일들이 지금도 가끔씩 그리워지는 걸 보면, ‘나는 혹시 전생에 히바에서 타일을 만들던 사람이었을까. 타일에 채색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걷고 또 걸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함께 했던 동행들은 어느새 친해져 까르르 수다를 떨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하며 각자 먼 산을,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느리고 정해지지 않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부하라(Buxoro)는 감각적인 예술 도시였다. 특유의 정교하면서도 컬러감이 고풍스러운 수공예품에 정신이 팔렸고, 패브릭 자수가 아름다운 물건들이 가득한 가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했다. 아티스트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곳에서 몇 장의 엽서와 그림을 샀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내린 맛있는 커피를 팔던 카페에도 갔다. 아주 먼 옛날 낙타에 물건을 싣고 다니던 상인들이 지나가라고 높은 아치형 벽을 만들어 놓은 아케이드 사이를 우즈베키스탄 문양 자수가 새겨진 에코백을 메고 걸어 다녔다. 밤에는 펍 라비하우스에서 동행들과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들르게 되는 스타벅스가 있는 곳처럼 부하라는 친근했다. 교토의 노포에서 말차를 마시는 것처럼, 파리의 노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처럼, 부하라의 카페에서 호두파이와 함께 진하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사마르칸트(Samarkand)에서는 섬세하고 웅장했던 비비하눔 왕궁, 레기스탄 광장의 황홀한 야경, 한식당에서 모처럼 맛있게 먹었던 삼겹살도 떠오르지만, ‘샤흐진다(Shahi-Zinda)’가 기억에 남는다. ‘샤흐진다’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묘지 구역이다. 즐비한 묘지 사이를 걸으며 비석에 새겨진 이미 세상에 없는 자들의 사진과 초상화에 눈을 마주쳐 보았다. 문득 멈춰 서서 그들이 세상을 살다간 시간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꽃이 피어 있는 무덤도, 잡초가 무성한 무덤도, 누군가 지금 내 곁에 없는 그대를 그리워하며 한참을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며 발걸음을 돌렸을 무덤도 그곳에 모여 있었다. 아름다워서 초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타일이 가득한 기둥과 벽들이 석양에 빛나며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는데, 나도, 이름 모를 누군가도,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게 되겠지. 조금 쓸쓸해졌다.

  안디잔에서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인 딜무릇 씨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국경을 넘어 잠시 들른 키르기스스탄 오쉬의 한 카페에서 동행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는데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한 동행분이 말씀을 꺼내셨다.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두루마리 휴지라도 사와야겠다고 두 분의 동행이 자리를 뜨셨고, 빵을 좀 사 가자는 의견에 동의해 카페에서 케이크를 골라 담았다. 나는 그때 우리 동행들의 사려 깊음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멋진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휴지와 케이크를 들고 다시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의 안디잔에 도착했다. 그날 우리들은 국경을 넘나들었고 많이 걸었기 때문에 사실 조금 피곤하고 지쳤었다. 하지만 딜무릇 씨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런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먼 곳에서 온 이름도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커다란 방에는 우리들이 절대 다 먹을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나게 많은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신선한 과일들과 음료수,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빵과 볶음밥 쁠롭이 상 위에 가득했다. 심지어 우리들을 위해 직접 한국 김치를 만들어 주신 딜무릇 씨의 아름다운 아내분의 마음에 그저 고맙고 미안했다. 딜무릇 씨의 모든 가족들은 우리를 한명 한명 포옹하며 손을 잡고 반겨주셨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렇게 따뜻하게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뭉클해졌다. 모두가 한 가족이 된 것처럼 서로 챙겨주며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함께 웃으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방 안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가까이 사시는 친척들이 하나둘 찾아오신 것이다. 어렸을 적 시골에 잔치가 있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반갑게 오시는 정겨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한동안 그 방에서 시간 여행을 소환했다. 아쉽게 발걸음을 떼야 하는 시간, 딜무릇 씨네 아들 무함바드와 압둘라는 그새 조금 친해져서 내 옆을 맴돌았다. 방을 나와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이 손님들의 신발을 하나하나 챙겨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의 선물을 챙겨오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그곳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꿈같은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다른 계절을 만나면서, 나는 나에게서 신기한 모습을 발견했다. 문득 바라본 민트 색 벽지에서 히바의 성벽에 있던 리본 모양 타일이 떠오르고, 환하게 웃고 인사하며 지나가는 옆집 할머니의 얼굴에서 사마르칸트 숙소 옆 시장에서 레몬을 파시던 아주머니의 미소가 떠올랐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고 있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안디잔의 딜무릇 씨네 아들 무함바드와 압둘라에게 축구공을 하나 사 줄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 이렇게 이 여행의 여운이 유난히 오래가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공정여행이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었지만 꼭,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고자 했던 곳에 갑자기 가기 싫어지면 안 가도 되는 여행. 점심을 먹으러 검색해 놓은 식당을 찾아갔는데 그 식당이 이사를 가버리고 없으면, 투덜대지 않고 웃으며 다른 식당을 찾아 가는 여행. 걷다가 너무 다리가 아프면 무작정 아무 버스나 타고 앉아서 다리를 쉬게 하며 창밖으로 낯선 도시의 풍경을 보던 여행. 박물관을 관람하고자 하는 동행들은 박물관으로, 커피가 마시고 싶은 나는 카페로 갔던 여행. 우리는 그곳에서 로컬 음식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현지 시장에 가고,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대접을 받았었다. 여행이 끝나고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잠시 살아도 봤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함께 했던 동행이 찍어주었던 사진과 영상 때문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메일로 보내주신 몇 백장의 사진들을 보고 나는 감동받았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그의 따뜻한 사진 속에 있었다. 내가 못 본 하늘과 나무와 그림자들. 도시의 낮과 밤. 내가 못 보고 지나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얼굴 가득한 미소와 주름.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표정과 모습. 그의 사진 속에서 나는 그곳을 한번 더 여행할 수 있었고 그 시간들은 오래 계속 내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다. 다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코간트 시장에서 큰 공작새 무늬가 그려진 니트 가디건을 입고 물건을 팔고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그 가디건이 사고 싶어서 시장을 헤매던 시간들이.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했던 동행들이. 그 시간 우리에게 머물었던 겨울 햇살과 기분 좋게 차가웠던 공기들이 지금 내 주변에 와서 맴돌고 있다. 아직 나는 그곳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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