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다!

집떠나면 개고생인걸 이제야 알았구나

by 이서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일단 해보는 것, 그건 상상만으로 나를 설레이게 했다.

하지만 막상 반복되어지던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환경에 놓여진다는 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 급하게 준비를 하고, 공항가는 기차시간을 간신히 맞춰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 순간 나를 데려다준 동생은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에 복잡한 갑정이 들며 나도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 맞다!


집을 떠난다는 건 이렇게 두려운 일이었지.

갑자기 내가 든 22.5kg의 캐리어가 앞으로 지고 가야할 두려움의 무게인 것 같았다.


5년만에 탄 장거리 비행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다.

꼼짝없이 좁은 의자에 앉아 자고 먹고, 게다가 옆자리 아저씨의 비염 코소리까지 들으니 마음이 더 심란했다.

불꺼진 비행기에서 문득 '나 이탈리아에 왜 가고 있지?'란 생각이 들었다. 이 3개월의 시간이 의미없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공항에 내려서 한참을 기다려도 내 캐리어는 나오질 않고, 결국 나와서 집어든 캐리어는 내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내 것과 같은 캐리어를 본적이 없었는데...

다행히 주인분이 성격이 좋으셔서 캐리어 문제는 잘 해결되었고, 이탈리아에 공부를 하러 왔다는 나를 대견하게 봐주셨다.


'그래, 나 여기 잘온거야! 다들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이탈리아를 두번째 왔고 무려 3개월이나 살러 온거잖아! 다 괜찮을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얼른 짐을 끌고 테르미니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러 갔다.

기차에서 들려오는 이탈리아 본톡 억양의 방송을 들으며, 살짝은 설렜다.

'나도 언젠가 저 말들을 알아듣고, 저렇게 말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창밖으론 해가 지고 있었고, 현지에서 유심칩을 살 예정이었기에 인터넷을 전혀 연결이 안되는 상황에 일단 피렌체에 최대한 빨리 도착해야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테르미니역에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무작정 끌고 뛰었다.

들어간 유심 가게에 먼저 온 손님들의 용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럼 예약한 시간보다 40분 더 빨리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겠단 생각에 티켓 오피스로 막 달려갔다.

일부러 변경 가능한 티켓을 끊었기에 열차시간을 바꾸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가 요금 5유로를 더 요구했다. 일단 급하니 5유로를 그 자리에서 지불하고 기차를 향해 달려 급하게 기차를 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짜로 티켓을 바꾸는 것이 아닌 요금의 20%를 내야 시간을 바꾸는 티켓을 구매했었다..)



그런데 아뿔싸...

기차에서 간신히 잡은 와이파이로 확인해보니 유심을 파는 가게들은 저녁 7,8시면 모두 문을 닫는 것을 그제서야 확인했다.

'아.... 그럼 내일 유심을 살 수 있을텐데 엥? 인터넷 없이 숙소를 찾아가야한다고?'

순간 걱정과 짜증이 확 몰려왔다.

원래 예약한 기차를 탔더라면, 저렴하기로 유명한 테르미니역에서 유심칩을 살 수 있었을 것이고, 5유로를 날리지 않았을텐데....


온갖 후회들로 가득찬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일단 40분이라도 피렌체에 도착하는게 더 나을거야."

한국시간으로 새벽 2~3시 였기에 몸은 꼬박 하루종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곤한 상태였다.

설상가상 비행기에서 그렇게 쳐먹어 놓고선 배는 고팠다.


그때 축구를 보던 옆자리 꼬불머리 소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마치 콜미바이유어네임에 나오는 티모시 샬라메 같은 미소년이었다.)

"내가 로마의 유명한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샀는데, 먹을래?"

엥? 뭐지? 갑자기?

배가 고팠던 나는 망설이며 빵을 잡어들었고 우리는 둘 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디저트를 배우기 위해 피렌체로 왔고, 지금은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로마에 문신을 하러 다녀오는 길이며, 디저트에 관심이 많기에 유명한 빵은 다 먹어보려 노력중이라고 했다.


순간 내가 유심칩도 사지 못하고, 5유로를 더 내가면서 이 기차를 탄 이유를 찾게 되었다.

디저트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더 배우고,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그를 통해

"너 이곳에 참 잘 왔어. 너를 환영해."라고 하느님이 그 아이를 보내주신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나라에서 살아보며 그 나라의 말을 배우러 왔다는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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