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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건반검은건반 Mar 08. 2022

반장선거 준비하기

선생님도 반장이 되고 싶었단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실시한 반장선거에서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3학년 4개 반의 모든 반장을 다 휩쓸었다는 소식이었다. 척 반가웠고 기분이 좋아졌다.


2~3주 전인데 벌써 오래 전인 것 같다.

2월,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나는 아이들에게 모두 3학년이 되면 반장선거에 꼭 나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소견발표 준비하는 법도 간단히 알려주었다.


다행복학교에서는 상장도 없애고, 반장도 없애서 학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서열 세워지는 활동들을 없애버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많은 학교에서 반장 대신 봉사할 3-5명 정도의 봉사위원을 뽑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도 반장선거를 하지 않고, 임원이 없으며 학급에서는 일일 반장을 운영한다.

나도 반장선거가 나의 인기 없음을 확인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데 동의하 이러한 변화들에 긍정적다.


하지만 전에 근무하던 학교는 1 반장 2 부반장 체제를 가져가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선거에 나가보라고 한 것이다.

떨어지면 어떤가.

나보다 많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반장이 너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 때 꾸준히 반장 선거에 나갔으나, 반장은 커녕 부반장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창피해지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내가 출전한 반장 선거의 투표 결과는 늘 처참했다. 한 번은 두 표를 받았는데 나 말고 쓴 다른 한 명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서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중학교 때도 반장에 도전했다. 반장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반장이 되어봤자 대학 가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시절, 고등학교 2학년, 공부가 바빠서 반장이 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나는 반장을 할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장이 되어 나는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핫한 이벤트를 생각하느라 바빴다. 수업시간에도  재미있게 참여해서 반 분위기를 끌어간다고 선생님들께도 예쁨을 듬뿍 받았다.

뜬금없이 학부모대표가 된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우리 반은 힘을 모아 선생님의 도움 없이 우리 반만의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늘 해준다.

지지리도 인기 없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래도 얼마나 씩씩하게 굴하지 않고 도전했는지를.

그리고 나는 반장선거의 부정적인 점도 많지만 긍정적인 점도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용기 있게 그 좌절을 8년을 맛보고 9년째에야

단독 후보로 찬반투표를 통해 반장이 되는 데 성공했다.

반장을 1학기ㅡ2학기 나눠 뽑았으니 족히 10번은 떨어졌을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좌절은 도전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용기 있는 좌절이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단단해졌다.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것도 선생님은 공부가 되었다고, 도전해 볼 것을 권할 수 있었다.



우리 두 딸들도 꾸준히 반장선거에 나갔다. 아이들이 너무 소심하고 친구도 잘 못 사귀어서 성격을 바꾸어주고 싶었다.

나는 속 보이는 열혈엄마가 되어 반장선거를 함께 준비해주었다.

반장선거는 인기도 중요하지만 소견발표가 중요하다.

내 딸들도 소견발표 준비를 열심히 했다.

첫째는 성공률이 반 정도인데 둘째는 나가기만 하면 당선이 되었다. 소견발표는 늘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서 함께 준비했다.


"춤추기"

첫째는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해서 춤을 추고 소견발표를 시작하게 했다.

6학년 때는 방탄의 '불타오르네'를 추고, 불타는 학급을 만들겠다고 해서 당선이 되었다. 올해는 헤이 마마 춤을 웃기게 쳐야겠다며 준비하고 있다.

학급 담임으로서 20년 가까이 선거를 보아왔지만,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승률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삼행시"

둘째는 첫째와는 다르게 반장선거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고, 실패를 겁나 했다. 춤을 권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내 보낼 때 두표 받고도 씩씩했던? 엄마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같이 준비해보자고 꼬드기다가 나중에는 선거에만 나가면, ○○사줄게 라며 협상을 했다. 떨어지는 게 무섭다던 둘째는 삼행시를 멋지게 외치고 몰표를 받았다.

보통 삼행시는 본인의 이름, ♡♡초, ○○반도 많이 하는데 나는 스케치북에 앞쪽에 그림을 그리고 뒷면에 대사를 적어 넘기며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었다. 그래서 떨려서 외우지 못해도 괜찮았다.

부ㅡ부산에서 제일가는 부설초에서 드디어 3학년이 되었습니다
설ㅡ설탕처럼 달콤한 순간들이 가득할 3학년 2반에 여러분을
초ㅡ초대하고 싶습니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십시오. 설탕같이 여러분의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것도 삼행시와 비슷하다. 스케치북 앞면에는 봄을 간단히 그리고 뒷면에는 대사를 적어 넘기면서 발표했다.

봄ㅡ파릇파릇 새싹이 나오는 봄처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반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여름ㅡ타오르는 태양처럼 열정 가득한 마음 담아 땀 흘리며 뛰겠습니다.
가을ㅡ시원해지는 날씨 속에서 우리 반 친구들과의 추억을 소중히 쌓아나가겠습니다.
겨울ㅡ하얗게 세상을 뒤덮는 눈처럼 행복한 우리 반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신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태권도, 노래 부르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도 좋다. 이번에 우리 둘째는 신호등 노래를 부르며 신호등과 관련된 소견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반장선거를 나가는 데는 떨어질 용기가 필요하다.

떨어져도 상처받지 않겠다는 나만의 약속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해 보이는 우리 선생님도 반장선거에서 늘 떨어졌다는 것에 힘을 냈다.

그렇게 말해주고 떨어질 각오를 하고 나간 우리 첫째도 반장에 떨어지면 화장실에 가서 혼자 엉엉 울었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 딸, 중3인 지금도 반에 강력한 반장 후보가 있다며 본인은 떨어질 것 같다면서도 또 반장 신청서에 사인해달라고 가져왔다.

작년 우리 반♡
그리운 2-3반 친구들아!
선생님이 그랬지?
떨어져도 도전하는 사람이 멋진 거라고,

4명이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지만
울 나머지 애기들
얼마나 많이 떨어지고 울었을까, 하는
생각이 선생님은 먼저 들었어.
하지만, 잘 이겨냈을 것 같아
각오하고 나간 너희들이 멋진 거다.
원래 세상 일은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진 않아.
우리는 그걸 공부한 거고!
잘 이겨낸 우리 2-3반 친구들
선생님이
인생 점수 100점 준다!
너무 애썼어♡
기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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