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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Aug 16. 2021

보이면, 비로소 움직이는 것들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 8월도 중순

사회생활을 엉망으로 하지만, 나보다 잘 나가고 있는 시간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고, 나는 멈추고 뛰어다니는 그의 뒷모습만 보고 있다. 쉬지 않고 걷고 뛰는 그의 꾸준함. 누구를 탓하랴. 그렇지 못한 내 탓이다. 


8월도 중순이니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코로나 핑계를 계속 대고는 있지만 나는 적응모드로 쉬프트 하고 있지 못하다. 


"여보세요, 문제가 무엇일까요?"라고 말을 걸어보는 것도 멈추기로 했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 대신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것은 내 나라 아닌 곳에서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고 배려했던 작은 손짓이었고, 이 순간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 Figure Drawing,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것

내가 쉬지 않고 이어가던 취미생활이 있었다면, 그림을 잘 그리는 누군가의 작업을 한 걸음 앞에서 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드로잉 라이브를 보고 감탄하면서 내 자리로 돌아오면 허접한 나의 그림을 마주한다. 선생님과 내 친구 아티스트들이 쉽게만 그렸던 그 라인과 붓 터치는 내 손으로는 이룰 수 없는 짝사랑과 같았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내 눈으로 봐도 아름답지 못했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특히 회사 일들을 잠시만 셧다운 시키고 싶을 때, 속도를 멈추고 생각 속으로 빠지고 싶을 때, 왠지 오른쪽과 왼쪽 어깨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자동차 트렁크에 늘 준비되어 있는 커다란 스케치북과 보드를 들고 익숙한 아틀리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모델이 30초, 1분마다 바뀌는 포즈에 따라서 팔을 쭉쭉 뻗어서 선과 면을 만들다보면 배경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렇게 많은 그림 수업을 듣고도 내가 그려내는 그림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자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지만, 뭐 사람마다 타고난 탤런트는 다르니까. 나는 잘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스튜디오 원장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가지고 온 쿠키를 나누어 먹으며 다른 이들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고 수다를 떨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한참의 거리를 두고 보니 내가 행복해했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A Parisian pied-à-terre curated by Hubert de Givenchy              



| 이미지가 보여야 움직이는 사람들

나는 이미지를 늘 불러낸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간에도 사진이나 영상이 앞에서 돌아가고, 일을 할 때도 눈앞에 그려지는 그림이 없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특히 기획을 하거나, 장기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될 때, 보이는 레이아웃이 없으면 너. 무. 어려웠다. 이럴 때, 글자 그대도 '시키는 대로 일단 뛰어'라는 보스를 만나게 되면 그날부터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는 일들을 향해서는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내게 얼마 전부터 반갑지 않은 일들을 일어나고 있다. 이미지들이 내게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도 눈앞에 나타나던 이미지들이 점점 사라지고, 머리 한쪽엔 텅 빈 공간이 생기는 듯하다. 외톨이가 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상으로, 경고음이 들리는 듯하다.


| 집 나간 나의 이미지들을 찾기 위해

친구 A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도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며 긴 통화를 했다. 그때 무어인가  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꼬리를 보이며 앞서 달리고 있는 기억을 쫓아갔다. 몇 년 전, 언젠가 시간이 나면 함께 해 보자고 신나게 써서 A에게 보냈던 이메일.


[ 드로잉 잉글리시 ]

한국에서 영어 교제를 만드는 것에 참여하고, 브랜드 광고용 보이스 액터로 일을 했던 A. 

그녀가 그림을 설명하면, 영어로 듣고, 상상해서 그림을 그려본다. 답은 원본 그림이다. 하지만 참고로 했던 그림과 똑같이 그려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영어로 설명된 부분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이 영어로 된 문제라고 한다면, 객관식도 주관식도 아니지만 내용을 이해했는지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영어 듣기 연습을 '공부'라는 것과는 별개로, 늦잠 자고 있는 상상력도 깨우고,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려보는 것. 내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이다.


[ 브런치에서 약속하기 ]

브런치에서 매일 글을 올리시는 작가님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 것. 나는 글을 하나 포스팅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 워드의 새 문서를 열고, 깜빡이는 커서를 한없이 쳐다보면서 타이핑을 하다가 Delete 버튼을 빠른 속도로 누르기를 반복하는 긴 시간을 지나야 겨우 마무리를 한다. 핸드폰으로 후다닥 글을 올리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내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림도 글도 하느님께서는 내게 선물로 주시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글감을 찾아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만약, 잠자고 있던 나의 오래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다면? 

드로잉 잉글리시라는 주제가 있다면 적어도 내게 글감은 정해져 있다. '나도 챌린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이 공간에서 하다 말아도 창피할 건 없지만 그래도 그만두면 한동안 얼굴을 못 들 것 같다. 특히 자주 댓글로 소통하는 작가님들께. 내게 브런치 그런 공간이 되었다.


일단, 9개를 올려 보기로 한다.

첫날은 동영상만, 다음 날은 참고했던 그림과 영문 스크립트를 공개하는 식으로 이틀을 1세트로, 총 9세트. 20일이 되지 않는 매일의 짧은 글쓰기가 '나도 챌린지'.


Crouching Male Figure Holding Staff  by John Vanderlyn


| 저와 함께 그림을 그려보아요.

저처럼 보여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분들,

새로운 뇌 근육을 운동시키고 싶으신 분들,

영어 듣기를 그림으로 받아쓰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영어 좀 한다는 초등학교 친구들도 웰켐!

영어 말고, 9개의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분들,

음악 대신 2분이 안 되는 목소리가 좋은 내 친구 A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분.

함께 그림을 그려 봅시다! 


다이어트와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뤄야 하지만, '이것'은 오늘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드로잉 잉글리시, 오늘이 그와 나의 1일 :)






A Parisian pied-à-terre curated by Hubert de Givenchy : LINK

Crouching Male Figure Holding Staff  by John Vanderlyn :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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