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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Ciel Sep 24. 2021

모르는 만큼 알게 되는 것들

[ 그림 받아쓰기 10 ] 보기

| 그날


그림 읽기 매거진을 쓰면서 되도록이면 피해야 되는 것이 있다면 알지 못하는 화가나 그림을 선택하는 것이다. 글을 잘 풀어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대상까지 알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는 비가 오고 있는데 우산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이 그림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날' 보았던 뉴스 기사들과 동영상들 때문이었다. '그날'은 최초의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우주관광을 위한 인스피렌이션4를 하늘로 쏘는 날이었다.


브런치 공간에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무엇인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도전!' 하면서 외치고 싶었다. 모르는 그림을 선택해서 글을 쓰면서 주제를 풀어가는 과정은 알고 있는 정보를 재구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색으로의 시간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착각했다. 게다가 지난 얼마간은 매일, 어떻게 해서든 그림과 연결되는 소재를 찾고 글을 썼으니 당연히 생겨났을 법한 (미확인) 글근육을 믿고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발견하지 못했다. 근육은 사라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검은 사제들


스페이스X에서 쏘아 올린 우주선은 그들이 계획했던 지난 토요일 무사히 귀환했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소재와 생각의 무중력 상태에 있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을 때 거짓말처럼 눈앞으로 지나가던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갑자기 '검은 사제들'.


지난주에 봤던 것만 같은 2015년에 태어난 강동원표 사제복은 런웨이를 걷는 모델 룩같이 보였고, 소녀(박소담)와 구마 사제(김윤석) 역할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배우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소름~' 하면서 얼음이 되었던 순간은 장재현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한 카페의 이층에 앉아서 차를 마시다 우연히 보게 된 어두운 골목에 혼자 서 있는 신부님의 모습. 감독은 그때 보았던 그 이미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뭐야? 새로운 거야? 뮤즈가 영감을 주시고, 글쓰기가 힘이 들 때면 그분이 귀에 대고 속삭여 주는 내용을 받아 쓰기만 해도 되는 창의적인 작가님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재능을 가지지 못한 내게는, 만져보지도 못한 클래식 기타를 삼일 만에 마스터해서 알함브라의 궁전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아이고 창피해라 하고 끝낼 수 없도록 점수도 받게 된다는 심적인 부담감까지 포함이 되어 있는 그런 시추에이션이다.


열 번째 그림 읽기를 위해 참고했던 이미지를 다시 보았다. 긴 호흡을 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살펴보자. 그림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둘러보자. 그렇게 접근을 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었다. 방향은 잡았으니 마음 바뀌기 전에 서둘러 그림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 작가

 Master of the Female Half-Lengths 

| 그림

 Three Musicians ...Flanders (now Belgium), circa 1530



화가의 '이름'이 없다. 그것이 다른 이들로부터 '나'를 콕 집어서 부르는 호칭으로 접근한다면 그(들)는 'Master of the Female Half-Lengths'이다. 첫 만남에 그(들) 이름을 듣게 된다면, 다른 건 몰라도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직업 정도는 추측이 가능하겠다. 좋은 것들도 많을 텐데 왜 그토록 구체적이고 업무적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료들을 읽어나가 보니 그나마 그 이름은 그가 (또는 그들이) 활동했던 16세기 초가 아닌 19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그림들을 분류하는데 편리하도록, 정리하는데도 쉽도록 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지어 준 것이 아닐까 한다. 학자들이 그림들을 그렸을 법한 화가들 몇명을 거론하고 있지만 추측일 뿐이다. 화가(들)의 이름은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


(들)의 그림은 여성들이 책을 읽는다던가, 오늘의 그림처럼 악기를 다루거나 악보를 보고 있다던가 하는 장르의 것들, 종교나 신화에 나오는 스토리를 표현한 그림들, 그리고 풍경화가 있다. 등장하는 여인들은 대부분 거의 비슷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서는, 모델이 한 명이었다던가 아니면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참한' 여인상이 아니었을까. 나도 추측해 본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다. 배웠던 것에 눈에 제일 먼저 갈 수 밖엔 없다. 장신구. 플랫 베이스에 베즐(Bazel) 세팅으로 당시에 유행했던 스톤들이 돌아가며 세팅되어 있고, 펜던트가 달려 있다. 펜던트를 몇 개씩 레이어링 하기도 했던 시대였지만 그림 속의 그녀는 하나만 착용하고 있다. 집 안에서 합주 연습을 하는 것이니 홈웨어(!)로 꾸안꾸, 하지만 '나 이 정도 목걸이는 편안히 착용할 수 있는 집안 여인이에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상상을 해 본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깊게 파인 스퀘어 목 라인과 가슴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던 얇은 직물과 반대로 겉옷의 무게감을 정확히 느낄 수 있도록 붓으로 그려 낸 작가의 표현감을 보고 있으니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보면 볼수록, 적색, 녹색, 브라운 계열의 옷감들 사이로 포인트가 되고 있는 반복되는 색상들의 조화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중심에 있는 스톤은 아마도 루비일 경우의 수가 크다. 그때 즈음이면, 진주가 달린 장신구들이 유행했을 텐데, 작가가 표현한 의상과 어울리기 위해서 유색석들만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착장을 도운 코디의 센스였을까? 당일 화가가 의도적으로 바꿨을지도 모른다.


뒤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는 장신구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머리장식과 비즈로 엮어 놓은 긴 목걸이가 그려져 있다. 확실한 목걸이와 함께 머리 장식까지 돌아가며 보석이 세팅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주인공은 센터에 있는 분이다. (#나야 나!)  열심히 다시 보았더니, 머리 장식에 사용된 보석들 중에서 흰색에 가까운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반짝하고 준 스톤이 두 개가 보인다. 진주 일 수도 있겠다.


그림에서 보이는 악기들로 추측되는 16세기의 악기 (좌 : 테너 리코더, 우 : 루트)


그 당시의 악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찾아보니, 비슷해 보이는 악기 두 개를 발견했다. Lute라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다. 시대에 따라 6줄 8줄 10줄까지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음악도 들어보자. 그 시대의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들어 봤던 루트의 울림.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고 그림을 보았더니, 그녀들의 연습실에 초대되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다. 나도 저런 의상을 입고, 이니셜을 한 금속 펜던트와 함께 작은 진주들을 길게 연결한 단순한 비즈 목걸이와 착장한 의상색에 어울릴 에너멜 장식에 진주가 움직이도록 세팅된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앉아 있도록 하겠다. 허리를 꽉 죄는 의상을 입기 위해선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도 내려놓고 숨쉬기도 조절해야 될 것 같다. 힘들긴 해도 실루엣이 제대로 나오려면 참을 수 밖엔 없다. 



잘 알지 못하는 그림을 만나고, 전문적인 설명을 듣지 않고도 그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궁금한 것은 구글링 하면서 몰라던 부분을 찾아보고, 배웠던 것들, 내가 알고 있었던 작은 지식들을 꺼내어 나만의 그림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들이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모르는 그림과의 만남. 그냥 지나쳐버리도 그만이지만, 눈빛 스치는 인연으로 하나씩 알아가 보는 시간은 소중한 기록과 기억이 될 것이다.


" 안녕하세요. 저는 Catherine이라고 해요. 당신은? "

"아... 제 이름은 Master of the Female Half-Lengths라고 합니다... "

" 오늘, 제가 선생님 덕분에 몰랐던 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감사해요. :) "




그림을 그려보신 분 계신가요? 

열 번째 듣기를 올린 다음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보기'편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잊었던 그 내용을 다시 듣기 해 보세요. 아! 오늘은 Lute로 연주되는 음악도 들어보시면서 굿 나잇 하셨으면 합니다. :)



Here we come upon an interior setting.
Three young women of Flanders playing music. 

From left to right, ladies 1 and 3 are standing while lady 2 sits between them.
Lady 1 is looking down at the music sheets in front of her.
Lady 2 is playing a long wooden flute and looking down at the music books on the table in front of her. And lady 3 is strumming a lute. Her eyes are gazing off into the distance. 

Now, let’s take a look at their appearance.
Each lady is wearing a hood, separate from her dress.
The hood rests smoothly over their hair which is pulled back over their ears.
Each lady is wearing a velvet gown having a square cut bodice or a décolletage.
This has the effect of broad shoulder lines that extends onto the flowing sleeves.
These sleeves are remarkable in that the bottom seam of the velvet fabric is left 
open...except at one small point where it is joined. ( joined = tacked )
When the arm bends, as in the case we see here by the seated lady playing her flute, the inner folds of a white chemise (chemise =undergarment ) spill out like pleats from the rich velvet. 

And finally, each woman is wearing a different kind of necklace! 






Music in the Renaissanc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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