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폭발 한국프로야구에서 찾아보는 ‘생각의 틈’
한국프로야구는 시범경기가 한창입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과 시즌을 운영하는 사무국은 3월 22일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를 통해 막바지 점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범경기임에도 구름처럼 많은 관중이 몰리고 있어, 올해는 작년의 흥행 기록을 무난히 경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4년 한국프로야구는 여러모로 대단했습니다. 연간 관중이 1,000만 명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천만 관중 돌파에 이어, 올해는 더 큰 인기를 얻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4년에 관중이 23.7% 증가하는 대성공을 이룬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2030 MZ 여성팬들의 급증과 팬 친화적인 정책을 꼽고 있습니다.
정말 이게 전부일까요? 저는 리그를 운영하는 (사)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의 관점에서 2024년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프로야구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바라보고, 이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인 KBO가 어떻게 성장을 이끌어냈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상황이 보입니다.
KBO는 2024년 리그가 시작하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습니다. 2023년에는 관중이 크게 늘어나며 코로나 팬데믹의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40년이 넘는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800만 관중을 넘긴 후,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KBO는 과감한 조치를 취합니다. 구단 수를 늘리거나 인프라를 개선하는 대신, 야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판정 방식을 전 세계 최초로 바꿔버렸습니다. 바로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라고 불리는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의 전격적인 도입입니다.
작년 초 ABS 전면 도입 발표 당시를 기억합니다. 야구계는 찬반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특히 한국프로야구보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NPB)도 아직 논의 중인 제도를 우리가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맞느냐는 비관론이 컸습니다.
하지만 ABS 도입을 적극 찬성하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핵심 근거는 '14.4'라는 수치였습니다. 2023년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경기당 볼판정 오심이 평균 14.4개였던 것입니다. 야구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야구도 '흐름의 스포츠'입니다. 잘못된 볼판정 하나가 전체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뒤바꿔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팬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야구에서는 볼판정 오심이 나올 때마다 격렬한 논쟁과 시비가 일었습니다. 이는 경기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선수의 실력까지 의심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스포츠 중계 기술의 발달로 TV로 시청하는 야구팬들은 화면에 보이는 볼의 위치와 실제 판정이 다를 때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불신만 커져갔습니다.
ABS는 도입 후 1년 동안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볼판정 정확도는 99.9%로 전년 대비 9.4% 상승해, 오심이 거의 사라지는 획기적인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다만 ABS 도입이 평균 경기 시간 단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1경기당 평균 시간은 오히려 전년보다 1분 늘어난 3시간 13분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KBO의 고객인 야구팬들에게 판정의 신뢰성을 높여준 결과, 총 관중은 전년 대비 23.7% 증가한 10,887,705명으로,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ABS가 팬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야구의 본고장 미국과 메이저리그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2026년부터 ABS를 도입할 예정인 메이저리그는 KBO와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일종의 챌린지 방식으로, 볼 판정에 이의가 있을 때만 ABS로 확인하는 방식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이는 선수노조의 강경한 반대 속에서 이뤄낸 타협안입니다. 의외로 심판노조는 예전부터 ABS 도입을 적극 찬성했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세계 야구의 역사에서 규정이나 시스템은 늘 메이저리그가 먼저 시도하고 KBO가 이를 따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KBO가 먼저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논란이 있는 기술인 ABS를 과감히 도입해 프로야구 생태계에 혁신을 일으킨 것입니다.
1년간의 운영을 통해 ABS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완벽한 판정을 위한 필수 기술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처럼 신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가 프로야구 생태계, 나아가 산업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는 고객인 야구팬들이 느끼는 불공정성 문제를 해결하면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이 따른다는 원칙을 입증한 사례입니다. KBO는 이제 다음 과제로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선수들의 시간 지연을 방지하는 '피치 클락' 제도를 올해부터 도입할 예정입니다.
평생 야구팬인 저로서는 이 모든 변화가 반갑고도 낯섭니다. 보수적인 스포츠로 여겨지던 야구가 첨단 기술과 만나 더 재미있어지고, 팬층까지 넓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매 공마다 일희일비하는 제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단순한 공놀이'라 불리는 야구는 제게 늘 인생의 희열을 선사하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왜냐고요? 봄이 시작되는 3월 22일은 제게 2025년이라는 진정한 새해가 시작되는 첫 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