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빈이 발견한 인재 발굴과 운용의 ‘틈’
야구 시즌이 한창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메이저리그 개막과 함께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성황리에 리그가 진행중입니다. 특히 올해부터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는 오랜 역사의 야구팀 하나가 연고지를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1901년 창단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애슬레틱스는 올해부터 연고지 오클랜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2028년부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야구단을 운영할 예정이며, 그 전까지 3년간은 새크라멘토에서 임시로 운영됩니다. 이에 따라 애슬레틱스의 임시 홈구장은 수용 인원 1만 명 남짓의 메이저리그 최소 규모 구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애슬레틱스는 한때 '머니볼(Moneyball)'의 열풍과 함께 전 세계가 주목하는 프로스포츠 구단이었습니다. 현재는 구단 고문으로 재직 중인 '빌리 빈 Billy Beane'은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프로스포츠팀 단장이었습니다.
유망한 기대주였으나 6년 동안 단 148경기만 뛰고 은퇴한 실패한 메이저리거 빌리 빈. 그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이끌며 스타 선수나 감독보다 단장이 더 유명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18년에 걸친 그의 업적은 한 마디로 '머니볼 Moneyball' 전략입니다.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 전략은 제한된 예산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는 프로구단의 사례를 넘어서 현대 비즈니스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가 실천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저평가된 자원 발굴이라는 핵심 원칙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경영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머니볼의 가장 큰 장점은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선수 발굴과 운영입니다. 빌리 빈은 선수 평가에서 기존의 스카우팅 방식을 벗어나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라는 이전과는 젼혀다른 관점의 새로운 통계적 접근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타율(AVG)과 같은 전통적 지표 대신 출루율(OBP), 장타율(SLG) 같은 세부 통계를 중시했으며, 이를 통해 선수들의 능력을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가하여 팀을 구성했습니다.
머니볼의 핵심 개념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재능 있는 선수에게 투자하자’는 것입니다.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스타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기 보다는 남들이 모르거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재능을 가진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빌리 빈의 머니볼 전략은 구단의 빈약한 재정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열악한 재정 상태와 연고지에서조차 인기가 없던 구단을 맡은 그는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애슬레틱스는 같은 지구의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와 라이벌이 되어 6번의 지구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머니볼' 전략은 제한된 자원을 가진 스타트업에 특히 유용합니다. 대기업처럼 '오타니 쇼헤이' 같은 최고의 인재를 거액을 들여 영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스타트업은 데이터와 전략을 통해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머니볼' 전략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3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놀라운 생산성과 효과를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애슬레틱스가 결국 연고지 오클랜드를 포기하고 라스베이거스로 이전하게 된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야구 관습을 따르지 않고, 데이터를 중심으로 선수 영입과 전략을 수립한 빌리 빈의 접근법은 창의적 문제 해결의 본보기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빌리 빈 자신도 선수 스카우팅에 있어 숱한 실패를 기록했고, 그를 흠모하며 그의 전략을 따라하던 수많은 단장들도 대부분 실패로 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빌리 빈 단장 시절의 뛰어난 선수 발굴과 그들의 성공은 애슬레틱스라는 전통 구단이 오랫동안 쌓아온 스카우팅 시스템의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는 인재 발굴의 역사가 가장 긴 구단에서 기존 시스템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애슬레틱스는 104년의 긴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빅마켓 구단으로 운영된 적이 없습니다. 이는 투자를 수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단 소유주는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제한된 자원으로 효율을 극대화해야 하는 단장의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빌리 빈의 뛰어난 선구안으로 발굴하고 키웠던 스타 야구 선수들은 전성기 시기에 대부분 애슬레틱스를 떠나 많은 연봉을 지불할 수 있는 빅 마켓 구단으로 트레이드나 이적을 결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애슬레틱스 구단은 수익을 남길 수 있었지만 반대로 꾸준한 성적은 담보할 수 없었죠.
빌리 빈 단장은 그의 18년 재직 기간 동안 애슬레틱스를 6차례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뉴욕 양키스와, 이에 맞서는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강팀들과 맞서 싸운 저예산 비인기 구단의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애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월드시리즈 우승’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단 한번의 월드시리즈 진출도 하지 못하는 좌절까지 겪게 되죠. 우수한 성적으로 11번이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단 한번만 승리하고 모두 탈락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준수한 성적은 거둘 수 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머니볼’ 전략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반증합니다.
머니볼은 기존의 관습과 직관에 의존하던 방식을 버리고,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관점을 달리한 새로운 사고방식인 ‘머니볼’은 비즈니스에서도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시장을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데이터에 의존하는 상황이 급증하고 있는 현대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정량적인 지표로만 판단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인 데이터들이 존재한다는 걸 ‘머니볼’의 실패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의 원천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적인 요소’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를 뒤져 영화 <머니볼 Moneyball>을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중년이지만 여전히 멋진 브래드 피트와 그가 연기하는 역사상 최고의 단장 ‘빌리 빈’의 전략을 가벼운 마음으로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은퇴 직전의 퇴물 포수에서 빌리 빈에게 발굴되어 20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치는 스캇 헤티버그를 연기하는 ‘크리스 프랫’의 무명 시절 연기도 재미를 안겨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