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상상이 열어주는 생각의 틈
“코치님, 저 지금 당장 투자자들 설득도 해야 하고, 다음 주까지 제품 업데이트도 해야 하고… 그런데 개발자는 뽑히지 않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몇 해 전, 기업 진단을 위해 만났던 한 스타트업 대표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습니다.
어디선가 문제가 터지면 그 즉시 허겁지겁 반응하는, 말 그대로 ‘자극 → 반응’의 패턴에 대표는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장기 전략은커녕 제품에 대한 혁신적인 발상을 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팀원들은 이를 타개할 전략이 불투명하다고 불안해했고, 대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매일같이 터지는 작은 불씨를 끄느라 큰 그림을 그릴 기회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이미 벌어진 문제보다 ‘한정된 사고’입니다.
“예산과 인력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말도 안 되는 가정’을 던져보는 방법, 제가 스스로 부르길 ‘정량 쇼크(quantitative shock)’라는 방법을 적용해 보았습니다.
1. 예산 0원 가정
대표가 가장 고민하던 지점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월 5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기본적인 온라인 광고는 돌릴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예산조차 없다고 가정해보면 어때요?”
대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조금씩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SNS, 공동 프로모션, 네트워크 및 기투자사 활용 등, ‘예산 0원’이라는 극단적 전제 덕분에 유료 광고 대신,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자원과 네트워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 시간 3일 가정
그는 제품 출시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습니다.
“한두 달은 있어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요”라는 말에, 저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3일 안에 MVP(시제품)를 내놓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극단적으로 시간을 압축하는 것 역시 창업가의 사고에 틈을 만들어 줍니다. 몇 달이 걸릴 일을 단 며칠 안에 하려면 기존 접근 방식을 통째로 바꿔야 하니까요.
대표와 함께 문제를 쪼개 본 결과, 전체 기능 중 핵심 20%만 구현하면 사용자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결국 사흘 만에 베타 버전을 완성해 소규모 커뮤니티에 테스트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고객 반응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었고 ‘굳이 개발하지 않아도 될 기능’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시간을 극단적으로 압축하니, 문서 작업이나 회의 등 소모적인 리소스도 과감히 제거해 볼 수 있었고요.
3. 1인 담당 가정
“지금 당장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더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대표님에게 저는 거꾸로 물었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대표님 전부 혼자 해야 한다면요?”
“다른 건 몰라도 개발자는 있어야 한다”는 반응이 먼저 나왔지만, 이내 자동화나 비핵심 업무를 제거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노코드(No-code) 툴이나 AI 디자인 템플릿을 적극 활용하는 것부터 문서 업무 자동화, 반복 업무 간소화 등을 통해 추가 인력 없이도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산을 없애고 시간을 압축하고 인력을 제거하는 것, 모두 상상 속에서의 가정일 뿐이었지만 실제로의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반대의 방향, 증폭의 정량 쇼크를 살펴볼까요.
4. 10배 목표 가정 (Moonshot Thinking)
대표가 처음 제시한 목표는 “매출 20% 증가”였고, 저는 “아예 10배를 가정해보면 어때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역시 허무맹랑한 상상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국내 시장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으로 이어졌죠.
“10배 성장”이라는 터무니없는 목표 덕분에 기존 채널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서비스의 주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허를 내 둔 꽤 괜찮은 기술이 하나 있었습니다만 이 기술을 대기업과 제휴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플랫폼, 해외 크라우드펀딩, 다국어 서비스 등 새로운 시도가 빠르게 의제로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기존 목표를 몇 배로 뛰어넘는 상상을 해 보는 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사고의 프레임을 완전히 전환하는 도전입니다.
이렇게 숫자를 증폭해 보는 사고법을 가리켜 문샷 씽킹(Moonshot Thinking)이라고도 합니다.
NASA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던 '문샷(Moonshot)'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이 개념은, “10% 향상”이 아닌 “10배 도약”을 상상하는 사고법입니다. 구글의 혁신 조직 X(前 Google X)에서도 핵심 철학으로 채택되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핵심은 현재 자원이나 조건의 제약보다, 가능성과 잠재력에 먼저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존 방식의 연장선에서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완전히 다른 판을 짜면?”이라는 질문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고, 과감한 전략을 가능하게 합니다.
5. 실패율 90% 전제
창업가 뿐 아니라 일하는 우리 모두가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소리가 있습니다.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죠?”라는 불안입니다.
그럴 때 저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제안합니다. “실패율이 90%라고 전제해볼까요?”
10배 목표 가정이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부정회로’를 돌리는 것에 가까운 것이겠죠. 가능성과 잠재력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90%가 실패한다고 가정하면, 실패 시 감당 가능한 손실과 철수 기준을 명확히 설정할 수 있습니다. 위험을 분산하고, 작은 단위의 파일럿 실험을 설계하는 등, 실패를 가정한 실행의 유익 역시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대표는 “어차피 10번 중 9번은 실패한다면, 빨리 실패하고 빨리 배우자”는 태도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커리어 코칭 때 만나는 구직자들에게 ‘당신에게 50번의 서류 탈락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빠르게 지워나갈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자극에 반응하느라 바쁘기만 했던 대표는 ‘정량 쇼크’를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가 성공하진 않았지만, 한 번 틈이 열린 사고는 더 이상 “이건 무조건 안 돼요”라는 말을 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피터 틸이 말하듯, “10년 계획을 6개월로 압축하라”는 도발적인 사고는 오히려 혁신의 문을 엽니다.
예산, 인력, 시간, 목표 등 모든 자원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왜곡시켜 보는 ‘정량 쇼크’는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예산 0원은 자원과 네트워크를 재발견하게 만들고,
시간 3일은 문제의 핵심에만 집중하게 하며,
1인 담당은 자동화와 단순화를 촉진하고,
10배 목표는 시장과 기회를 재정의하게 하고,
실패율 90%는 두려움을 실행력으로 바꿉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에서, 어떻게 기존의 방식과 사고를 혁파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창조적 파괴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지금 한정된 사고에 갇혀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정량 쇼크’를 던져보세요.
팁을 하나 드리자면 제 글을 GPT에게 학습시킨 후에 나에게 정량 쇼크의 질문을 던져줘, 라고 하는 것도 코치 한 명을 들이는 방법입니다. :)
극단적으로 제거하고 곱하는 바로 그 상상 너머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예산이 단 1원도 없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하려는 일을 3일 안에 끝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가 이 일을 혼자 해야만 한다면, 어떤 도구나 자동화가 필요할까?
지금 목표보다 10배 더 큰 결과를 원한다면, 어디부터 관점을 바꿔야 할까?
이 프로젝트가 90% 실패할 확률이 있다면, 나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철수 시점은 언제인가?
이 일을 지금까지 전혀 다른 업계 사람이 맡는다면, 어떤 방법을 쓸까?
모든 기존 방식을 다 금지당했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