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커버’가 발견한 새로운 개념의 피봇 전략
스타트업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뷰티 테크를 내세워 새로운 개념의 비즈니스 모델을 증명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그 주인공은 2016년 안선희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 ‘릴리커버 Lillycover’. 전자회사 연구원과 대학병원 임상지원팀장을 거친 안선희 대표는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고객들의 피부 고민을 해결해보고자 창업을 결심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18년 피부 진단기 ‘뮬리’를 개발하고 화장품 생산 로봇인 ‘에니마 enima’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영화 이상의 스토리였다. 안선희 대표에게 직접 ‘릴리커버’가 가지고 있는 피봇을 통한 성장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 Q : 전자회사 연구원, 대학병원 임상지원팀장 같은 연구 분야 경력에서 뷰티테크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하였는데 어떤 계기로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안선희 대표 : 대학병원 임상지원팀장으로 근무하면서 11년간 화상치료 환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은 화상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버렸죠. 피부가 건강하지 못해 자신감이 부족해지고 이는 결국 환자의 상태까지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개인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획일화시키는 화장품 업계의 관행이 문제였어요. 그래서 고객 개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맞춤형 관리를 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냈어요.
▶ Q : 2016년에 창업한 이후 2년여의 기간을 거쳐 피부진단기기 ‘뮬리’가 출시되었는데 첫 창업 아이템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 안선희 대표 : 2년 동안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과 자원을 총동원해서 피부 분석기인 ‘뮬리’를 만들어냈어요. ‘뮬리’를 사용하면 몇 초면 분석 결과가 나와요. 인종, 나이와 성별로 전 세계에서 다양하게 수집한 11만 건 이상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를 AI가 분석해 40여 가지의 피부 유형을 찾아냅니다.
‘뮬리’로 국내외 전시회 등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피부 분석기만 가지고는 고객의 피부를 맞춤형으로 관리할 수 없었어요. 고객들이 자신의 피부 상태를 알아도 거기에 맞는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죠. 그래서 화장품 개발로 ‘피봇’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 Q : 피부 진단기 하드웨어를 만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가까운 릴리커버가 화장품까지 제조하려면 수 많은 난관을 거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 안선희 대표 : 분석을 통한 고객의 피부를 맞춤형으로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화장품을 초기에는 직접 만드려고 하지 않았어요. 직접 제조하려면 대규모의 자본과 설비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탁 생산(OEM)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죠.
하지만 릴리커버가 원하는 최소 생산 수량(MOQ)과 화장품 제조사가 요구하는 수량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어요. 수 십 군데 제조사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허사였어요.
그러던 2019년. 스페인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그 곳을 방문한 정부 고위관료께서 릴리커버 전시장에 들러 주셨어요. 그 자리에서 릴리커버의 아이템을 보시고는 로봇 개발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맞춤형 화장품 로봇을 직접 개발하는 것으로요.
▶ Q : 맞춤형 화장품 로봇을 개발하는데에 많은 자본이 필요했을텐데요. 더구나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부담을 느끼셨을텐데, 어떻게 진행할 수 있었나요?
▶ 안선희 대표 : 릴리커버에서 독자적으로 로봇을 개발하기에는 자본과 인력, 시간 등 모든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다행히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스타트업 대상의 아이템 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어요. 그래서 비용을 아끼면서도 계획대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와 함께 2년 동안 머리를 맞대어 고생한 끝에 ‘에니마 enima’가 탄생했구요.
‘에니마’는 에센스와 로션을 즉석에서 제조할 수 있는 생산설비에요. 종류는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고객들의 피부 상태에 맞게 성분 배합이 달라지기 때문에 25,000가지의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와요.
‘에니마’는 1평이 채 되지 않는 1.96㎥의 면적을 차지하는 설비에요. 그래서, 피부 진단과 제조가 필요한 어느 곳이든 간편한 설치가 가능해요. 또한 1개 제품을 4분 이내에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 사항을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할 수 있어요.
이렇게 강력한 성능을 가진 ‘에니마’ 덕분에 2021년 7월에는 약 5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어요. 직접 맞춤형 화장품을 생산하는 ‘피봇’에 과감히 도전해 얻은 성과라서 더욱 값지고 보람을 느껴요.
▶ Q : ‘피봇’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거라고 생각되는데 과감하게 결정한 요인은 무엇인가요?
▶ 안선희 대표 : 2016년 창업한 이후로 한 순간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없었어요. 늘 아이템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제품을 더 잘 만들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어요.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견디면서 창업 2년 만에 피부 진단기 ‘뮬리’를 완성해 출시했어요. 그런데, ‘뮬리’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맞춤형 화장품이 필수였어요. 먼저 5가지 종류의 마스크팩을 만들어 시장을 노크해봤지만 원하는 결과는 얻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방안, 즉 ‘피봇’을 생각해야 했고, 마침 로봇을 활용한 스마트팩토리 설비를 만들어보라는 조언이 결정적이었어요. 더 늦게 결정했더라면 지금의 릴리커버로 성장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최근에 시청한 스타트업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던 문장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빠르게 개발하고 더 빠르게 개선한다’
릴리커버도 ‘에니마’를 개발하면서 다른 기업들보다 빠르게 개발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에니마’를 더 빠르게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성공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릴리커버는 앞으로도 다른 어떤 스타트업보다 혁신적인 뷰티 아이템을 빠르게 개발하고, 더 빠르게 개선하고 싶어요. 이런 도전이 스타트업의 진정한 본질이 아닌가 싶어요.
▶ Q : 혹시 이번이 첫 번째 피봇인가요?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피봇도 있었나요?
▶ 안선희 대표 : 사실 2016년 창업 후 ‘뮬리’를 만들 때 디자인과 관련한 피봇도 있었어요. 최초에는 지금의 ‘뮬리’와 전혀 다른 디자인을 구상했어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고객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핵심 기능이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했어요.
스타트업 창업을 하면서 꿈꾸워 왔던 디자인과 기능이 실제로 진입하려는 타겟 시장 고객들이 원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이를 빠른 시간내에 파악해서 다시 디자인과 핵심 기능을 수정 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뮬리’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프로토타입 디자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저를 포함해 일부만 알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릴리커버가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험난했던 ‘뮬리’ 디자인 과정이 저에게도, 회사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 Q : ‘에니마’ 이후에도 또 한 번의 피봇을 계획하고 있나요?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나요?
▶ 안선희 대표 : ‘에니마’는 사실상 두 번째이자 제대로 된 첫 피봇이라고 생각해요. 피봇을 통해 제대로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어요. 이를 발판으로 피부 진단기기인 ‘뮬리’부터 개인 맞춤 통합 피부관리 솔루션인 ‘당부’, 그리고 맞춤형 화장품 브랜드인 ‘발란스’까지.
이렇게 전체적인 뷰티케어 브랜드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게 되어 ‘릴리커버’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다른 변화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어서 또 한 번의 피봇을 다시 계획하고 있어요.
‘에니마’는 보다 전문적인 피부 케어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한 B2C 성격이 강해요. 그런데 이런 ‘에니마’의 장점을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적용하고자 하는 관련 기업이나 단체의 문의가 많았어요. 그래서 ‘릴리 파트너스’라는 B2B 모델을 계획하고 있어요.
기존의 ‘에니마’도 B2B 환경에 맞게 새로 디자인하고 B2B 고객들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채널도 다각적으로 마련중에 있어요. 초기 시장에 잘 안착이 된다면 향후 릴리커버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커갈 수 있다고 자신해요.
대한민국의 대표 뷰티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릴리커버’의 예를 보듯이 스타트업에게 ‘피봇’은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인터뷰에서 안선희 대표가 얘기하듯이 현재까지 2번의 큰 ‘피봇’이 있었고, 또 한 번의 큰 ‘피봇’을 준비 중일 정도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스타트업의 실제 사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릴리커버’의 첫 번째 피봇인 초기 창업 제품 디자인과 성능 변경은 크게 ‘줌인 피봇 Zoom-in Pivot’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창업 아이템이었던 ‘뮬리’의 기능 중 하나였던 피부 진단을 좀 더 부각시키고 분석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릴리커버의 가장 큰 비즈니스 터닝 포인트 였던 ‘에니마’ 개발은 ‘고객 니즈 피봇 Customer Need Pivot’으로 말할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었던 ‘릴리커버’가 피부 진단기 ‘뮬리’로 풀려는 고객의 문제보다 맞춤형 화장품의 필요성이 커지는 또 다른 문제가 중요해져 버렸다.
이를 스타트업임에도 ‘릴리커버’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음을 발견했고 이를 고객 니즈에 맞게 맞춤형 화장품 브랜드인 ‘발란스’로 연결하였다. 그리고, 개인 맞춤 화장품 생산 설비 ‘에니마’를 개발하여 직접 생산해내며 다른 뷰티테크 스타트업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제 릴리커버가 또 다시 준비하는 ‘피봇’인 B2B고객 비즈니스 모델 추진은 ‘비즈니스 설계 피봇 Business Architecture Pivot’으로 구분될 수 있다. 기존의 B2C 중심의 저이윤·대규모 시장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B2B 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앞으로 ‘릴리커버’의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큰 관심이 모아진다. 짧은 6년의 기간동안 진행되었거나 진행 예정인 3번의 ‘피봇’은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장하고 있다는걸 나타내주는 의미있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떠한 종류의 위협이나 위기가 찾아와도 ‘피봇’을 통해 이를 넘어서고 성장해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고 있는 스타트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To be continued
작성 : Dear Cloud
<참고문헌>
권도균. (2015).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 위즈덤하우스
에릭 리스. 송우일·이창수 역. (2012). 린 스타트업.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