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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고객 욕망'이 불러온 파국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찾아보는 '생각의 틈'

by K Duck

이제 열흘 뒤인 3월 3일에 할리우드 최고의 프랜차이즈 상품(?)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립니다. 매년 시상식 때마다 화제를 모으는 영화나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6년 전에 전 국민의 국뽕을 차오르게 했던 <기생충>도 그랬구요. 작년에는 <오펜하이머>가 주요 부문을 휩쓸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현세대 최고의 거장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럼 올해는 어떤 영화와 배우들이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킬까요? 작품상을 받을 영화는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인 부문 중 하나인 ‘여우주연상’은 수상자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바로 ‘데미 무어 Demi Moore’ 입니다.


지난 1월 6일 개최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미 무어'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단발의 여신으로 할리우드 최고 출연료를 받기도 하면서 수많은 가십거리를 남긴 채 사라져 버린 ‘데미 무어’. 환갑을 넘긴 62세의 ‘데미 무어’는 제2의 전성기에 버금가는 인기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출연작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는 영화 카피 그대로 ‘올해 최고의 미친 영화’로 평가받으며 주연인 데미 무어를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부문의 강력한 후보로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영화는 일반 대중영화와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합니다. 공포영화 중에서도 비주류인 ‘바디 호러’ 장르에 충실한 독한 맛의 영화입니다. 그래서 개봉 직전 영화관에서 감상했던 저의 한줄평은 ‘반드시 식사 전에 봐야 할 영화’ 였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데미 무어가 연기하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이하 엘리자베스)과 그녀의 더 나은 존재 ‘수’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딩이 끝나면 관객 모두는 ‘엘리자베스 스파클’ 인생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마치 자신이 체험한 것처럼 느끼며 자리를 일어납니다.


영화 초반부 '서브스턴스' 실험의 원리를 설명하는 장면.(출처 : 영화 <서브스턴스> 캡처)


‘서브스턴스’ 실험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을까?


시각과 청각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 나서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화 <서브스턴스>에 대한 ‘생각의 틈’이 보였습니다. 영화를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 ‘수’의 시각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약물 ‘서브스턴스’를 제공한 인물의 관점에서 리마인드해 보았습니다. 약물을 만들고 제공한 사람을 일단 ‘과학자’라고 칭하겠습니다.


그럼 이 ‘과학자’는 왜 주인공 그녀에게 약물 ‘서브스턴스’를 제공했을까요? 이건 마치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납니다. 불법 감금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역)가 탈출해 자신을 감금시킨 빌런을 찾는 이야기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이우진(유지태 역)이 왜 오대수를 15년 만에 풀어줬냐로 시각을 바꿔 보는 것과 유사합니다.


활성제, 안정제, 음식으로 구성된 '서브스턴스' 약물 (출처 : 영화 <서브스턴스> 캡처)


영화 <서브스턴스>에서도 ‘과학자’는 이우진과 스타일은 다르지만 주인공을 가지고 노는(?) 성향은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물증이 바로 2주일 분량의 약물입니다. 영화에서 약물은 활성제(Activator), 안정제(Stabilizer), 음식(Food)이라는 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주일은 더 나은 자아인 ‘수’, 나머지 1주일은 원래의 나 ‘엘리자베스’로 유지하기 위한 정량의 안정제를 만들거나 음식이 제공됩니다. 하지만 활성제는 1번만 사용하라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2번도 사용가능한 양을 제공합니다.


초록색 활성제(Activator) 모습. 케이스 뒷면에 '1회 사용. 사용 후 폐기'라고 적혀있지만 과연? (영화 <서브스턴스? 캡처)


젊어지고 싶은 욕망을 다루는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주인공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참을 리가 없죠. ‘엘리자베스’, 아니 더 나은 내가 된 ‘수’는 ‘과학자’의 주의를 무시하고 약물을 남용하게 되면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영화가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이 잔혹동화 같은 스토리가 끝난 후 최후의 승자는 ‘과학자’가 될 것이라는 게 제가 <서브스턴스>를 보고 난 후 생각해 낸 ‘틈’ 입니다. ‘과학자’는 분명 ‘서브스턴스’ 약물의 실험이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사용하려는 욕망을 자극하려고 ‘활성제’의 양을 고의적으로 늘렸습니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여정을 기업 관점에서 하나의 시장으로 대입해 본다면 그 시장의 고객인 우리 자신은 늘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죠.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이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솔루션을 던져 주는 상황에서 이를 활용해 보고 효과가 생겼다면?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면서 고객은 솔루션을 더 자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자극받기 쉽습니다.


영화 <서브스턴스>에선 이러한 고객의 욕망이 제품의 사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장르적인 효과를 넣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과학자’의 시점으로 영화를 재감상해 보면 첫 관람 시 느끼지 못했던 특이한 재미도 생겨납니다. <트루먼쇼>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요? 2시간 20분짜리 ‘관찰 예능’을 본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고객의 욕망이 제품을 확장시킨 경우는?


군용이었지만 만능 윤활제의 대명사가 된 'WD-40'


이제 영화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투영해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제공자가 의도했던 용도가 아닌 방법을 고객이 찾아서 결국 제품의 시장이 확장된 경우가 흔합니다. ‘WD-40’은 원래 군용 제품이었습니다. 미사일 보호를 위한 녹 방지제로 개발되었으나 범용으로도 워낙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시장이 무한대로 늘어났습니다.


스니커즈도 본래는 스포츠 활동을 위한 신발로 설계되어 만들어졌지만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면서 매출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지난주에 언급했던 스탠바이미도 유사한 경우입니다. 1인용 가정을 위한 이동형 TV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전시회나 매장에서 제품 홍보를 위한 디스플레이 기기로도 인기가 많아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고객의 욕망’과 관련하여 아주 재미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LG생활건강에서 판매 중인 ‘발을 씻자’입니다. 제품 개발자는 두 아들의 어머니인데요. 운동을 하고 오면 발냄새가 너무 심해서 이걸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풋샴푸 제품이 ‘발을 씻자’ 입니다.


https://youtu.be/93mnQmY5FiM?si=hIBiO8SKDNL5S9XB

히트상품 '발을 씻자' 개발 스토리가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네고왕> 에피소드 Ep.17


풋케어 제품으로 인기를 모았지만 정작 화제는 다른 이유로 이 제품을 사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발을 씻자’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제품의 엄청난 세척력을 다른 곳에 적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옷이나 침구에 묻은 오래된 자국과 반려동물 용품 세척, 수도 수전의 오래된 얼룩도 ‘발을 씻자’로 모두 해결이 되었다는 후기가 올라오면서 대박이 났습니다.


심지어 운동화의 지워지지 않는 때도 이 제품을 사용하면 세척이 될 정도여서 한때 품절 사태까지 나기도 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풋케어 제품이 욕실 청소와 다용도 세척을 위한 제품으로 시장도 확장되면서 매출도 크게 성장 중입니다.


고객의 숨어있는 진짜 욕망을 찾아내려면?


최근 다양한 제품들에게서 공급자들이 당초 예상했던 방향과 다르게 용도가 바뀌고 이를 통해 타겟 시장의 변화와 확장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의 숨어있는 ‘진짜 욕망’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고객의 숨겨진 욕망을 파악하는 것이 마케팅의 ‘진짜 핵심’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분석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고객의 행동과 사고방식 연구 및 이를 연계한 ‘뉴로 마케팅’도 눈여겨 볼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객이 단순히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더 깊은 심리적, 사회적 동기에 의해 행동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빅데이터 분석과 활용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고객의 진짜 욕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데이터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동기를 이해하는 심리적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의 욕망이 아닌 ‘공급자의 욕망’을 어떻게 억제시키느냐도 중요하죠.


‘공급자의 욕망’이 제품과 마케팅, 그리고 전체적인 브랜딩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를 마지막으로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해당 사례도 마찬가지로 ‘발을 씻자’ 제품의 경우입니다. 최근 MZ세대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자신감에 LG생활건강은 마케팅의 확장을 위해 유명 인플루언서와 계약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Am-ZmJJrHc

2025. 2. 14. MBC 뉴스투데이 <'젠더 갈등'에 발 전용 세제 불매 움직임까지>


하지만 해당 인플루언서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되어 기사까지 등장했습니다. 결국 광고는 삭제되고 사과문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제품 불매 운동까지 번지는 등 사태가 수그러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공급자의 욕망이 고객의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리한 마케팅 확장을 시도한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제품의 본질적 가치와 고객의 실제 니즈에 집중하는 것이 브랜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이라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결국 고객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은 표면적인 니즈를 넘어 그들의 깊은 심리와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과 심리적 접근을 균형 있게 활용하면서, 동시에 공급자의 욕망이 이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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