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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틈

당연한 걸 의심할때 보이는 새로운 생각

이 가정이 틀리다면, 무슨 '틈'이 새롭게 보일까?

by 서소헌

우리는 현상을 해석할 때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많은 가정들 속에서 사고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들 위에서 수많은 의사결정을 내리죠.

'생각의 틈' 시리즈로 글을 작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주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주변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익숙한 것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죠. 그리고 이번 주에는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따르는 '당연한 가정들' 속에 숨어 있는 '틈'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방향을 정하니,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의미 있는 ‘틈’을 발견했습니다.


시장을 읽는 능력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오류'

그 '틈'은 바로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동화(Automation)’에 대한 가정들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던 이탈리안 식당은 저희가 좋아하던 쉐프가 새롭게 오픈한 피제리아였기에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많은 식당들처럼, 이곳도 태블릿으로 주문을 하고, 로봇이 서빙을 하고, 고객이 직접 음식을 세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도를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기로 한 저의 새로운 습관 때문이었을까요? 20대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움직임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준비된 음식을 로봇에 담고, 로봇이 가져온 그릇을 치우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위해 주방으로 옮기는 일만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은 무미건조했고, 마치 감정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친구들은 자신의 일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고객과 말을 섞는 것은 물론 인사 조차 할 필요 없는 이 상황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까, 아니면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의 무한 반복이라고 생각할까?’

식사를 하는 동안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동화는 정말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단순히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더 나아지는 걸까? 이 질문을 곱씹으며 떠올린 개념이 바로 '구성의 오류(Composition Fallacy)'였습니다.


구성의 오류: 시장을 읽는 새로운 렌즈

구성의 오류란, 어떤 요소가 부분적으로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도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라는 잘못된 추론을 의미합니다. 많은 기업들은 "자동화가 노동 생산성을 높이면,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당연히 수익성도 증가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온라인 주문 시스템이 편리해지면서 오프라인 경험도 자동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논리가 때로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화를 통한 운영 효율화가 부분적으로는 성공적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만 보더라도, 자동화 도입을 통해 주문 속도는 빨라지고 인건비는 절감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브랜드 경험은 희미해졌고, 직원들의 일은 더욱 기계적이 되었습니다. 고객이 느끼는 감성적 연결이 약화되고, 직원들은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동기부여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결국 이런 방식의 운영이 지속 가능할 것인가? 직원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싶을까?의 문제를 야기합니다.


즉,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체적 성공’의 핵심 요소입니다. 자동화를 통한 운영 효율화라는 부분적 성공이 전체적 가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틈'을 어떻게 해석하고 채워나가느냐에 따라, 실패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혁신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동화를 창의적으로 해석한 사례: 이치란 라멘

이러한 '틈'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사례로 떠오른 곳은 바로 일본의 '이치란 라멘'입니다. 이치란 라멘은 후쿠오카 여행시 저희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짧은 여행 중에도 두차례나 방문할 만큼 재미있는 곳이였지요. 일반적으로 음식점은 고객과의 접촉을 늘려야 더 좋은 서비스라고 믿었습니다. 자동화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필요하지만, 인간적인 경험을 줄이는 요소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치란 라멘은 이러한 통념을 뒤집었습니다.


그들은 자동화가 고객 경험을 해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인간적 서비스가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에서 최상의 라멘을 즐기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이치란 라멘이 차별화된 점은 자동화가 직원들의 역할을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입구의 식권 자판기는 단순한 주문 도구가 아닌, 고객의 취향을 세세하게 반영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되었습니다. 1인용 칸막이로 구분된 좌석은 '온전한 집중'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역할이 단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 '최고의 한 그릇'을 제공하는 전문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기계적인 서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라멘의 품질 유지와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면의 삶는 정도, 국물의 농도, 토핑의 배합까지 직원들의 손길이 필요한 핵심 요소로 남겨두었으며, 이를 통해 직원들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라멘 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객이 식사를 마친 후에는 만족도를 표현할 수 있는 작은 피드백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객과 직접 대면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빈 그릇과 감사 메시지는 직원들에게 즉각적인 피드백이 되어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직원들이 비대면 환경에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활기찬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이처럼 자동화는 단순한 기계적 대체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정교하게 디자인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음을 이치란 라멘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은 '자동화는 인간적인 경험을 감소시킨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오히려 자동화를 통해 인간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정을 세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치란 라멘은 자동화를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고객의 몰입도를 높이고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어떤 새로운 가정을 시도해 볼까요?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고 있는 가정들은 실제로 시장을 읽는 능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구성의 오류를 깨뜨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때, 기존 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비즈니스 기회가 나타납니다. 부분의 성공과 전체의 성공 사이의 '틈'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는 어떤 부분적인 성공을 전체적인 성공으로 확대하고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자동화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비즈니스의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이 가정이 틀린다면, 새로운 기회는 무엇일까?"를 상상해봅니다. 이치란 라멘이 그랬듯이, 기존 통념의 허점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기존과 반대되는 가정을 세워보고, 이를 실험해봅니다. 자동화가 오히려 인간적 경험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정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속한 산업에서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들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전제를 뒤집어 보면 어떤 새로운 기회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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