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되는 그래픽카드 가격에서 생각해보는 PC게임 트렌드의 ‘틈’
2025년을 살아가는 PC게임 유저에게 엔비디아는 악몽의 단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www.danawa.com)에서 3월 6일에 검색한 PC용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5090의 판매 가격은 충격적입니다.
899만원. 오류가 아닙니다. PC 주요 부품 중 하나인 그래픽카드를 구매하려면 900만원을 지불하고 달랑 1만원을 돌려받습니다. 심지어 재고 여부를 미리 전화로 확인해야 구할까 말까 합니다. 900만원이면 최신 콘솔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5 프로를 9대나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래픽카드를 구매했다면 나머지 부품까지 제대로 구성해야 전원 버튼을 눌러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다면 게임을 하기 위한 최고 사양의 PC 구매금액은 1천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이제 PC게임은 대중적인 여가의 수준을 넘어 고비용의 취미로 여겨지는 순간이 왔나 싶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PC게임용 '그래픽카드'의 역사는 PC게임 회사들의 광기 어린 개발 정신과 유저들의 무한 지지를 등에 업고 컴퓨터 산업에서 비중을 점차 높여가며 대중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꾸준한 성장이 이어지던 2010년대에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가상화폐' 열풍입니다. 돈이 되는 가상화폐 채굴에 그래픽카드가 핵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격의 폭등과 품귀 현상까지 몰고 왔죠.
코인 열풍의 끝이 보이자 잠시 주춤했던 그래픽카드의 인기는 이번에는 'AI'라는 노다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딥러닝에서 요구되는 연산 처리에 유리한 그래픽카드의 병렬 처리 능력으로 인해 지난 코인 열풍보다 더한 인기와 가치 폭등을 누리게 됩니다.
코인과 AI라는 파도가 들이닥친 PC게임 유저들은 하나둘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콘솔이라는 오랜 역사의 게임 플랫폼이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죠. 게다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모바일 게임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의 성능은 폭등한 가격에 비례하여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PC게임을 위한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의 '변절'에 PC게임 개발사, 하드웨어 제조사 그리고 유저들은 관점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변화된 관점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먼저, 게임에서 높은 퀄리티의 그래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그 사례가 바로 '마인크래프트'입니다. 폴리곤으로 구성된 네모의 세상에서 창의적인 협동 플레이 등을 통해 상상력만으로 무한대의 재미와 교육적인 효과까지 일으키는 인기를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플랫폼의 활용입니다. 기존 패키지 형태의 오프라인 배급 구조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유통이 본격화되며 PC게임의 양상은 급변했습니다. 변화의 과도기에 탄생한 플랫폼이 바로 '스팀'입니다. 2003년 '카운터 스트라이크' 게임을 개발한 '밸브 코퍼레이션'이 업데이트 관리를 위해 만든 서비스가 '스팀'이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부터 타사가 만든 게임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스팀'은 플랫폼의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2025년 초 기준 스팀의 월간 이용자 수는 2억 2천만 명이며, 3월 3일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4천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역대 최고 수치이며 새로운 인기 게임이 탄생할수록 계속 경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상화폐와 AI가 가져온 PC게임 생태계는 이처럼 드라마틱하게 진화해 왔습니다. 나비효과가 불러온 PC게임 트렌드의 현재 진행형은 '인디게임 열풍'과 'UMPC의 재발견'입니다.
그래픽 품질에 타협하는 대신 게임성 향상에 집중하며 적은 개발비로 스팀과 같은 대형 PC게임 플랫폼에 런칭하는 '인디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스팀 플랫폼에서 인디 게임의 비중은 전체 매출의 48%로 AAA 게임으로 불리는 대형 PC게임 제작사의 매출을 사상 최초로 넘어섰습니다.
이와 맞물려 데스크톱에 집중된 PC게임 환경도 급격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덩치 큰 그래픽카드를 구매할 이유가 없어져 버린 거죠. 특히 저전력 프로세서의 그래픽 성능 향상과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에 힘입어 PC게임도 스위치와 유사한 크기의 UMPC로 즐길 수 있도록 새로운 하드웨어 기기들이 잇달아 출시되었죠.
물론 이것도 스팀의 역할이 컸습니다. 스팀이 출시한 UMPC '스팀덱'이 발매 이전에 언급되었던 다양한 우려를 딛고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죠. 저렴한 가격에 직관적인 조작 방식으로 스팀 플랫폼의 게임들을 언제 어디에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공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스팀덱은 UMPC의 인기로 확장되었고 성장률이 정체되었던 PC 하드웨어 제조사들에겐 '희망'이 되었습니다. 에이수스, 레노보에서 UMPC를 공격적으로 출시하였고 GPD나 아야네오 같은 신생 제조사들도 앞다투어 최신 성능의 UMPC를 계속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말도 안 되는 그래픽카드 가격에서 시작한 의식의 흐름이 UMPC까지 도달했습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게임을 정말 좋아합니다. 대중문화 장르 중에 게임이 가장 재미있고 위대한 콘텐츠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영화라는 복합적인 예술 경험에 '인터랙티브'라는 요소가 첨가된 콘텐츠가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즐겨왔기 때문입니다. 이젠 나이 핑계를 대며 게임을 즐길 시간도 없고, 깊은 게임 불감증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더욱 예전의 게임 라이프가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환경 보호를 위해 보유만 하고 있는 다양한 게임기와 PC들을 '당근'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긴 돈으로 스팀 플랫폼을 운영하는 '밸브 코퍼레이션' 주식을 사기 위해 기다릴 예정입니다. 빨리 상장하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