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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Jan 14. 2022

네가 살아갈 세상은

20세기에 태어난 아빠가, 22세기를 맞이할 아들에게

아들에게,


아빠는 1980년대에 태어나서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일기를 보면, 2000년이 지나면 화성과 달 정도는 관광을 위해 오가며, 전 세계가 하루 생활권이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자동차는 당연히 날아다닐 줄 알았다.


누군가 1990년대를 살던 아빠에게 2010년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전화기는 선이 없어지고 벽에서 내려와 손 안으로 가고, 컴퓨터는 서재에서 나와 가방 속으로 들어간다고, 북극이 녹고 기후가 변해서 전 세계가 걱정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중국이 큰 소리를 치며 패권에 도전할 때, ‘나 홀로 집에’ 카메오로 등장했던 아저씨가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있다고 했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현재가 바쁜 우리에겐 저 멀리 있는 미래에 시선을 두기가 어렵고, 열심히 본다한들 뚜렷하게 보기가 어렵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고, 메타버스 같은 예기치 않은 미래가 갑자기 문을 열고 오기도 한다. 하지만 네가 태어나자 미래가 가까워졌다. 이제 걷기 시작한 네가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해라고 생각하면, 2040년은 더 이상 공상과학의 배경이 아닌 우리의 바로 옆에 있는 미래가 된다. 어린 시절 상상의 대상이라 생각하며 크레파스로 그렸던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내 옆에 있더라.

파도가 치는 모습을 아무리 봐도, 내일 날씨가 어떨지 모르잖아


너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덜 붐비고, 더 늙은 세상


가장 큰 변화는 인구일 것이다. 너는 인구절벽 이후의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인구는 더 적어지고, 더 늙을 것이다. 인구감소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생산인구 부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기술발전 덕분에 노동력은 많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시대에서는 나이가 엇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극심한 경쟁이 일상이었다. 아마도 네가 살아갈 시대는, 경쟁의 치열함보다는 기회의 희소성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1년에 10명을 뽑는데 1,000명이 몰리는 경쟁 때문에 지치는 세상이 아니라, 그 10명조차 뽑지 않아서 기회가 없는 세상이다.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회를 찾으려면 더 넓은 공간을 돌아다녀야 한다. 삶의 주기의 변곡점마다 이동을 해야 할 수 있고, 출생, 교육, 근로, 은퇴를 모두 한 곳에서 겪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정착은 노인이 되어서야 가능할 것이다. 광범위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생존하는 유목민의 역량이 필요해질 수 있다.

미래는 생각보다 붐비는 대도시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모습일지도 몰라

좁아지는 세계, 멀어지는 이웃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경쟁의 범위가 더 이상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진학, 취직, 창업, 프로젝트 참가 등 기회를 얻기 위해 온 세계를 돌아다녀야 할 수 있다. 아빠가 살아온 시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교육부터 취직까지의 경쟁은 국내에서 이루어졌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한 나라에 가만히 머물게 될수록 자연히 기회를 얻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게 되면서 세계는 더 좁아진다. 다른 국적, 문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접하는 빈도도 높아지고, 그 관계도 더 깊어질 것이다. 아빠와 엄마 시대가 접한 세계화가 금융, 물류, 통신, 여행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너는 일과 사랑의 세계화를 겪을 것이다. 파키스탄인 매니저가 업무 지시를 하면 노르웨이인 동료와 회의를 하고, 일본인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터키인 여자 친구와 저녁에 어디갈지 연락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AI의 도입으로 언어의 장벽이 많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지만,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의 언어인 영어는 기본 소양으로 취급되어 소프트웨어의 도움 없이도 일정 수준 이상을 구사하는 것이 필수 요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좁아진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언어, 문화, 관습에 애착을 가지고 살 것이고, 심지어 다른 문화에 더욱 배타적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향후 수십 년은 매우 혼란스럽고, 매사 조심해야 하는 세상일 거다. 북미나 유럽은 한 세기 가까이 다른 민족과 함께하는 연습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사이좋게 더불어 사는 모습은 요원하다. 하루하루의 생활과 밀접한 세계화는 한국이나 일본처럼 단일 정체성이 확실한 나라에서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 곳에 더불어 산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거든

겹치고 부딪히는 정체성


아빠도 그랬지만, 사람은 이동하면 변한다. 아빠는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기간 중 반절을 외국에서 살았고, 그때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문화가 내 안에서 뒤섞였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유목민처럼 살게 되면,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갑작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국적은 멤버십 같은 형태로 변한다. 오히려 음악, 영화, 게임과 같은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형성된 가상 플랫폼에 강한 소속감을 느낄 것이다. 가수나 게이머, 스포츠 스타, 소설가의 팬덤(fandom)이나,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만나 협력하고 경쟁하는 게임 세계에서의 공감대가 현실세계의 소속감을 압도한다.


성(性) 정체성도 변한다. 기존의 표준을 토대로 설계된 각종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이해관계가 얽혀 매우 긴 기간 동안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생애 주기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세대 개념도 변한다. 20대까지 교육을 받고, 30대부터 일을 시작해서 60대 정도에 은퇴하는 20세기의 표준적인 삶의 형태가 종언을 고한다. 어린 시절에는 여전히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겠지만, 평생에 걸쳐 러닝(learning)과 언러닝(unlearning)을 반복하며 개인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디자인한다.



좁아지는 인간의 역할


네가 살아갈 시대는 인간의 사유도 기계가 대체한다. 뇌와 컴퓨터가 융합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지능의 정의가 변한다. 주어진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분석하는 것은 기계가 하게 되고, 두뇌 기능은 주어진 유전자를 넘어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 신선한 시각으로 현상을 보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 각광받는다. 과거에는 책을 보고 한 번에 외우면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기계가 빛의 속도로 저장을 해주는 시대에는 같은 책을 여러 번 볼 때마다 새로운 시각을 내놓는 사람이 천재라고 불린다. 언어도 달라진다. 정보 전달의 언어를 AI가 대신해주면서, 인간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더욱 깊은 심도가 요구된다. 감정을 표현하거나, 갈등을 완화하거나,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언어능력이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데이터의 새로운 해석이나, 복잡한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모델을 수립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아빠와 엄마는 인류 역사 상 처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살지 유효한 답을 주지 못하는 세대일 것이다.

어른의 경험을 전수하고 습득하라고 요구하기에는 네가 살게 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그래서 아빠는 너에게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고 싶다.


아빠가 남긴 편지를 읽다가, 실제 네가 보게 될 세상과 다를 때마다 ‘아니잖아’라는 질문을 하길 바란다. 아빠는 왜 이렇게 생각했고, 왜 틀렸을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건 무엇일까?


네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될 날이 너무나 기대된다.


일단 지금은 기저귀 떼는 거에 집중하렴.


언젠간 저 방에서 다 큰 모습으로 나와서 이것저것 따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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