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의 서재 Jan 14. 2022

들어가며 - 아들에게

2040년 1월 1일, 사랑하는 너의 아빠가.

아들에게,


멀어보이기만 했었는데, 새해가 되었네. 올해는 네가 어른으로서 맞이하는 첫 해인만큼, 아빠가 오래 전부터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해주려던 이야기를 하려고 해.


사실 아빠는 지난 20년 동안 네 앞에서 연기를 한 것이었단다. 웃는 가면, 화난 가면, 우는 가면... 다양한 가면을 쓰고 너의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이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아빠의 진짜 얼굴은 딱 하나였단다. 바로 당황한 얼굴이야. 네가 커가는 모든 과정이 아빠에게는 처음이었거든. 나름 연기를 했지만, 아빠의 머리 속은 항상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로 가득했어.


네가 태어나던 날,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빠에게 찾아왔단다. 너라는 아기를 어엿한 한 명의 어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고작 이십년만에 그걸 어떻게 하지? 아빠도 아직 아직 어른이 안된 것 같은데?


아빠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프랑스로 갔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지내고, 초등학교 후반부와 중학교 초반부는 미국에서 다니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는 프랑스에서 다녔는데, 어쩌다보니 졸업은 한국에서 하고, 또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녔어. 그도 부족했는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와 인연이 닿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하고 있어. 아빠가 되고나서 이제까지 온 길을 돌이켜보니, 단 한번도 안정적인 궤도를 그린 적이 없이 인생의 매 순간이 찢어진 지도를 얼기설기 붙여놓은 것 같았단다.


나 같은 떠돌이가 정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원점이 없이 살아온 내가, 과연 다른 한 사람의 원점이 될 수 있을까? 아빠에게는 거점은 있었지만 고향은 없었고, 이동경로는 있었지만 원점은 없었어.


그래서 아빠는 정답을 포기했어. 답을 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내가 살아온 경험이 너의 삶에 교훈이 될 수 있을 가능성도 희박하니까, 네가 성장해가는 궤적 위에서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들에 대해 그저 다양한 시각을 준비해주자.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지는 못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흐름을 보면서 한 걸음만 미리 준비하자. 내가 아들의 원점이 되려고 하지 말자. 유목민처럼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돌아다니면서 아들의 성장을 위한 정보원 역할을 하자. 너의 질문들을 품어주기 위해 내가 성장하자. 네가 던질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지 준비한 흔적이 바로 여기에 쌓여있는 편지들이야. 어떻게 아빠가 되어야할지 몰라서, 열심히 독학하며 예습한 흔적이란다.


이 편지들은 어쩌면 네가 읽을 때 쯤이면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 한장씩 넘기다보면, ‘아빠가 옳았네’라는 생각보다는 ‘아빠가 몰랐네’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 수도 있어. 아빠가 살아보니 세월보다 세상이 더 빨리 변하더라고. 나름 네가 갈 길을 미리 준비시켜주려 이 편지를 썼는데, 펜을 내려놓기 무섭게 세상이 또 변하더라.

그래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편지를 썼던 이유는, 아빠가 꼭 너에게 글로 남겨주고 싶었던 말들이 있기 때문이야.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고. 네가 세상에 나온 그 날부터 지금까지, 너의 발로 걸으며 그리는 가느다란 선을 따라, 아빠도 함께 고민했다고. 이제 성큼성큼 세상을 향해 걸어갈 너를 보며, 아빠는 이제 뒤에 있을께. 이제는 네가 택한 너의 길로 가면 된단다. 그리고 언제든 뒤를 돌아보면, 이제는 당황한 얼굴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얼굴로 웃고있는 아빠가 있을거야.



2040년 1월 1일,


사랑하는 너의 아빠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