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 May 05. 2023

잘 자겠습니다

 새벽 5시 즈음 겨우 일어나 까치집을 한 채 비몽사몽 운동을 다녀오고 돌아와 원고를 씁니다. 9시부터 다시 저녁이 되도록 일을 하고는 보고 싶은 책을 50P를 읽고, 못다 한 글을 마저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요. 그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개인적인 나머지 공부를 하고, 뒤늦게 한 두시 정도가 되면 그제야 녹초가 되었는지 의자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다 엉금엉금 잠자리로 향합니다. 대부분의 나날들 속에 어떻게 언제 정확히 잠자리로 향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나는 내 수면에 타당성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잠자리에 마음 놓고 편히들 수 있는 하루를 보냈는가? 

  내 인생의 총량에서 수면의 시간을 줄이는데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최근에서야 그나마 의도적으로라도 수면 패턴이 정돈이 된 것이지. 갓난 꼬맹이 시절부터 나는 일생 대부분을 지쳐 쓰러져야지만 잘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대부분의 평안한 밤 동안 잘 수 없던 저는 어떻게든 수면의 시간을 다른 효용적인 짓들로 채워야만 불면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 믿어왔습니다.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수면 한계선을 가늠하면서 지내오는 것이 내 일상입니다.  


 며칠 전 일정이 조정되어 다음날 모처럼 아무 스케줄이 없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가족 여행 등 여러 일들이 며칠 내내 겹쳐진 직후라 결국 피곤에 찌든 채로 시체처럼 거의 하루를 꼬박 잠들었습니다. 분명 저녁에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어슴푸레한 저녁입니다. 이런 개운함을 느껴본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두어 살은 젊어진 것 같습니다. 


 몸 구석구석이 개운함을 만끽하니 그제야 그동안 내가 행해온 짓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깨달았습니다. 


무의미가 곧 의미란 말처럼 우리네 삶이 태어난 데 이유 없듯 

 실은 내 하루에서 잠이 차지하는 시간은 타당성 같은 건 필요 없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요. 저는 항상 그 선택은 더 나은 것을 고르는 것보다는 

포기할 것을 택하는 쪽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자극을 포기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 흡연을 포기했고, 

 그보다 일찍 숙면이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는데 


이젠 나의 잠에게 여유를 주고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선택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포기를 앞둔 선택은 항상 애처로웠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네요. 

 한동안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 전화가 켜져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