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인물 백과사전-장 中

장의 장례식

by 이선

최 그리고 장의 이름은 같았다. 바쁜 일터에서 동명을 구분 지어 부르기가 어려운 탓에 사장의 끝을 따 나이 든 남자는 장이라 정하고, 남은 한 명은 중간 이름을 따 영이라 불렸다.


1월이 심어놓은 빈약한 부유감을 거부하려 애쓰던 나날이었다. 장이 죽었다. 최는 장이 뉘어져 있는 관을 상상했다. 납덩이를 채워놓은 듯 걸음마다 무거워져 휘청이지 않게 손아귀가 바들거리길 바랐다. 부디 걸음 하나하나가 짓눌리도록 버거웠으면 했다. 도저히 서두를 수 없을 만큼.


최는 스물의 자신과 서른 넷의 장을 떠올렸다. 등 붙일 곳이 없던 당시의 최는 시급을 제하고서라도 자신의 하루가 끝나면 매장이 열리기 전까지만 이곳에서 잘 수 있는지 물었다. 그것도 단 한 달이면 충분하다며. 장은 콧방귀를 껴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 같은 인간 뻔하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 그게 가능하겠냐? 재수 없는 새끼. ”


매장 열쇠를 최의 낡은 컨버스 앞으로 던져버리곤 장은 사라졌다. 20평이 조금 넘는 불빛 하나 없는 매장. 2인용 의자들을 나란히 놓아 몸을 뉘었다. 최는 곧 눈을 감았다. 까무룩 잠이 들려던 차에 매장 문이 열렸다. 전기 옥 장판을 둘둘 말아온 장이었다.


“얼어 뒤지지도 말고, 마음먹었으면 어중간한 각오로 살지 마. 너 한번 두고 보자.”


호기로운 장의 예언처럼 최는 결국 빚더미에 올랐다. 장은 기뻐할 줄 모르는 미숙한 최의 경사스러운 일이면 제 일처럼 단숨에 서울까지 달려와 함께 웃어 주었다. 울어야 할 때 버둥거리며 참는 최를 기어코 터트려 댔고, 바스러진 마음을 얼기설기 기워주었다. 최에겐 빚의 무게를 통감할 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 이윽고 장을 의문스레 바라보았고, 그의 괴벽스러운 호의와 애정을 곱씹어보곤 마침내 그를 닮아가려 했다. 이자에 짓눌려 질식해도 좋으니 상환은 한없이 늘어지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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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는 오른쪽 앞에서 운구를 맡았다. 생전 함께 사우나를 갈 때마다 척추를 따르는 뼈가 늘 훤히 보였던 장의 관이 무거울 순 없었다. 걸음마다가 어렵지 않았고, 죽음은 그보다 더 쉬웠다. 그제야 지금껏 흐르지 않았던 것이 마르지 않게 되었다. 종국에도 장은 최를 터트렸다. 결락의 통증이란 어째서 항상 반 걸음 늦게 뒤따라오는 것일까 최는 생각했다.


장을 떠나보내고 올라오는 네시의 오후. 기차 창 밖에선 진눈깨비가 창을 내리쳤다. 둔탁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창가에 칼자국을 내듯 빗금을 그어갔다. 두터운 창을 뚫다 못해 최의 갈비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흐리멍덩한 하늘이 한순간에 가물어버려 창밖이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마음에 더께가 지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인물백과사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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