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서 멀어져 있는 산업재해
철공 쟁이. 60을 가뿐히 넘긴 아버지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길 좋아합니다. 나 또한 그 말을 싫어하지 않아 장난스레 날 소개할 때면 난 철공의 아들이야 라며 농담을 한답니다.
아버지, 남편, 사장, 철공 쟁이 여럿 말로 불리는 남자는 무거운 쇳덩이를 들고 깎으며 스스로마저 세월의 날로 연마하며 날카롭고 뜨거운 현장에서 생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종종 말했습니다.
이 공단에 10년을 몸 담고 열 손가락 붙어있는 사람이 없다.
50년 세월을 쇠를 뚫는 날붙이들과 동침해왔습니다. 입버릇처럼 내뱉던 저주스럽기도 한 그 말 앞에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고는 6월 1일부터 오늘까지 45건 발생했습니다. 하루에 한 건 이상의 사고가 발생한 셈이죠. 부상까지 더해진다면 감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척척 편리하게 이루어질 것만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은 우리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일터에선 여전히 사람을 손을 거쳐야만 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아무개들이 오늘을 지나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루도 무탈히 특별한 소식 없이 돌아오길 바라는 아무개들의 그대들도 있습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자들의 당신들에겐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퇴근 전 뜻하지 않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를 정말이지 끔찍하리만큼 싫어합니다. 혹여 사고가 났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울리지 말아야 할 시간에 울리는 전화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버튼을 누르기까지 온갖 생각이 좀먹어온답니다.
제가 자란 도시는 수지접합 수술로 유명한 도시라고 합니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커다란 공단이 지역 곳곳에 자리 잡았기에 필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7년 전 그날은 평범한 월요일에 나는 햇병아리 대학생이었습니다. 걸려오는 전화 속 한껏 가라앉은 어머니의 목소리. 아버지가 절단 사고를 당했다 합니다. 무책임하게 잊고 살아온 현실입니다. 아버지는 쇳덩이도 조각내버리는 기괴하고 무서운 날붙이와 수십 년째 전쟁을 벌이는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고 누구보다도 쉽게 그리고 크게 다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지접합 즉 절단 사고 후 훼손된 신체 일부분을 다시 접합하는 수술은 시간이 생명이라 합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도착한 지역 으뜸가는 유명 병원에선 수술이 가능하단 말을 뒤엎고 담당 의사는 3시간이나 지난 후에 엄청난 스케줄로 자신이 피곤하다며 올바르게 수술할 자신이 없다는 소식으로 아버지와 잘려나간 손가락들을 돌려보냈습니다. 20살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세 손가락이 담긴 얼음 가득한 비닐봉지를 행여 놓칠세라 손에 꼭 쥔 채 눈물샘을 죽어라 막는 것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걸려 도착한 새로운 병원 응급실은 기묘했습니다. 그곳은 이면입니다. 반대의 세계 다른 차원의 섞일 수 없는 장소 같았습니다. 지나올 동안 보였던 길거리 사람들의 평화로운 미소들은 온데간데없고, 흰 벽과 어울리지 않게 시뻘건 핏자국들이 바닥 곳곳에 얼룩져있고 온갖 신음이 가득했습니다. 다쳐있는 그들은 기괴할 만큼 똑같았는데요. 그들의 옷은 시커먼 기름 때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책임에 대한 허무한 답변입니다. 잘려나간 사지에는 그들의 과거도 다가올 미래도 담겨있습니다.
의료진은 수술 전 촬영을 위해 아버지의 손과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아버지와 역사를 써왔던 떨어져 나간 세 손가락들을 아무렇지 않게 차가운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촬영이 시작될 때쯤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맞추고는 웃음도 울음도 아닌 괴상한 미소를 뗬습니다. 표정은 자신의 상처를 외면해달라는 부탁과 강압이 섞인 신호입니다. 외면하지 않자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가족 그 누구도 잘려나간 그의 손가락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봐야만 했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난 아버지의 잘려나간 손가락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피하지 않았습니다. 갈기갈기 찢겨버린 힘줄과 넝마가 되어버린 그 손가락들은 당신 이름 석자로 살아온 평생의 각인이자 수십 권의 일기장입니다. 그의 손가락엔 가족의 삶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 지내왔던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라도 지켜보고 평생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다쳐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자가 있기에 다수의 우리들은 위험한 세상에 한 발자국 떨어져 무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위험군 노동자들에게 시련이 닥쳤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커다란 도움보다 잠깐의 시선이라도 그들을 향해 멈추었으면 합니다. 이름 모를 수많은 그대들의 상처가 허무하지 않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