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독한 멀미를 멈추는 법

정인의 비저너리 크루 에세이 08 ㅣJan. 27. 2020

by 정인
한 살을 더 먹는 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올해도 귀성길은 꽉 막혔다고 했다.

cctv 같은 도로 현황 카메라에는 귀성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차들이 보였고, 그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찌뿌둥한 기지개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텅 빈 서울을 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날이기에 차례를 다 지내자마자 집을 나왔다. 평소라면 자리가 없을 동네 스타벅스도, 차로 꽉 차는 도로도 텅텅 비어서 헛헛하게 여유로운 서울이었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지면서 다르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톰과 제리에서 톰이 안쓰러워지면 어른이라던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고 공감이나 이해가 가는 이야기들이 점점 많아진다.


2019년 새해 첫 영화로 본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그랬고 아주 예전부터 한 번씩 꺼내 듣게 되는 존 메이어의 'stop this train' 이 그랬다.

(이 아래로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아주 예전 학교 음악실에서 봤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내게 magic waltz로 불리는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영화였다.


폭풍우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피아노 고정쇠를 풀고 파도에 따라 왈츠를 추듯 움직이는 피아노, 그리고 그 위에서 아이 같은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던 주인공 나인틴 헌드레드.


이민자들을 실어나르는 여객선에서 갓난아기로 발견된 그는 배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배를 떠난 적이 없는, '버지니아 호'라는 배에만 소속된 사람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 호의 피아니스트로 사는 나인틴 헌드레드. 육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음악과 버지니아 호에서의 삶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을 만나기 위해 배와 육지를 잇는 좁은 계단 '트램'을 건너 육지로 가려는 마음을 먹게 되던 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차분하게 트램을 내려가던 그는 계단 한가운데에서 멈추고 만다. 트램 위에서 드넓은 뉴욕의 전경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 그리고 더 이상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고 멈춰 선 그를 보고 난 이상하게도 존 메이어의 'stop this train'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Stop this train I want to get off and go home again
이 기차를 멈춰주세요 내려서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I can't take the speed it's moving in
기차가 달리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요

I know I can't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But honestly won't someone stop this train
누가 이 기차 좀 멈춰줄 수 없나요?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나인틴 헌드레드,

너무 빠른 이 기차를 멈춰달라는 존 메이어


그 두 사람에게서 느끼던 묘한 동질감의 이유를 영화의 마지막 결말,

버려진 배로 자신을 찾으러 온 친구의 손길을 거절하며 폭파되는 배에 남아있겠다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넌 그 도시의 끝을 볼 수 없어. 그 끝 말이야.
그 트램 위에서 보는 도시는 멋있었어.
나는 걱정 없이 내려가고 있었어.

나를 멈추게 한 것은 내가 본 것들이 아니라, 내가 못 본 것들이야.그 거대한 도시에 모든 게 있었어.

끝만 빼고.
그 모든 곳이 끝나는 세상의 끝.


피아노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어.
88개의 건반은 유한하지만 우리는 무한해.
우리가 만드는 음악도 무한해.
(하지만) 끝도 없는 그 건반(세상)은 무한하지.

그건 내가 앉을자리가 아니야.
그건 신이 연주하는 거야.
그 많은 길들 중 어떻게 하나를 선택해?


내가 바라보는 풍경들,

이 모든 세상은 나를 짓누를 뿐이야. 난 이 배에서 태어났어. 세상이 날 스치고 지나갔지.

내게 소원이 있다면 이 배의 선수와 선미 사이에 머물기를 바랄 뿐이야. 난 여기서 행복한 연주를 해.

무한하지 않은 건반을 연주해. 육지는 내게 너무 큰 배고,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고, 너무 긴 여행이야.
육지는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야.
정 그렇다면 이 삶에서 내리겠어.

(저 세상애서) 난 존재하지 않았어.
너만 빼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몰라.
날 용서해. 난 안 내릴 거야."

내게 나이를 먹는 건 매일 내가 마주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두려움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알지도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던 것을 마주하는 것.


나인틴 헌드레드가 끝을 알 수 없는 건반이라고 이야기한 신의 연주에서 그 다음 음계를 추측하려 애쓰는 것.

존 메이어가 노래 속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삶이라는 기차를 멈춰달라고 하는 이유.


요즘의 내가 나이가 한 살씩 많아지는 게 두려운 이유 같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며 든 생각은,

이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온전히 소속될 수 있는

그리고 소속되고 싶은 '나만의 버지니아호'를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배 위에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배에 머무르고자할지 알 수 없지만. 우선 그 배를 찾아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지독한 멀미를 이겨내는 방법이 아닐까?




본 에세이는 청춘들의 오아시스 '비저너리' 브런치 채널에 2018년부터 연재된 크루에세이의 일부입니다.


이 영화는 어릴 적 본 뒤로 오래 잊고 있다가 2019년에 재개봉을 하며 다시 만난 영화인데요,

어릴적 보던 화려한 음악과 영상 뒤에 남아있는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흐려서 울고 싶거나 가을이 오면 한 번씩 보고 싶어지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지독한 멀미를 멈추려면 겁 없이 세상에 뛰어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굳이 이겨내지 않으려고 나의 세계에 남아있어야 할까요?

유명한 TED영상 중에 너의 comfort zone, 즉 안전지대를 벗어나라 라는 주제의 영상이 있습니다.

영상을 처음 볼 때에는 나를 자극하고 불태우는 의지의 멘트였는데. 지금은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지는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우연히 새로운 취미로 프리다이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물을 좋아한다는 스스로의 예상과는 다르게,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맥주병은 깊은 잠수풀에만 가면 몸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자신과의 싸움(?) 과도 같은 이 취미를 시작한 뒤로 강사님이 제게 몇번이고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인씨는 너무 성과를 내려고 해요. 그래서 몸이 굳고 마음이 바쁜거에요. 즐기면서 해요 이건 숙제도 아니고 경쟁도 아니에요, 뭔가 해내고 싶어서 그 마음에 릴렉스를 망치면 아무것도 못해내고 올라오는거에요. 그냥 자신과의 약속으로 한걸음씩 가듯이 30cm, 1m, 그러다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돼요'

(한방에 이렇게나 멋지게 말씀해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주신 말씀 하나 하나를 합쳐보면 이것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프리 다이빙을 하다보면 숨이 꼴딱 넘어오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사실 그 순간이 오기도 전에 그 순간이 올거라는 생각에 이미 마음이 요동쳐요.

하지만 그 전에 마음속으로 '괜찮아' 라고 몇 번 말해주고 조금 더 참아보는, 혹은 조금 더 내려가보는 한 걸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프리 다이빙을 하며 10초의 숨을 더 참는 것, 1m를 더 내려가는 것이

나인틴헌드레드가 육지로의 계단 한 칸 한 칸을 내려가며 느낀 압도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저 시작한지 겨우 두어달 되는 취미이지만 그는 수십년을 쌓아온 삶을 확장하는 것이었겠죠.


과감한 한걸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너무 과감해지고자 하는 마음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프리다이빙은 물 속으로 내려가기 전에 최종호흡이라는 걸 하는데요, 몸을 릴렉스 시킨 후 몸 속에 숨을 불어넣는 순서입니다.


개인에 따라 릴렉싱에서 최종호흡까지 걸리는 시간은 천자만별입니다. 마치 수중생물처럼 호르륵 들어가시는 분들도 저처럼 오랜 시간 릴렉스를 해야 몸속에 숨을 채워넣을 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요즘 여러 분들과 연습이나 수업을 듣다 보면 순서에 맞추려고 최종호흡을 급히 하고 내려간 적이 많았습니다. 이게 내 페이스인지 알바 없이 마음이 계속 흔들려서 그런 것이지요.


내일 다시 풀에 가면 이번에는 천천히 최종호흡 루틴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나의 최종호흡 루틴을 찾으면, 마음이 요동치는 물 속에서 조금은 차분하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도 마음이 요동치는 순간에 자신의 최종호흡과 같은 루틴을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누군가를 신경쓰거나 고려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숨에 집중하는 하루 하루를 보내다보면 요동치는 삶의 멀미도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련 없이 떠나보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