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Francia Aug 05. 2024

어린이 독서모임을 주최하다

 

두 딸을 키우며 결심하는 것들이 있다.

자식을 엄연한 타인으로 존중하기, (냉큼 해주고 싶 마음을 꾹 누르고) 기다리고 지켜봐 주기, 공부 잘하기를 바라지 않기, 사회적(외부적) 성취에 연연하지 않기.. 내가 해주는 것의 양과 내가 바라게 되는 것의 정도는 비례한다는 보편성을 기하며, 그저 그들의 있음에 감사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이들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부모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반드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떤 이는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아이들이 따라 읽는다'라고도 하지만 그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더러 보았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다. 나에게는 독서가 일상이자 휴식이라 집 여기저기에는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이 쌓여있다. 나는 하루에 일정시간 이상 책을 읽지만, 보리와 담이는 그런 엄마를 따라 책을 펼치지는 않는다. 자매가 책을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독서보다 더 재밌는 것들이 많을 뿐.



외향적인 내 아이들은 거의 매일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만나서 논다. 무더운 요즘에는 집 앞에 있는 분수에서 놀다가 젖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귀가하는 일상이다. 집에 들어왔으니 씻고 책을 좀 읽힐래도 욕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문을 열어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우당탕탕 잠수하며 또다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종일 놀아제낀(?) 아이들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든다. 내 손엔 펼치 못한 어린이 책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읽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될까. 책이라는 즐거움, 책이라는 위로, 책이라는 안식, 책이라는 평생 친구를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소개해주고 싶다. 간절히. 나란 인간, 교육열은 없지만 독서열은 상당하다.



그리하여 나는 막연히 상상해 보던 일을 실행에 옮겨 보기로 했다(다소 즉흥적이고 무모한 성향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아이들의 친구들을 모아 어린이 독서모임을 주최한 것이다. 마침 여름방학 시작 시기이니 바쁜 아이들도 여유가 생길 터. '여름방학 독서교실'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보리와 담이는 한 살 차이지만 둘의 문해력에는 현저한 격차가 있으므로 2학년 한 개 팀, 1학년 한 개 팀, 총 2팀을 만들었다. 모임의 멤버는 자매와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각자의 친구들 3명씩. 우리는 모두 같은 아파트단지에 거주하고, 평소 엄마들끼리 친분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사전모임을 가졌다. 간단히 나의 뜻과 계획을 설명하자, 엄마들은 반갑게 환영했다. 모임이 장기간 지속, 성장하여 아이들의 독서동아리 형태로 유지되면 좋겠다는 나의 의견에 모두 동감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이 읽는 책이 나에게도 점점 재밌어진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며 나는 들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로 자원봉사를 하며 어린이 도서와 한층 친밀해진 것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기려고 나에게 사서 봉사활동 기회가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의 순서인가?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내 마음은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즐거움이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고 삽화도 훌륭한 그림책들, 저학년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줄글 책들을 두루 읽고 5권을 추렸다. 그 과정에서 시립도서관에 가서 초등 독서 교육에 관한 책들 여럿 찾아 었다. 특히 최나야 교수님의 <초등 문해력을 키우는 엄마의 비밀>에는 학년별 추천도서와 활용할 수 있는 활동지가 그대로 실려 있어서 유용한 참고서가 되었다. 저자도 직접 자신의 자녀와 독서동아리 만들어 수년간 진행해 왔다는 사실 몹시 반가웠다. 이렇게 자신의 창작물을 선뜻 나누면서 좋은 경험을 공유하는 건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방학이 시작되고, 2회 차 독서 모임이 완료된 시점이다.

평소에 나를 "이모"라고 부르이웃집 어린이들이 모임에 와서는 자연스럽게 "선생님"하고 부른다. 아이들은 정해준 책을 충실히 읽어온다. 물론  딸들도 열심히 책을 읽었다. 어린이들은 내 질문에 손을 번쩍 들고 앞다투어 자신의 이야기를 성토한다. 그들은 친구가 말하는 도중에 서슴없이 그것과 무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끼어든다. 혹은 친구의 말을 듣다가 "그거 아닌데!!" 라며 정면으로 가로막는다. 당연히 나쁜 의도는 없다. 삶의 경험과 대화의 기술과 두엽의 발달과 여타의 모든 것이 미숙한 어린이일 뿐이다. 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주로 소통하던 나는 신선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경청''공감'이라는 단어를 큼지막하게 써붙였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규칙으로 삼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끝까지 잘 듣는 것이
경청이에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더 좋지요.
친구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을 공감이라고 해요.
힘들었겠구나, 슬펐겠네, 기분이 좋았겠다, 잘됐구나! 이렇게 말이지요.

 :)




할 말은 많은데 정리는 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아이들. 

"자, 그러면 우리 그걸 글로 한번 볼까?"라는 내 말에 각자 연필을 잡는다. 연필을 쥔 작은 손이 탁탁 탁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글자를 쓴다. 왜인지 아이들의 머리 각도는 점점 꺾이며 테이블과 가까워진다. 삐뚤빼뚤한 글씨, 가지런한 글씨, 기어가는 글씨. 각자의 쓰기에 골몰한 어린이들이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건 죄다 열심히 한다. 그들은 일의 중요도를 따져가며 자신의 에너지를 안배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순간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어린이들에게는 과연 배울 점이 있다.






2학년 팀의 D는 학원을 9개나 다니는 바쁜 초등학생이다.

수업 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가 눈에 띄게 똑 부러지고 영특한 것이, 나도 모르게 사교육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될 정도였다. 2회 차 모임에서 D는 나에게 문득 질문을 했다.


-선생님, 이거 언제까지 해요?

-응? 이 수업? 언제까지 하는 거냐고?

-네.

-음, 일단.. 여름 방학동안 할 거야. 5번. 아, 혹시 그만하고 싶어..?

-아뇨, 계속했으면 좋겠어서요. 이거 진짜 재밌어요.



무심하고 시크한 D의 말에 나는 살짝 심쿵했다.

개학하면 D, 너 시간 맞추기가 제일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꼭 지속하고 싶구나 ♡



보리의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